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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역사 교과서 견본 보기가 '꼼수'인 까닭

[주장] 저자들은 왜 심의위 권고를 따르지 않았을까... 교과서 정책 전반 재검토해야

등록|2013.09.03 11:27 수정|2013.09.03 11:27
지난 6월부터 논란이 일었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아래 국편)의 검정 심의를 최종 통과했다. 이 교과서는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이명희 공주대 교수, 고등학교 역사 교사 4명이 저자로 참여했다. 권희영 교수는 이번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필자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중심인 한국현대사학회 초대 회장 출신이다. 이번 교과서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 부분을 다룬 것으로 알려진 이명희 교수는 현재 한국현대사학회 2대 회장이다. 나머지 교사 4명은 그 신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얼마 전, 이명희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나와 있는 교과서들의 상당 부분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이 소중한 길이라는 인식을 하게 하는 데 부족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 문제의식이 이 교과서를 집필한 출발점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승만을 포함하여, 보수 진영에서 '영웅'처럼 '떠받드는' 박정희 등에 대한 본격적인 미화 작업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연히(?) 그는,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를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절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훼손시켰던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비판적인 입장에서 쓰려고 했다"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무조건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진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세상의 비판을 받게 된다면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세상의 비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는 듯한 어조다. 이번 교학사 판 고교 한국사의 역사 왜곡이나 특정 사실에 대한 의도적인 축소 집필, 우편향적인 내용 기술 등이 우려되는 이유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 견본 보기, 어렵네, 어려워

▲ 교학사에서 낸 고교 <한국사>교과서. ⓒ 윤근혁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문제가 이런 우려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교학사 저자들은 이승만을 "당시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 국민적 영웅"이라는 식으로 치켜세웠다. 교학사 저자들은 박정희의 5·16쿠데타는 '쿠데타'로 명기하였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나 의의 등을 적지 않게 서술해 놓았다.

교학사 저자들이 본심사에서 박정희의 5·16 선언에 대한 장준하 선생의 평가 글을 실으려고 한 것도 교학사 저자들의 '삐딱한'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심의위의 권고처럼, 그것은 장준하 선생이 줄곧 반박정희·반독재 투쟁의 일선에 있었던 평생 족적을 고려할 때 극히 이례적인 사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내용들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 나아가 왜 교학사 저자들이 적지 않은 대목에서 심사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는지 교과서 전체 서술 체제와 방향 속에서 판단해보고 싶다. 검정 심사 통과 및 최종 합격이 중시되는 검정 교과서 검정 심사에서 심사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국편이 지난 8월 30일 공개한 고등학교 교과용도서 수정·보완 대조표(수정본용 및 견본용)를 보면 미심쩍은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다.

하지만 현장 교사가 이번 역사 교과서를 실물로 차분하고 꼼꼼하게 살피기에는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내용을 보고 싶어도 실물 책을 보는 일이 복잡한 절차에 따라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교 한국사 검정을 총괄하는 국편(또는 교육부)의 지침을 '꼼수'로 의심하는 이유다.

현재 고등학교 역사과 교과용도서 견본을 일선 학교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견본을 직접 보려면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국편 국사관 207호를 방문하여 명확한 열람 목적을 명기한 '고등학교 역사과 교과용도서 견본 열람 신청서'라는 긴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이 서류는 '공개형태'와 '열람방법'이 오로지 '열람'과 '직접방문'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V'로 표시하게 함으로써 여럿 중에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물론(?) 현장 방문 전에 사전 열람 예약(신청 및 예약 확인메일 수령)을 해야 하는 꼼꼼한 준비 자세도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열람할 수 있는 시간 또한 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300여쪽을 넘을 게 분명한 역사 교과서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들을 확인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열람 대상의 복제(인쇄, 사진촬영, 복사, 녹음, 녹화 그밖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유형물'인 공책에 관련 내용을 필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교과서 견본 하나 보는데 형사상 책임까지 져라?

이뿐만이 아니다. 역사 교과서를 열람하려면 '서약서'까지 써서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 서약서에 담긴 내용들이 심상치 않다. 견본 열람을 위해서는 열람 전에 '유의 사항'으로 적힌 항목 네 가지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이들 중에는 관련 직원의 구두 시정 경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강제 퇴실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열람 신청자는 이런 내용을 확인한 후, 이를 어겨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민·형사상의 책임을 질 것임을 서약해야 한다. 교과서 견본 하나 보는 일이 형사상 책임으로까지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조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과문한 나로서는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역사 교과서에 어떤 중대한 저작자 권리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설령 그런 사항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더라도, 극히 제한적인 경로를 통해서만 교과서 견본을 보게 하는 취지를 내 아둔한 머리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다. 교과서는 결코 무결점·무오류의 텍스트가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얼마든지 그 한계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의 사전 검토와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려면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이 넓고 간단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교육부는 올해부터 예산상의 이유로 교과서 견본을 온라인상에서만 열람토록 교과서 관련 정책을 변경했다. 교과서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의 범위를 축소한 것이다. 교과서 채택 문제는 민감하다. 출판사와 각 지역의 도매업자들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된 상황에서 교사들이 최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교과서를 선정·결정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 온라인 열람을 통해서는 대상 교과서들을 서로 꼼꼼하게 대비하여 최종 선정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겠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의 제한적인 열람을 포함하여 교육부의 교과서 정책에 믿음을 주는 현장 교사는 많지 않다. 믿음을 주고 싶어도 그럴만한 '건덕지'가 없다. 교육과정의 잦은 변동과 이에 따른 교과서 교체, 교과서 심의와 그 이후의 후속 조치 등이 현장의 기대나 목소리 등과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말로만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감언'을 늘어놓지 말고, 제발 두 발로 직접 '현장'을 찾기를 바란다. 감히 장담하건대, 교육 당국의 교과서 정책을 지지하는 현장 교사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 것인지를 교육 당국은 진정성 있는 자세로 성찰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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