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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문화원장 선거가 주목되는 이유

[취재수첩] 지역 문화 살리는 일에 문화원이 앞장서야

등록|2013.09.05 14:28 수정|2013.09.05 14:28

▲ 울산 동구에 있는 울산대왕암공원의 핵심인 대왕암. 다리가 설치돼 건널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 일대를 2010년 3월 명승지정 예고했으나 일부 주민의 반대로 명승지정이 성사되지 않았다 ⓒ 박석철


"문화원장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또 지역 문화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우려됩니다."

며칠 전 울산 동구의 한 문화예술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구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기자로서도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문득 2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2011년 5월 30일을 전후해 각 언론과 포털 사이트에는 '울산 동구문화원장 선출 법정으로' '울산 동구문화원 전 간부, 새원장 선거 무효소송'이라는 기사가 연이어 떴다.

울산 동구문화원의 한 회원이 '두 달 전 있었던 문화원장 선거에서 선거 총회 규정을 어겼다'며 법원에 총회 무효 소송을 제기한 것. 소송 요지는 "문화원이 '임원을 선출하는 총회는 재적회원의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한다'는 등의 규정을 지키지 않아 전체 회원이 400여 명인데도 이중 이사 24명(이사 전체 30명)만 총회에 참석해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물론 두어 달 뒤인 6월 14일 소송을 취하해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미 '문화원장 자리를 감투로 생각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어난 뒤였다.

기자가 주목한 것은 당시 동구지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었다. 앞선 3월 문화재청이 "제2의 해금강"이라며 극찬하고 명승으로 지정예고한 울산 12경 중 하나인 '대왕암공원'을 지자체와 일부 주민들이 막아섰다. 평생 한 번 오기도 힘든 명승지정을 굳이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명승으로 지정되면 토목공사를 하지 못한다는 우려와 그 때문에 땅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소유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0년 3월 15일부터 한 달간 대왕암 일대를 명승 지정예고한 뒤 명승으로 지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지역의 반대가 있자 아직까지 명승으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이 일이 계기가 됐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최근 문화재청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명승으로 지정하려 하자 일부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서 주춤한 상태다. 다른 지역은 지정되지 못해 난리인데, 울산지역에서는 연거푸 두 개의 명승 지정을 거부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 2010년 3월 울산 동구청이 문화재청에 보낸 '울산대왕암공원 명승지정 심의보류요청' 공문. 이를 막지 못한 문화원의 역할이 아쉽다 ⓒ


하지만 한 해 시민 예산 3억 원 가량을 지원 받아 지역문화를 살리는 일을 하는 동구문화원은 명승이 취소되는 중요한 순간에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문화원장 자리를 두고 감투 싸움이나 하고 있었다. 기자는 물론 많은 주민들이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울산 동구문화원은 오는 9월 9일 이사회를 열어 문화원장 선거를 논의한 뒤 11월에 선거를 치른다고 한다. 선거의 방식과 진행을 두고 또 파행이 벌어질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울산 동구, 산업과 문화를 연계하는 관광산업 아쉬워

1990년대 중반에 울산 동구로 이사온 기자는 이곳의 역동적인 모습에 놀랐다. 세계 최대의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이 도시 중앙에 자리잡은 동구는 아침이면 수천, 수만 명이 오토바이로 출근한다. 저녁이면 술이 떡(?)이 된 채로 자신의 오토바이를 손으로 밀며 집으로 향하는 수많은 중년 남성들의 모습도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었다.

하지만 동구에 살수록 더 경이로웠던 건, 현대중공업이라는 세계 굴지의 조선소 외에도 이 지역의 문화 환경이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됐고, 볼수록 오묘한 바닷가 풍광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이었다.

1765년에 제작된 문헌 <울산부지지도>에는 현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 일대를 신라시대 왕들의 휴향지인 어풍대(御風臺)라고 기록했다. 1800년 <경상도읍지>나 1871년 <영남읍지>도 마찬가지다. 1895년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대왕암이 있는 울산동구 일산만과 전하만을 함께 '어풍대'로 기록했다.

어풍대는 동구 일산동 바닷가 일대의 문무대왕(비)의 수중릉을 왕들이 지켜보는 데 썼다고도 전해진다. 대왕암을 비롯해 거북바위, 어풍대 등 기암괴석이 청정 바다와 어우러진 절경을 왕들은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어풍대라는 문헌만 전해올 뿐 그 실상은 남아 있지 않아 문화 복원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울산 동구 문화계가 이런 중차대한 일들은 미룬 채 자리다툼을 위해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는 사실에 지역의 한 주민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만일 2년 전 울산 동구 대왕암 일대가 명승으로 지정됐다면, 이곳은 세계 최고 조선소와 인접한 명승으로 전국적 관광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전국에서 하루 2만여 명의 관강객이 현대중공업을 견학하러 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이 관강객들이 하루를 머물지 않고 바로 떠나 버리는 것을 명승 지정으로 붙잡을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동구 지역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연봉 1억 원을 치닫는 현대중공업 정규직과 나머지 비정규직 및 주민들간의 소득격차,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것이다. 명승 지정으로 다른 주민들의 관광수입이 올라간다면, 지금 전국 최고 부자 도시가 이제는 주민 골고루 잘사는 부자 도시로 발돋움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물론 울산시와 동구청은 현재 대왕암 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2년 전과 같이 토목 공사에 치중해 아름다운 문화를 해치는 일이 발생할까 우려도 된다. 이런 점들을 주민들을 대표해 문화원이 지켜보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울산 동구문화원장 선거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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