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용강사와 함께 동행티셔츠를 입고 ⓒ 이영미
8월의 마지막 주다. 이번 주 나는 나흘을 교정시설로 출장다녔다. 청주교도소에서는 30차시 음악밴드 교육을 종강하는 발표를 위한 마지막 리허설을 했고, 계룡산 줄기에 있는 병원이라 이름 붙은 교정시설에서는 개강을 맞았다.
한 달 동안 방학을 하고 만난 여자병동의 수용생들은 내가 만든 '동행' 캘리그라피 티셔츠를 모두 입고 있어서인지 여고 체육시간 같은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만난 강사는 언니 같고, 교육생들은 동생 같았다. 무용 매트를 깔고 명상음악을 통해서 심신의 숨 고르기를 먼저 했다. 그리고 방학 동안 배운 '권투춤'을 비롯해 '자연 속에서' 등의 안무 두 가지를 복습했다. 또한 방학 동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교육생 하나가 외운 시의 내용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무척 싫어해서 이곳에 보내졌다는 말과는 달리 그녀가 읽은 시 '어느 벗에게'는 오히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싫다는 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말, 너무 자주 하진 말아요. (중략)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는 즉시 사람들이 그리워 질 거예요. 세상은 역시 사람들이 있어 아름답다는 걸 다시 느낄 거예요."
▲ 밤에만 피는 노란 희망의 달맞이꽃 ⓒ 이영미
음악밴드교육 종강 발표를 앞두고 총 점검을 하기 위해 들어간 청주교도소의 음악밴드반. 처음에는 일렉 기타와 베이스 기타의 코드도 모르고, 드럼의 리듬도 엉망이었으며 음정과 박자가 음치수준이었던 보컬들이 한창 <나는 나비>를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듣지 못하지만 윤도현을 좋아해 윤도현이 나오는 공연도 직접 간 적이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나는 나비>의 노랫말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져서인지 참 절절하게 느껴졌다. 내 주변 사람들은 그곳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들어가 있는지 묻기도 하지만, 20년 넘게 교정시설에 출입하는 나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더러 어떤 강사는 교도관을 통해서 정보를 얻어 교정시설 안 사실을 바깥 세상에 알리기도 한다. 하지만, 한 세상 가볍게 살아가고자 하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부질없어 보인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이 한 세상 마감하며 다시 먼 길을 돌아갈 마음자리와 영혼들이다. 가능하면 티끌만큼이라도 가볍게 되길 소망할 뿐이다. 사업계획서에야 사회복귀를 위한 자존감과 사회성향상이라고 명기하지만 사실은 나는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에 더 신경을 쓴다.
교정시설에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보급하면서 청주교도소 음악밴드교육은 출석율이 100%였다. 에듀케이터로서 우리 기관 또는 지역 연계 기관과 교정시설 모든 프로그램을 시행했어도 출석율 100%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례발표회 때 그 사실을 알렸더니 전국의 모든 교정시설 기획자들이 감탄을 쏟아냈다.
이러한 출석율 달성은 교육수용생들이 부지런히 출석을 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의사와 관련 없이 교정시설의 일정상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밴드교육의 특성상 수업에 빠지면 전체의 공동 연주에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특별히 마음을 써서 교육수용생들의 일정을 잘 조절했고, 부득이 교정행사가 진행되어 빠지는 경우 나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강의날짜 자체를 변경했다. 강의일시 변경에 4명의 강사들도 일사불란하게 잘 협조해줬다. 이제 금요일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평소와 다르게 깊은 감회가 든다.
그들은 다른 시간은 몰라도 음악밴드 수업시간에는 정말 모든 생의 시름을 잊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연주를 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작곡 수업도 병행했는데, 교도소 시설에 가서도 흐린 불빛에 연필에 침을 묻히면서 작곡·작사한 노래들이 내일 모레면 발표될 것이다. 밤에만 피는 노란 달맞이 꽃의 영혼처럼 높은 담 안에서 피어나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노래들이 말이다.
오선지에 음표를 넣으면서 그들은 영혼의 날개를 잠시 달지 않았을까. 음표에 맞는 노랫말을 간절한 시구처럼 지어 넣으면서 잃었던 동심을 찾지 않았을까. 음악밴드수업처럼 집중하고 간절히 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전에 알았더라면 그들의 삶의 방향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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