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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녹취록, NLL 대화록 생각난 이유

[주장] 언론, 국정원발 '큰따옴표' 받아쓰기 그만해야

등록|2013.08.31 11:29 수정|2013.08.31 11:29
국정원, "총기 준비" 녹취록 확보.. 김재연 의원도 내사 -28일 <경향신문>
이석기, 경기동부연합 회의서 "총기 준비하라"고 지시-28일 <아시아투데이>
국정원 "이석기, 조직원에 총기 준비" 녹취록 확보-29일 <서울신문 >
"총기 준비하라" 내란음모죄 적용 가능할까-29일 <연합뉴스>
"이석기,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 메가톤급 파장 -29일 <이투데이 >
'총기 준비하라'..이석기 내란죄 적용 가능할까-29일 <아이뉴스24>
이석기 "총기 준비"…우리나라에서 가능?-29일 <TV조선 >

이석기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 의원과 관련자들에 대한 '내란예비음모' 혐의 사건이 터진 후 언론들이 쏟아낸 보도 중 "총기를 준비하라"는 발언에 대한 대목이다. 언론들은 기사 출처지는 대부분 국정원이었다. 이 의원 발언이 사실이라면, 내란죄 적용 여부를 떠나 총기를 엄격히 금지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중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럼 이 의원은 정말 "총기를 준비하라"는 발언을 했을까? 이 의원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30일 기자회견에서 "제가 총기 운운한 적 없다"고 말했다. 김홍렬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30일 기자회견에서 "적기가를 부른 사실이 없으며 기간시설 파괴와 총기 마련 등을 모의한 적이 없다"며 이석기 의원이 총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만 아니라 <한국일보>가 30일 단독보도한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 중인 지하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RO)의 지난 5월 12일 회합 녹취록에서도 총기를 확보하라는 이 의원 발언은 없다. 물론 이 의원이 '총'이란 단어를 쓴 적은 있다.

우리가 총보다 꽃이라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나, 때에 따라서는 꽃보다 총이라는 현실 문제 앞에 우리는 새롭게 또 새로운 관점에서 현재 조성된 한반도의 엄중한 **를 직시해야 되지 않는가?
-30일 <한국일보> [녹취록 단독 입수] 이석기 "전쟁 준비하자… 군사적 체계 잘 갖춰라

다른 참석자가 권역별 토론회에서 "저격용 총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했지, 역시 이석기 의원이 한 발언은 아니다. <한국일보>는 단독입수한 녹취록 62쪽 모든 분량을 보도한 것이 아니라 10쪽 정도로 요약 보도했다. 녹취록을 입수, 요약본을 공개한 한국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입수한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타이핑된 파일 형태로 받은 것이 아니라) 문서로 된 녹취록이어서 기사로 쓸 때 다 보면서 칠 상황이 안돼 중요한 부분만 요약해서 싣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분위기에 맞춰서 요약했을 뿐이다. (전문을 봐도) 이석기 의원 언급 가운데 '총기' 발언은 없었다. '총기'를 준비하라는 언급도 없다. 다 읽어보면, '이게 죄가 되나요'라는 판단도 가능하고, 그 반대의 판단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미디어오늘>은 전했다. 녹취록을 입수해 단독 보도한 <한국일보> 기자도 이석기 의원이 "총기를 준비하라"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확인한 것이다.

물론 녹취록 전문이 공개되면 이석기 의원이 "총기를 준비하라"는 발언을 했을 수 있고, 공개된 내용보다 더 심각한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다. 갑자기 지난 6월 20일 국정원 공개한 NLL 대화록 발췌본과 24일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생각난다. 발췌본이 공개되자 국회정보위원장인 서상기 의원은 "아직도 영토 포기라는 전직 대통령 발언을 지지하고 수호하고 그것을 계승하려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정치 세력으로 남아있다"면서 "전직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전문 공개를 위한 범국민 촉구가 있어야 한다.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조중동>은 연일 노무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면서 "대한민국 대통령 없었다"는 주장까지 폈다.

하지만 회의록 전문이 공개되자 노무현 대통령이 NLL를 포기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더 충격은 발췌본 내용과 전문이 틀린 부분이 있었다는 점이다. 요약 때문에 틀린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NLL를 바꿔야 합니다. "(전문)
"나는 위원장님하고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NLL를 바꿔야 합니다."(발췌본)

"위원장께서 지금 승인해주신거죠"(전문)
"위원장님께서 지금 승인해주신거죠"(발췌본)

"장관급회담도 안 할란다 이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전문)
"장관급회담도 안 할란다 이렇게 억지를 부려본 적도 있습니다."(발췌본)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할라구 합니다.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돼서"(전문)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할라구 합니다. 뒤로 빼고 하는데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돼서"(발췌본)
- 6월 28일 <뉴스타파> ICIJ 공동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 조세피난처의 한국인들 9

전문에는 '나'라고 했는데, 발췌본은 '저'라고 적었다. 이 같은 단어 사용을 빌미삼아 새누리당과 <조중동>은 노무현 대통령이 저자세를 취했다고 맹비난했다. 무엇보다 당시 가장 쟁점이었던 NLL관련 대화록을 통째로 빼버린 경우도 있었다.

대화록 전문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 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이용 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발췌본에는 없다. 노 대통령이 말한 옛날 기본합의서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였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내용을 빼버렸다.

발췌본 공개 후 민주당이 왜곡했다고 강하게 비판하자, 남재준 원장은 국정원 명예를 위해서라며 회의록 전문을 공개했다. 하지만 국정원 명예를 지켜주기커녕 대한민국은 정보기관이 국가기밀을 유출한다는 국외 언론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국정원이 발췌본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이처럼 녹취록 발췌본은 왜곡은 아니더라도 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진보당 내란음모 녹취록 역시 전문이 아니라 발췌본이다. 공공교롭게도 녹취록을 가지고 있는 곳이 국정원이다. 진보당은 29일 국정원이 완전날조했다고 전면 부정한 것에서 한 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녹취록이 왜곡됐다면서 전문과 동영상을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도 국정원 명예를 위해 공개했다. 모든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녹취록을 조금씩 흘릴 것이 아니라 아예 공개하는 것도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개하기 힘들다. 이유는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섣부르게 보도하면 안 된다. 국정원발 큰따옴표 받아쓰기가 아니라 오직 확인된 사실만 보도해야 한다. 이런 사안일수록 언론은 더 엄중해야 한다. 지금은 가장 기본에 충실해야 할 때다. 30년만에 부활한 내란 음모죄 아닌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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