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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등 '내란예비음모' 혐의, 적용 가능할까?

녹취록 외 구체적 증거 필요 지적 우세... 실제 기소 때는 혐의 변경 가능성도

등록|2013.08.29 18:36 수정|2013.08.30 11:54
[기사 보강: 30일 오전 11시 54분]

내란예비음모 혐의 부인하는 이석기 의원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의원은 국정원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국정원이 유사 이래 있은 적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을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권우성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의원 등 10여 명의 진보당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적용한 '내란 음모' 혐의는 지난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이후 33년 만에 등장한 죄목이다.

검사장 출신 A 변호사는 "발표한 내용을 보면 무장 습격하고 그런 내용으로 아주 충격적"이라면서 "사실상 형법 조문에서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 수십 년 만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정원, '내란 예비 음모' 입증할 수 있을까

우리 형법 제90조는 내란 예비·음모·선동·선전죄로 구분하는데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내란)할 목적으로 음모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혐의다. 일반적으로 형법이론상 '예비'는 범행도구 준비, 장소 물색 및 답사 등 물적 준비를 이르며 '음모'는 도모할 공범을 찾거나 모으는 인적 준비에 해당한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내란의 예비라 함은 내란죄의 실행을 목적으로 하는 준비행위로서 실행의 착수 전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고 내란죄의 실행을 목적으로 해 병기, 자금을 조달하고 군중을 집합시키는 것 등이 그 현저한 실례라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 등은 이 의원 등에 대해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에서 1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경찰서, 지구대, 무기저장소 등 국가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  타격 대상이 국가기간망이 집중된 혜화전화국이라는 미확인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국정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확보한 녹취록에는 경찰지구대와 전화국 등 주요 시설 타격을 모의하고 인명 살상방안을 논의한 것과 함께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의원 및 진보당원들에게 내란혐의를 적용한 국정원은 이들이 구체적인 물적·인적 준비를 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정원이 확보한 증거가 유죄 입증이 가능한 수준인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법조계에서도 국정원이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람의 내심(內心)을 문제 삼지 않고 객관적으로 나타난 행동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하는 근대 형법에서 예비음모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는 살인과 강도, 내란 같은 중범죄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형법학자들은 실제 실행이 가능한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을 때에야 예비 음모 적용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총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 의원의 발언이 실제로 있었다 할지라도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이 없다면 이 혐의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 발언했다 해도 내란 예비 음모죄로 보기 어려워

이광철 변호사는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내란(예비)음모죄가 성립되려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A변호사도 "사실관계가 좀 더 확인되어야겠지만, 단순히 '총기를 준비하라'고 말했다는 것만으로는 내란 음모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며 "내란죄는 목적범인 만큼 구체적인 실행계획, 즉 범행 대상지도나 실행계획서와 같은 물증을 확보해서 목적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변호사는 "조직폭력 수사하는 것과 똑같다, 깡패라고 모두 조직폭력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지시명령 관계, 구체적 행동요령, 자금조달 부분을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령 이 의원이 주위 사람들하고 술을 먹다가 '나라를 한 번 뒤집어 엎으려면 총이 필요한 거 아니야'라고 발언했다고 해서 바로 내란 예비 음모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해서 어떤 혐의가 상당히 소명돼 있다고 단정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범죄사실만으로는 어마어마한 음모를 한 것처럼 돼 있는데, 사실인지 여부가 문제가 되겠다"며 "내란이라는 것이 국가의 정권을 잡겠다는 것인데, 이것을 조직 없이 한다는 것은 장난하는 것 아니냐, 지시·명령관계 같은 조직체계, 구체적 행동요령, 자금조달 등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내란음모라는 것은 우선 국헌 문란의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하는 계획이나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내란에 관한 계획이 구체적인 수준에서 수립돼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이 의원의) 발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 내란 예비 음모죄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좀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실제 검찰의 기소 단계에서 내란 예비 음모 혐의가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그동안의 공안사건들을 살펴보면, 압수수색할 때는 요란하게 큰 범죄를 내걸지만 실제 기소하거나 처벌하는 범죄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면서 "이석기 의원 압수수색도 내란음모죄를 걸었지만 실제 기소될 때는 가벼운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검찰과 국정원이 녹취록 외에 '구체적인 내란 음모'가 담긴 어떤 증거물을 찾아내느냐가 이후 수사와 재판의 향배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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