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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 입학사정관제... 교육현장은 갈팡질팡

[주장] 교육부,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 밝혀야

등록|2013.09.04 10:25 수정|2013.09.04 10:25
지난 8월 27일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 발표 후 일주일가량 지났지만 대학 입학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혼란스럽다는 분위기다. 바로 박근혜 정부의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도대체 입학사정관제를 앞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당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학생부+비교과 전형'을 남겨두긴 했으나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교육부는 올해까지 6년 간 총 1900억 원 가까이 지원된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을 '공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흡수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한 대학을 선정·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지원금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을 고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대선 후보시절에는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게다가 올해 초 새 정부 출범 후 교육부의 업무보고에서도 입학사정관제라는 용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지난 3월, 한 언론이 '입학사정관제 폐지'라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새로 생긴 전형은 당장의 혼란 막기 위한 것"

하지만, 서남수 장관은 곧바로 입학사정관제는 장점이 많은 제도이기에 폐지하기보다는 보완해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폐지 보도를 부인했다. 입학사정관제가 지속될 것이라는 암시를 준 것이었다. 또 올해 6월에는 '입학사정관 역량 강화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숫자의 대학에 395억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대학 관계자들 사이에는 '올해 지원된 예산은 이미 지난 정부 때 책정됐기 때문에 집행된 것일 뿐이고, 내년에는 예산이 중단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8월 말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이 발표되고 나면서부터 입학사정관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될 것이라는 의심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입학전형 간소화 방안에는 '입학사정관'이라는 명칭이 사라졌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명칭이 사라진 것은 앞으로 그만 하겠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에둘러 '학생부+비교과 전형'이라고 하지만 당장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 (입학사정관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입학사정관은 "지원금이 수십억 원에 이르는데 소규모 대학은 몰라도 큰 대학들은 더 확대해서 하지 않겠나, 명칭이 사라진 것은 전형요소 별로 묶었기 때문이지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지원금이 확대돼 입학사정관에 대한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대학 현장은 갈팡질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시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지금도 입학사정관 채용공고를 내는 대학들이 있다. 계약기간이 끝난 입학사정관을 내보내고 내년 2월 말까지 근무할 새로운 입학사정관을 채용하기 위해서다. 대학 인재상에 맞는 인재를 뽑는다면서 채용된 지 한 달도 안 된 사정관이 지원자를 평가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입학사정관제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지도 모른다.

차라리 공교육 정상화 기여 전형에 배점을 매겨라

▲ 입학사정관제 준비를 위한 모의면접 모습. 예비수험생과 입학사정관의 모습이 진지하다. 입학사정관들은 설명회·모의 전형 등에서 입학사정관제 준비는 미리미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이혁제


중요한 것은 입학사정관제가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는 제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교육부의 명확한 입장이다. 대학들 입장에서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타기 위해 교육부의 입맛에 맞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우선 전형을 명확히 해 대학들에 권고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돈(지원금)으로 대학을 길들이려면 차라리 간소화 방안에 포함된 ▲ 내신 ▲ 내신+비교과 ▲ 논술 ▲ 수능 위주의 전형 중 어떤 전형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지에 대해 배점을 매겨 대학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교육부가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수험생들에게 돌아간다. 어쩌면 내년에 대학전형을 치르는 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수많은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고교 설명회 때마다 "입학사정관제는 고1때부터 지속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많은 고교생들이 고1때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동아리활동 등 비교과 준비를 한다. 그런데 막상 본인이 지원할 대학이 다음 해에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한다면, 이 학생들의 노고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지난 8월 8일 치 <대학저널>에 따르면 일부 지방대학들이 내년에 입학사정관제 폐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사실 입학사정관제의 유지 여부는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길 수 있지만, 당장 내년은 아니다. 아무리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고 해도 수험생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폐지하려면 현 고1이 전형을 치르는 2015년까지는 유지하고 그 다음해부터 폐지하는 게 옳다. 그리고 그 내용은 2015학년도 대학입학기본계획을 세우는 올해 11월에 공식적으로 발표해 예비 수험생들이 미리 준비하게끔 해야 한다.

어쩌면 입시 혁명이 될 수도 있었던 입학사정관제가 계륵 신세가 된 것은 1차적으로 각 대학들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금에 눈이 멀었을 뿐 본래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일관성 없는 입시정책도 한 몫 했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교육부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입장 정리를 보다 명확히 해 고교 및 대학 내의 혼란을 막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이혁제님은 전남학부모협동조합 이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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