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론 우리를 부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인터뷰] 9월 7일 동성결혼식 올리는 김조광수·김승환 커플
▲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 ⓒ 최윤석
사귄 지 8년이 지난 9년째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커플의 표정은 밝았다. 들뜬 마음 때문인지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 커플의 결혼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동성결혼'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결혼식은 국내에서의 첫 동성결혼식이다. 아주 공개적이고 화려하게 할 계획이란다.
2005년 처음 만난 이들은 결혼을 위해 험난한 고개를 여러 번 넘어야 했다. 고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마침내 결혼에 당도하기에 이르렀다. 동성결혼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김조광수 감독과 레인보우팩토리 김승환 대표를 지난 8월 29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조광수 감독은 <해피엔드> <조선명탐정>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의 영화를 제작한 유명 영화인이다. 동반자인 김승환 대표는 김조광수 감독과 함께 영화사를 설립해 성소수자들을 소재로 한 퀴어 영화를 주로 수입하고 있다.
오는 9월 7일 토요일 오후 6시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린 예정인 이들의 결혼식에는 인디밴드의 축하 공연 등이 펼쳐질 계획이다. 또한 영화인에 일반 시민들까지 대거 참여하는 축제 형태로 진행된다. 오후 2시부터 식전 행사가 시작되는 등 대대적이고 화려한 결혼식을 예고한 상태. 동성애자 인권의 열악한 현실에서 공개 동성결혼식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테지만, 이왕 하는 것 작정하고 크게 벌이려는 모습이다. 이미 2주 전부터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며 결혼식 홍보를 하고 있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결혼식을 두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각오를 다지는 자리"라며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제도와 사회적 규범의 벽이 높은 현실에서 들뜬 분위기 한편으로 단단한 마음가짐을 보이며 결혼식에 꼭 참석해 축하해 달라며 청첩장을 내밀었다.
"더 크고 요란하게 하고 싶었는데, 거절의 연속"
▲ 레인보우팩토리 김승환 대표 ⓒ 최윤석
김승환 : "이벤트 형식의 결혼식을 결정하기가 힘들었어요.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공감도 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하는데, 제 성격적으로는 조용히 가까운 사람들이랑 같이 했으면 했었어요. 그 결정이 힘들었던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이만한 큰 일을 할 수 있는 그릇이 되나 싶었어요. 감독님은 사회 활동을 꾸준히 해오셨고 즐기면서 했는데, 저는 그렇게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김조광수 감독은 결혼식 규모가 처음 생각보다 축소됐다고 말했다.
"저는 원래부터 더 크게 요란하게 하려고 했었어요. 예를 들어 서울광장에서 하고 싶다 이런 계획이었는데, 그런 것들이 좌절되면서 하고 싶은 것보다 축소된 거예요. 케이팝 스타들 불러서 노래 부르고 유명 배우에게 사회를 부탁하고 싶었던 걸 생각하면 (현재 결혼식이) 화려한 건 아니에요. 생각보다 많은 난관이 있었고, 사회자나 출연진·장소 등 부문에 있어서 거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덜 열려있구나, 보수적이구나'라고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우호적인 분들이 많았어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분들이 보수적 판단을 하셨다면, 그렇지 않아도 되는 분들은 개방적이셨어요."
김 감독은 시선의 차이를 느꼈던 구체적 사례를 들었다.
"함께 작업했던 어떤 배우가 결혼식에 못 가겠다면서 섭섭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물론 섭섭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 사회가 내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이 참여하기 어려울 만큼 보수성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그 배우들이 참여해 보수성을 깨주길 바랐는데, 제가 생각보다는 아니었던가 봐요.
하지만 자주 가는 동네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축하한다고 하세요. 보수적일 것 같은 분이 청첩장을 달라고 하는데, 분위기가 달라요. 지난주 토요일 홍대 앞에서는 원하시면 청첩장에 이름 적어 드리겠다고 했는데 길게 줄을 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어둡거나 암울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됐지요."
김 대표도 "거리에서 드린 전단들은 많이 버리는데, 우리가 드린 전단은 거의 버리지 않았어요"라고 거들었다. 이들의 결혼은 한국 사회 성소수자 운동의 성과와 같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금기시되는 동성애 결혼이 주목과 관심을 끌고 있다. 김 감독은 대중들에게 친밀감 있게 다가간 것이 유효했다고 말했다.
"동성애 합법화가 안 된 나라에서 운동성을 띠고 투쟁적으로 했다면, 예를 들어 촛불집회 형식으로 갔다면 이렇게 호응받기 어려웠을 거예요. 내가 영화하는 사람이다 보니 대중들과 쉽게 만나는 점에서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불만스러워하는 시선도 있어요. 성소수자 운동이 우리의 결혼으로 인해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더 운동성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와요. 사회적 이슈화해서 알려야 하는데, 너무 로맨틱하고 사적으로만 보여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어요.
하지만 우리 결혼식이 끝이 아니기에 이후 많은 것들을 함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또 대중들의 많은 관심이 우리 운동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못마땅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건 그분들이 우리를 끌어줘야 하는 부분 같아요. 사실 저 같은 경우 게이 인권 운동보다는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크거든요."
"종교가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종교에 대한 모욕"
▲ 9월 7일 결혼하는 김조광수-김승환 커플 결혼식 안내 포스터 ⓒ 레인보우팩토리
그렇다고 결혼식과 이후의 과정이 마냥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 정치권은 종교계의 눈치를 보다 차별금지법에 제동을 걸었다. 종교계의 시선은 이들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종교계와 정치권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 최근 차별금지법이 보수 기독계를 중심으로 한 압력으로 중단됐다.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동조하는 것 같던데, 어떤 것 같나?
김조광수 : "민주당이 일부 대형교회 눈치를 보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에요. 선거 때 표를 의식해서겠지만 한 마디로 바보 같은 생각이지요. 몇몇 정교분리의 원칙도 모르는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자기 텃밭을 지키는 거라 생각하겠지만. 전체 지지층 중에 기독교 신자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봐요. 저는 기독교 신자지만 예수님이 동성애자를 차별하지는 않을 거라고 봐요. 성경에 근거해 동성애를 차별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들이 그렇게 느낀다고 하더라도 교회 안에서의 문제지 법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예요."
김승환 : "대형교회 지지를 받는 게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안타까워 보이는 면도 있어요. 종교가 왜 개인의 사랑에 간섭하고 정치적으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이없기까지 해요."
- 김 대표는 지난 5월 결혼발표 기자회견 때 '종교의 이름으로 차별과 증오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일갈하기도 했었다.
김승환 : "당시 몇몇 기자 분들은 기가 차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예수님이 보시면 화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팔아서 차별과 증오를 만드는지…. 그래도 종교가 무섭고 두렵잖아요. 그래서 <두 가지 사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교회를 중심으로 상영해 이해의 폭을 넓히려 하고 있어요. <두 가지 사랑>은 커밍아웃하신 성공회 게이 신부님에 대한 영화예요."
김조광수 : "기독교가 동성애에 대해 다 죄악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저는 종교가 누군가를 차별한다는 것은 종교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해요."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최근 어떤 목사가 설교 시간에 이들의 결혼을 비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조광수 : "국민TV 녹화갔을 때 피디님께 들었어요. 어떤 목사님이 '동성애자 둘이 결혼한다는 데 구약시대 같으면 돌로 쳐죽을 일이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김승환 : "너무 황당한거죠."
김조광수 : "어떻게 돌로 맞아 죽을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목사가 하는지. 하나님이 죄라고 얘기했다고 한들 돌 맞아 죽을 일이다 등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김승환 : "자기가 싫다고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는지. 다 다르고 다양하고 다름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답답하고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해요."
'당연한 결혼식'을 반대한다는데... "당연한 걸 왜 반대해?"
▲ 김조광수 감독 ⓒ 최윤석
"법적으로는 우리를 부부로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관습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결혼까지 한 커플인데, 부부로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요. 사람들 인식 속에서 '동성애 부부가 탄생했고 실제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강조하면서 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언론에도 우리를 이야기할 때는 부부라고 써 달라 요구해요. 법이 먼저 변하는 방식은 없을 테니 사람들의 인식을 먼저 변화시켜야 할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은 저희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김조광수-김승환 커플' 이러는 거예요. '당연한 결혼식'이라고 이름을 붙이니까, 국회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하면서는 '당연한 결혼식을 반대한다'고 하는데 형용모순이 되잖아요? '당연한 결혼식을 왜 반대해?'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있는 거지요."
김승환 대표 역시 "남아공은 법이 먼저 바뀌어서 동성결혼 합법화가 됐으나, 국민들 의식 속에서 인정받지 못해 여전히 탄압이 많다"고 말했다. 사람들 인식을 변화시키고 나서 제도가 따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이들의 전략이었다.
- 그래도 결혼식이 방해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소문에는 한양대 83학번들이 '사수대'로 뜬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김조광수 : "하하하. 그거 학교 동문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얼핏 들었어요. 혹시나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 같아요. 미디어나 주변의 시선이 우호적이다 보니까 반대하는 분들이 위기감이 있는 것 같지만, 결혼식 전에 호소문을 발표할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혼식이니 우리를 반대한다 할지라도 그 날 만큼은 그 자리에서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해 보려고요."
김승환 : "우리가 행사를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큰 확성기로 떠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봐요. 다른 주장이 있으면 우리 행사 이후나 다른 장소를 활용하면 되는데, 예의없는 행동은 하지 않으시리라 믿어요."
- 한국의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권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석호필로 불리는 배우 '웬트웨스 밀러'가 러시아의 동성애 혐오법 발효에 유감을 표시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영화제 참석을 거부했다.
김조광수 : "사회적 인식 수준은 일부 유럽을 제외하면 그래도 높은 수준이예요. 그러나 법적인 부분에 들어가면 후진국 중의 후진국이지요. 우리는 군형법 조항처럼 동성애자를 차별하라는 명백한 법도 있거든요. 동성애자들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법이 없다 보니 법적인 부분에서는 아시아에서도 많이 뒤처져 있어요.
그리고 석호필이 러시아의 영화제 거부했듯 우리도 그런 행사는 당연히 거부할 거예요. 내년 소치 올림픽에 맞춰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러시아의 동성애 현장 금지법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법이거든요. 크렘린궁에서 무지개 깃발을 펴는 것으로 항의가 있기도 했었는데, 어떤 나라에서든 그런 법률이 생겼다면 국제적 연대를 해야 할 거예요."
"성소수자 인권 신장 위해 어린이집·청소년상담센터 만들 생각"
▲ 동성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조광수-김승환 커플 ⓒ 레인보우팩토리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은 결혼축의금으로 만들려고 하는 '신나는 센터'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이들은 '당연한 축의금'이란 이름으로 결혼식을 홍보하며 모금을 하고 있다. 들어오는 돈을 활용해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김조광수 감독은 "센터를 준비하기 위해 재단을 먼저 구성한 뒤 이성애자들을 포함해 재단 이사진을 폭넓게 구성할 것"이라며 "일단 돈이 모이는 대로 작게라도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문화센터는 지역주민과 성소수자들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청소년상담센터와 어린이집은 신나는 센터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 청소년상담센터와 어린이집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김승환 : "어린이집을 꼭 하고 싶어요. 사실 편견 때문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이 많은데, 외국에 나가면 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이 있거든요. 한부모 가정이든 다문화 가정이든 정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반 어린이집을 못가는 아이들을 맡을 것 같아요."
김조광수 : "여기에 맡기면 아이들이 '우리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어'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편견 때문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어린이집을 하려면 요건이 까다롭고 돈이 많이 드는데, 처음부터 할 수는 없겠지만 돈이 모이는 대로 하나씩 하려고 해요. 청소년상담센터는 부모를 위해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자신의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책하는 부모님들이 있어요. 마치 자신들 잘못으로 정상 가정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이들이 동성애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분들과 아이들에게 상담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지요. 아이들에게는 네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알려줄 필요성이 있고."
이들은 내년 지방선거 때 단체장 후보들과 만나서 이런 구상을 전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약으로 내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당선된 뒤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성소수자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성소수자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정부 지원이 많아요. 우리는 합법적인 이주민만 지원하고, 소수자 지원에 대해서는 혐오하는 사람들이 난리를 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들도 소수자 인권지수를 높일 때가 됐다는 식으로 선거 때 압력이 필요하거든요. 일단 노동당 같은 경우는 적극적으로 해보겠다고 의사를 나타냈습니다."(김조광수 감독)
- 성소수자들의 활동이나 이번 결혼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승환 : "저희가 결혼식을 하는 게 사회시스템 접목시키거나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안정된 제도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거든요. 이 사회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는 정상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불행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이번 결혼을 통해 다양한 결합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김조광수 : "우리(성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해서 이성애자 권리가 침해당하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 판단하거나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동성결혼 허용된다고 해서 이성애자가 '나 동성결혼할래'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가족이나 결혼 제도의 근간을 흔든다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거든요. 위기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그냥 우리 모두를 위한 좋은 일이고. 모두의 권리가 확장되는 것일 뿐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