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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극하다' 와 '혼신을 다하다'의 정확한 의미는?

단어 용법 사례를 통해 본 한자 병기의 중요성

등록|2013.08.24 19:50 수정|2013.08.29 09:11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에는 사전적 의미라는 것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단어의 정의를 정확히 규정해 준다. 단어의 용법은 사전적 정의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단어의 사용을 사전적 의미라는 울타리에만 가둬 놓을 수 없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 단어의 정의(定義)와 실제 사용은 약간의 괴리가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면, 표현의 확장과 문학적 비유라는 미명 아래 언어의 오남용이 버젓이 행해지기도 하고,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필자는 '등극(登極)'과 '혼신(渾身)'이란 두 단어를 통해 한자 교육 및 한자 병기의 중요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등극(登極)'이란 단어를 보면, 한자에서 나타나듯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임금의 자리에 오르다. (2) 어떤 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나 지위에 오름.

따라서 "고종이 철종의 뒤를 이어 등극하다"라든가 "국제 대회 정상에 등극하다","챔피언에 등극하다"와 같이 사용되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신문기사에서 흔히 다음과 같은 제목을 볼 수 있다. "손연재, 세계 랭킹 5위 등극" 이라든가 "기아차 시가총액 3위 등극". 이 문장에서 과연 '등극'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등극의 (2)번 정의를 기준으로 볼 때, 5위 등극과 3위 등극은 등극이란 단어의 본질적 의미와 큰 차이를 보인다.

'혼신(渾身)'이란 단어에선 더욱 문제가 두드러진다. 혼신의 사전적 정의는 '온몸','몸 전체'이다. 渾은 '흐릴 혼'으로 읽히지만, '온통','전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혼신의 용법은 '온몸'이란 의미로 바꿔 사용할 때 오용의 사례를 금방 찾을 수 있다.

네 가지 예를 들어 보면, "혼신을 다해 조국을 구하리", "혼신을 다해 금메달을 따내다", "혼신을 다해 이번 시험에 통과할거야", "혼신의 힘을 다해 피해 대책을 마련하겠다".

언뜻 보면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혼신'을 '온몸'으로 바꿔 문장을 다시 살펴 보면,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장이 퍽 어색해진다. 시험을 통과하고 피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머리로 쓰는 것이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금메달을 따고 조국을 구하는 행위는 몸으로 한다. 즉, '혼신을 다하다'는 몸으로 하되 온몸을 다 던져 최선을 다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립국어원에 문의하여 필자가 제기한 혼신의 정의 문제에 대해 동의를 얻은 바이다. 답변은 다음과 같다.

"'혼신'을 '온몸'의 뜻과 연결하여 생각하신 바는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혼신(渾身)'을 '몸 전체'를 뜻하는 '온몸'과 동의어로 처리하고, '혼신'의 대표적인 용례로 "혼신의 힘을 쏟다/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그는 불쌍한 이웃을 위해 평생 혼신을 바쳐 봉사하며 살았다./주어진 자기 삶에 밀착하여 혼신으로 끌어안고 치열하게 살다 간 송관수….<박경리, 토지>" 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단어의 오용이 쉽게 발생하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에 대한 필자의 주장은 아주 간단하다. 이는 한자의 표기없이 한글로만 의미를 나타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등극을 한자 표기 없이 한글 표기로만 사용할 때, '최고(極)에 오르다(登)' 라는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등극은 사전적 정의에서 벗어나, 좋게 말하면 확장된 의미 혹은 문학적 비유라는 자기변명으로 여기저기서 오남용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된다.

혼신의 경우는 더욱 극명하다. '혼신'하면 우리 머리에 먼저 혼신(魂神)이 먼저 떠오른다. 따라서 우리가 쉽게 '혼신'을 오용하는 이유는 바로 '혼신(渾身)'을 '혼신(魂神)'으로 이해해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혼신을 다하다'가 '온몸을 다하다'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하다' 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자를 제대로 배우고 한글 옆에 한자를 병기한다면 의미가 정확히 드러나 분명히 위와 같은 단어의 오용은 줄어들고 언어의 올바른 사용과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모두에서 언급했듯, 언어는 가만히 정체해 있지 있고 시간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각각의 언어 환경에 맞게 활용되면서 의미가 확장되고 더욱 풍부해지는 특성이 있다. 달리 말하면, 사전적 정의로 지나치게 해석하면 언어는 자기확장성과 다양한 표현의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오남용이 존재하는 근본적 문제도 인식하지 못한 채, 무작정 사용되는 그릇된 언어는 결국 언어 환경을 혼탁하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필자는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넘어, 한자 병기를 시행해 보면 어떨까 주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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