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너무 달라"
대선공약 폐기에 부산민심 술렁...선박금융공사 백지화에 신공항·해수부도 안갯속
▲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치에 정부가 백지화 입장을 밝히자 5일 오전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부산시의회에서 백지화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 정민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아무리 다르다지만..."
부산 지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부산 지역 공약 이행을 두고 한 말이다. 나아가기는커녕 뒤로 후퇴하는 모양새마저 보이는 지역 공약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있다.
최근 정부가 백지화를 결정한 박 대통령의 선박금융공사 부산유치 공약은 이러한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기간이던 지난해 11월 부산을 찾아 부산을 선박금융 특화도시로 만들겠다며 선박금융공사의 설립과 본사의 부산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른바 조선업계 겨냥 5개 공약 중 핵심이었다. 어려운 조선업계를 위한 특화된 금융기관을 설립하겠다는 내용이 이 공약의 골자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금융위원회가 선박금융공사 대신 선박금융관련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선박·해양금융센터' 설립 계획을 밝히면서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5일 오전에는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 153개 지역 시민단체가 모여 정부의 대선공약 폐기에 항의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부산시의회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시민단체 대표들은 "부산을 해양수도로 육성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내세운 핵심공약이 선박금융공사 부산설립이었는데 결국 이 공약을 파기하려 하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가 선박금융공사를 대신해 설립을 추진하는 선박·해양금융센터와 관련해 "기존 정책금융기관들의 선박금융기능 부산 이전은 한마디로 궁여지책"이라며 "단일법인도 아닌 지점장 협의회 같은 조직이 만들어진다는데 과연 선박금융기능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따져물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도 표출됐다. 이승규 부산항발전협의회 공동대표는 "이런 공약을 믿고 부산시민이 (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이 사실"이라며 "부산을 해양수도로 키우겠다는 정부 방침을 믿고 대선에 임했지만 오히려 금융공사를 무력화시키고 금융센터라는 졸작으로 시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잇따르는 공약 후퇴...부산시도 우려의 목소리
▲ 대선 기간이던 지난해 11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 조선기자재협동화단지를 찾아 선박금융공사 설립 등을 포함한 해양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 권우성
이러한 반발은 비단 시민단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부산시도 선박금융공사의 설립이 사실상 백지화 되자 즉각 반발했다. 부산시는 "대선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무산될 경우 지역의 상실감이 커지고 새정부의 국정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정부는 한국선박금융공사가 부산에 조기 설립될 수 있도록 대선공약 이행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이례적인 공식 입장까지 발표했다.
문제는 새 정부의 부산 지역 공약 후퇴가 선박금융공사 설립 표류에만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해양수산부 부활 및 동북아 해양수도 건설, 국제영상콘텐츠 밸리 조성, 부산 금융중심지 육성(선박금융공사 설립), 남해안 철도고속화사업 단계적 추진, 방사선 의·과학 산업벨트 구축 추진, 부산 신발 산업의 세계적 명품화, 도시재생사업 시행 및 사상 스마트밸리 조성 등을 부산지역 공약으로 밝혔다. 여기에 대선 기간 중 추가로 지역의 염원이었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까지 조속한 건설을 약속하며 민심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는 공약은 거의 없다. 오히려 부활한 해양수산부의 청사는 부산 유치 대신 사실상 세종시로 옮겨갔고, 동남권 신공항은 건설 대신 기존 공항 확장을 추진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수요조사와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거기에 정부가 내년도 부산시가 요구한 국비 예산 규모를 당초보다 1조 원 넘게 줄이기로 하면서 공약 이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부산시의 요구예산인 3조 1230억 원(359개 사업)에서 2조 1200억 원(307건)으로 32% 가량 예산을 삭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여당도 공약 후퇴 움직임..시민단체, 지방선거 연계 시민운동 경고
▲ 2일 국회 귀빈식당에서는 허남식 부산시장을 비롯한 시 간부와 유재중 새누리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포함한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협의가 열렸다. 부산시와 새누리당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 등과 관련한 의견을 나누었다. ⓒ 부산광역시
부산시는 지난 2일 새누리당 부산지역 의원들과 당정협의회를 국회에서 열며 대선공약을 포함한 부산지역 현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부산시와 새누리당 의원들은 선박금융공사와 신공항 등의 차질없는 추진을 위해 노력해나가겠다는 기본 뜻에는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선박금융공사 백지화와 사회간접자본 투자 삭감 방침이 분명한 만큼 예산 확보가 가능하겠느냐는 부정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새누리당 일부에서는 대선 공약 양보 대신 다른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부산시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도읍 의원은 "일부 의원들은 실질적으로 부산 해양 조선 업계에 도움을 주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한번 검토해보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해양수산부의 부산 유치 공약에는 "세종시만 해도 많은 문제점이 있는데, 해수부 본부가 부산에 있는 것과 관계부처와 함께 있는 것 중 해양수산 발전을 위해 무엇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인지 비교해서 논의 중"이라며 "대선 공약이라고 절대적 가치를 갖고 부산에 도움된다고 판단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고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신 김 의원는 동남권 신공항과 관련해서는 "신공항 문제는 입지 타당성 조사를 위한 예산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대규모 예산 삭감에서 새누리당 지역 의원들이 제 목소리를 못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부산 관련 예산은 정부안이 아직 확정이 된 것이 아니다"며 "정부안이 올라오더라도 국회 심의 과정이 남아있기에 아직은 속단할 단계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공약 후퇴 움직임이 있자 시민단체들은 강력한 공약 추진을 거듭 주문하고 나섰다. 박인호 부산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신공항에 대해 박 대통령이 공약을 실현하고 해양수산부 부산 입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입장을 말씀한 뒤 정 안되면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며 "내년 지방선거와 연계해서 강력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공약이 폐기되면 정부정책 불복종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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