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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최대 밀협동조합 휘트 풀은 왜 실패했을까

[캐나다 협동조합①] 협동조합의 메카 서스캐처원이 우리에게 남긴 것

등록|2013.08.27 20:06 수정|2013.08.31 23:44
협동조합 붐이다. 작년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진 이후 더욱 또렷하다.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이미 수천여개의 협동조합이 세워졌고, 준비중이다. 특히 경기침체기 일자리 만들기의 새로운 경제모델로 떠오르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부터 협동조합 모델을 주목해왔다. 이후 이탈리아 볼로냐와 캐나다 퀘벡주 등의 해외와 국내 사례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번엔 국내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인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단장 이희한)에서 캐나다 협동조합의 원조격인 서스캐처원을 방문해 그들의 모습을 전하려 한다. [편집자말]

▲ 서스캐치원은 캐나다에서 가장 일찍 협동조합이 발전한 곳이다. 캐나다 중서부의 광활한 대평원을 곡물 중심의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고, 휘트 폴은 북미 최대의 밀 협동조합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면서 휘트 폴은 농업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실패의 길을 걷는다. 사진은 휘트 폴이 문을 닫은 후 개인 소유로 바뀐 모습. 곡물 엘리베이터에 '폴(POOL)'명칭이 지워져 있다. ⓒ iCOOP생협 캐나다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지난 5월 말 우리가 첫발을 내린 곳은 캐나다 서부 서스캐치원. 아직 한국인에겐 낯선 도시지만, 협동조합에선 익히 잘 알려진 곳이다. 공항서 숙소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 쿱(COOP)이라고 씌여진 생활협동조합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의료부터 은행, 주유소 할 것없이 웬만하면 거의 다 협동조합이었다.

인구 106만 명이 모여사는 서스캐처원 주에만 협동조합이 1256개나 된다. 캐나다에서 가장 먼저 협동조합이 발전한 곳이다. 이유는 지형적인 영향이 컸다. 서스캐처원은 캐나다 중서부의 광활한 대평원을 품고 있다. 때문에 19세기 말부터 곡물 중심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떠올랐다.

이 가운데 주요 농산물은 밀이었다. 1924년 밀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든다. 밀생산자협동조합인 휘트 풀(Wheat Pool)이 그것이다. 이들이 서로 힘을 모으게 된 데는 중간 유통업자의 불공정한 가격정책이 한 몫했다. 유통업자가 개별적으로 밀 생산 농민과 거래를 하면서 중간에 폭리를 취한 것이다.

휘트 풀은 이같은 개별적인 밀 생산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중앙판매와 수매 정산시 평균 판매대금을 지급하는 공동계산제(Pooling)를 도입했다. 농민들 입장에선 적절한 보상과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됐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순식간에 50%가 넘는 밀 생산 농민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큰 성공을 거둔다.

농민들이 직접 만든 협동조합 휘트 풀, 유통을 혁신하다

휘트 풀의 성공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만 해도 서부 대평원으로 이주해 살려는 사람들이 적어 그만큼 인구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은행이나 유통업 등의 진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이 직접 움직였다.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부터 농자재 등을 다루는 매장을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운영해 나갔다. 식료품 등을 위해선 생협 판매장, 농사에 필요한 자금은 신협, 비료 등 농자재는 농협, 보험 등은 공제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했다.

서스캐처원 주민들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자체적인 에너지 공급까지 책임졌다. 석유 등을 다루는 정유와 전기협동조합을 각각 만들어 기계를 돌리고, 불을 밝혔다. 연극, 스포츠 등 문화 서비스도 협동조합을 통했다.

헤롤드 쳅먼씨는 올해 나이 96세다. 한마디로 캐나다 협동조합의 산증인 셈이다. 쳄먼씨는 은 1930년대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마을에 커뮤니티홀(마을회관)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학업을 준비했다. 그것이 그의 첫 협동조합 경험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직접 출자해 운영에 참여했다. 마을의 각종 행사나 문화 체육 등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서스캐처원은 이미 80여 년 전부터 주민들 스스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협동을 통해 운영하는 협동조합 생태계를 정착시킨 셈이다.

▲ 캐나다 서부 대평원인 서스캐치원의 농업. 기계화를 통해 한사람이 농사를 지을수 있는 규모가 과거 20만평 수준에서 400만평까지 넓어졌다. ⓒ iCOOP생협 캐나다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교육의 힘으로 캐나다 최고의 복지 도시로

초창기 서스캐처원에서 다양한 협동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시 교육과 사람 덕분이었다. 밀생산자협동조합인 휘트 풀은 농민 조합원을 조직하고 교육하기 위해 16명의 역량있는 전문가를 키웠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조합원을 교육하고, 협동조합의 의미와 운영을 함께 고민했다.

이어 이들 도시와 농촌에 있던 작은 소비자생협들이 서로 힘을 모아 연합체를 꾸렸다. 협동조합끼리 서로 협동해 좀더 체계적인 협동조합 생태계를 만들어갔다. 1928년에 만들어진 캐나다서부생협사업연합(FCL)이 대표적이다. 이 도매협동조합연합은 농식품만이 아니라 비료, 사료 등 농자재, 집수리에 필요한 건축자재까지 주민들에게 싸게 공급하면서 사업영역을 넓혀 나갔다.

또 이들 협동조합이 더욱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크고 작은 동네마다 만들어진 신용협동조합의 힘 때문이었다. 캐나다의 농협은 우리나라와 달리 금융사업을 하지 않는다. 대신 농산물 출하부터 가공, 농자재 공급 등의 사업을 주로 한다. 금융거래는 신협을 통해 이뤄진다.

이와 함께 서스캐처원에서 협동조합을 더욱 촉진시킨 계기는 진보적인 주(州) 정부의 탄생이다. 1944년 서스캐처원 주의회 선거에서 씨씨에프(CCF, Cooperatve Commanweath Federation-연방협동조합당)가 승리했다. CCF는 북미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다.

토미 더글러스 주지사는 경제와 사회 부문에서 공기업이나 협동농장,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회주의자였다. 주 정부에 협동조합부를 만들어 협동조합과 공공기업 등을 활성화했다.

또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경제시스템을 도입해, 일자리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 나갔다. 서스캐처원이 캐나다에서 가장 앞선 복지시스템을 갖춘 지역으로 태어난 것도 이 때부터다. 해롤드 쳅먼은 "협동조합은 문제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다고 할 정도로 1950~60년대 서스캐처원은 이미 협동조합에 익숙한 사회였다"고 회고했다.

휘트 풀의 실패와 서스캐처원의 위기가 남긴 것

하지만 협동조합의 도시 서스캐치원은 요즘 위기를 맞고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일찍 협동조합이 발달한 곳이지만, 최근 들어 보다 진전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협동조합 휘트 풀의 실패는 서스캐처원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6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주식을 모집하면서 휘트 풀은 협동조합으로서 그 막을 내린다. 이 지역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던 가장 강력하고, 민주적인 운영으로 조합원과 지역의 사랑을 받았던 모범적인 협동조합 휘트 풀이 문을 닫은 것은 서스캐처원만이 아니라 캐나다 협동조합운동 전체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협동조합이 2세대를 넘어 3세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 캐나다 협동조합의 산실인 서스캐치원주의 시가지 모습. 사진 왼쪽 건물의 어피니티 신용협동조합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비롯해 이곳 중심부에는 협동조합 관련 건물이 다수 있다. ⓒ iCOOP생협 캐나다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휘트 풀이 협동조합으로서 막을 내린 이유는 농업환경과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1930년대 중반 캐나다 정부는 밀생산자위원회를 구성하고,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휘트 풀에 곡물 운송을 위한 철도와 밀저장 창고(엘리베이터) 운영권 등을 주었다.

이같은 특혜는 결국 휘트 풀의 경쟁력을 약화 시켰다. 다국적 곡물기업의 도전, 기계화로 인한 대규모 영농으로 농업환경과 시장이 급변했지만, 휘트 풀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내부 혁신이 따르지 못했고,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등도 줄어들면서 조직체계의 문제점도 드러냈다.

결국 1990년초 고령의 조합원들이 탈퇴하면서 출자금 1억 달러를 확보하지 못할 만큼 경영 부실에 시달렸다. 일반 주주의 돈을 모으기 위해 협동조합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휘트 풀의 실패를 두고 평가는 엇갈렸다. 캐나다협동조합연합회의 캐런 티모슈씨는 "(휘트 풀의 경우)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이사를 선출할 총회에 갈 대의원이 2, 3차례 모임을 거치면서 평조합원의 의견을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반면 생협연합회 부회장 빅 휴어드씨는 "이사회가 앨버타나 매니토바주 휘트 풀과 합병을 해야 할 순간에 결정을 미룬 이사회가 문제"고 주장했다. 협동조합 연구자들 사이에선 '경영자의 정체성 약화와 경영부실' 때문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서스캐처원은 이미 80년 전부터 협동조합 문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정체되면서 활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부모 세대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인 반면 자식세대는 일반기업에 취직하고, 외국계 대형 마트에서 소비를 하고, 일반 상업은행을 통해 금융거래를 한다. 협동조합 생태계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휘트 풀과 서스캐처원의 교훈은 협동 사회시스템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세대간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와 교육, 그리고 혁신을 통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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