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위에 고개를 내민 '존재'의 반의어는?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26] 在
▲ 在‘재(在)’는 만물을 성장하게 하는 흙(土)과 새싹이 땅을 뚫고 돋아나는 모양인 재(才)가 합쳐진 글자로, ‘흙 위에 고개를 내밀어 존재함’을 나타낸다. ⓒ 漢典
에리히 프롬의 말년 저작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의 중국어 번역서 제목은 '점유 혹은 존재(占有或存在)'이다. 우리말과 영어, 중국어를 음미하다보면 있을 '재(在, zài)'와 있을 '유(有, yǒu)'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有'의 반의어는 '무(無)'로 명확한데 비해 '在'는 반의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있을 '재(在)'는 만물을 성장하게 하는 흙(土)과 새싹이 땅을 뚫고 돋아나는 모양인 재(才)가 합쳐진 글자로, '흙 위에 고개를 내밀어 존재함'을 나타낸다. 한자(漢字)의 나이가 3,500년쯤 되고, 새로운 의미가 생길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한자를 늘릴 수는 없다 보니까 한 글자가 여러 의미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어에서 '在'는 '있다'는 뜻 이외도 ~에서, ~에 달려 있다, 진행의 의미 등 다양하게 활용된다.
유비의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 조조에게 투항한 관우가 자신의 절개와 충성심이 변함없음을 "몸은 비록 조조 진영에 있지만, 마음은 한나라에 있다(身在曹营心在汉)"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의미로 쓰일 때도 있으니, 마음이 떠나면 몸은 있어도 있는 게 아닌 허깨비가 되는 모양이다. 중국인들은 살아가는데 근본이 되는 것이 남아 있으면 언제든 다시 회복하여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청산이 남아 있는데, 땔감 없는 게 뭐 걱정이냐(留得青山在,不怕没柴烧)"고 말한다. 두 경우 모두 '在'는 '있다'의 의미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태어나는 것은 쑤저우에서, 사는 것은 항저우에서, 먹는 것은 광저우에서, 죽는 것은 류저우에서(生在苏州,生在杭州,食在广州,死在柳州)"하라고 하는데 각 지역마다 중국의 대표성을 띠는 특징이 내포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在'는 장소 앞에 쓰여 '~에서'의 뜻으로 해석된다.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의 첫 구절은 "산은 높은 데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신선이 있으면 유명하고, 물은 깊은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용이 있어야 신령스럽다(山不在高, 有仙则名; 水不在深, 有龙则灵)"로 시작하는데 '在'가 '~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드러난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속 있게 내실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봄날 대지를 뚫고 고개를 밀어 올린 새싹 같은 존재는 어느 가을 열매를 맺고, 잎을 다 떨구고는 사라진다. 중국어에서 '죽는다'는 말에 대한 표현은 매우 다양한데 그 중의 하나가 '不在了(bú zài le)이다. 직역하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이다. 이 말이 어쩌면 '在'의 반의어인지도 모르겠다. 흙을 밀고 올라와 존재했다가, 다시 그 흙의 일부로 돌아가고 나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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