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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삼성전자 근무 루게릭병 환자, 산재 불인정 정당"

산재 불승인 받았던 기흥공장 출신 이윤성씨... 반올림 "항소할 것"

등록|2013.08.23 17:24 수정|2013.08.27 15:54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15년간 일한 뒤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에 걸린 이윤성(41·남)씨의 산업재해 승인이 또 다시 좌절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 단독재판부는 23일 근로복지공단이 그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한 것은 정당하다며 이씨의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그의 가족과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은 곧바로 항소할 예정이다.

1992~2006년, 이씨는 삼성전자의 경기도 기흥 반도체공장 설비 엔지니어였다. 하루 평균 12시간씩 각종 배기라인과 펌프, 챔버, 스크러버 등을 세정하고 가스통 교체작업을 하며 복합유기용제와 전자기장, 오존, 반응가스와 부가물 등 유해물질을 접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회사를 그만 둘 무렵, 이씨는 조금씩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굳어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새로운 회사를 그만 둬야 할 정도로 상태는 나빠졌다. 2009년 3월, 의사는 그에게 루게릭병 확진을 내렸다.

반올림이 그의 기억을 토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조사한 결과, 아산화질소, 퍼플루오로프로판, 오존, 디실란 등 이씨가 다뤘던 화학물질 상당수는 구토나 흉통, 호흡곤란 등을 일으키거나 중추신경계를 망가뜨리는 등 인체에 유해했다. 그와 반올림은 이 자료 등을 바탕으로 2011년 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이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역학조사에서 작업환경과 루게릭병의 연관성을 밝혀내진 못했다. 하지만, 보고서에 "관련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근로자 이윤성이 근무했던 환경이 루게릭병을 일으키지 않을 만큼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후, 이씨는 2012년 2월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접수했다.

이윤성씨, 눈동자로 "끝까지 싸워라"... 다른 13명도 재판 진행 중

▲ 반올림이 이윤성씨의 작업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재판부에 제출한 삽화. ⓒ 반올림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판사가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는데, (이씨가 작업환경 때문에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며 "판결문이 나오는 대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항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씨는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인 눈동자로 가족들에게 뜻을 전했다.

"혹시 지더라도 끝까지 해..."

이 노무사는 "지금껏 루게릭병을 산재로 인정받은 경우는 소수였지만 주로 납, 농약 등 전통 산업에서 쓰이던 물질들로 조금이나마 유해성이 밝혀진 것이었다"며 "반도체산업 쪽은 검증되지 않은 물질이 훨씬 많이 쓰인다는 점을 법원이 감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치료나 생존을 위해 국가가 보장하는 공공보험이니 폭넓게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삼성직업병 관련 재판 결론이 나온 것은 2011년 법원이 고 황유미씨와 이숙영씨를 산재로 인정한 지 2년 만이다. 두 사람은 이씨와 같은 기흥공장 출신으로, 백혈병을 앓다 세상을 떴다. 이윤성씨 외에도 현재 삼성반도체와 LCD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노동자 13명은 자신들을 산재로 인정해 달라며 9건의 소송을 냈다.

근로복지공단은 법원의 황유미·이숙영씨 산재 인정판결 직후인 2011년 7월 항소심을 제기했고, 삼성전자 출신으로 뇌종양 투병 중인 한혜경씨와 이윤정씨,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유명화씨가 지난해 4월 1심을 접수했지만 법원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이 노무사는 "어떤 판사는 황유미씨 항소심을 참고한 뒤 선고하겠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는데, 조심스럽다기보다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황유미씨 항소심도 3월에 재판부가 모두 바뀌면서 새로운 재판부가 '(자료를) 더 살펴보겠다'고 했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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