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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의 <육조단경> 해석을 수정합니다

[서평] 영원한 행복 지침서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

등록|2013.09.06 13:51 수정|2013.09.06 13:51

▲ 중국 소주에 있는 한산사 경내. 육조 혜능 대사는 소주에서도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 임윤수


육조 혜능대사만큼 스님들이 하는 법문에서 자주 인용되거나 전설처럼 전해지는 인물도 흔치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나무를 해다 팔며 연명하던 나무꾼, 출가를 해서는 여덟 달 동안 방아만 찧던 행자, 글을 배우지 못해 게송조차도 옮기지 못하던 문맹이 졸지에 달마 대사를 초조로 하고 있는 중국 선종의 법맥을 이어 받아 육조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 조계종이나 조계사(曹溪寺)에 들어가 있는 '조계'가 바로 육조 조계 혜능대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대한불교 조계종의 법맥은 육조 조계혜능대사에 법맥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조단경>은 석가모니 이래 역대 스님들께서 남기신 말씀 중 유일하게 '경(經)'자가 붙어 전해지며, 선종의 종지(宗旨)가 담겨 있어 선 수행의 지침서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고 합니다.

경의 제목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단(壇)은 대승보살계 무상심지계(無相心地戒)를 주는 계단(戒壇)으로 무상지심계는 주고받음이 없이 주고받는 계, 진여문 입장에서 수계를 한다는 뜻이니 육조단경은 육조 혜능대사가 43명의 제자들에게 주고받음 없이 주고받은 가르침이자 계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영원한 행복 지침서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

고우 스님의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조계종출판사)은 전설 같은 인물, 1300년 전인 713년 8월 3일(음력)에 입적하신 육조 혜능대사가 43명의 제자들에게 전한 가르침을 후대에 집대성 한 법문집, <육조단경>을 고우 스님께서 21세기 감각으로 풀이하고 일반인들의 눈높이로 해설한 내용입니다.

▲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지은이 고우 스님┃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2013.09.07┃2만 8000원 ⓒ 임윤수

일자무식이었던 혜능대사가 오조 홍인 스님으로부터 법과 가사를 신표로 물려받으며 법맥을 이어받는 과정은 경외심과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드라마 틱' 자체입니다. 고우 스님께서 강설한 육조단경에서 읽을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아주 쉽고 시사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육조 대사께서 설하신 가르침 자체가 직설적이고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1300년이라는 세월에서 오는 표현 차가 실재합니다. 그리고 같은 가르침(내용)일지라도 이를 해독하거나 이해하는 정도 차 또한 엄연하니 모든 사람들에게 쉽다고만은 할 수 없을 진데 고우 스님께서 강설하신 <육조단경>은 일반 교양서로 읽어도 좋을 만큼 쉽고 세세하고 명확하고 재미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한국불교만큼 법을 깊이 보는 곳은 없다. 우리는 조사선 전통이 내려왔기 때문에 안목이 굉장하다. 다른 어느 나라 불교보다도 경쟁력이 있다.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불교는 틱낫한 스님이나 달라이라마 스님의 가르침보다 더 깊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틱낫한 스님이나 달라이라마 스님만큼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간화선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니다. 바로 공부 따로 생활 따로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수행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법문이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실천하고 생활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실천은 제쳐놓더라도 정견도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다. -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 122쪽

지극히 평범한 표현이고 단박 한 설명이지만 그 뜻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고우 스님께서는 강설만 쉽고 재미있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듯 일부 스님들로 인해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요즘 승가의 민낯을 감추지 않고 드러냅니다. 한 마디로 말로만, 법문을 할 때만 육조 혜능대사의 어록을 인용만 하지 말고 제대로 실천하며 살라는 장군죽비 같은 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목탁소리와 독경소리가 들려야 할 절집에서 긴급을 요하는 아우성이 들리고, 법계 성성해야 할 절에서 파계의 피멍자국이 어른거리니 외면만 하고 계실 수는 없었나 봅니다. 육조 혜능대사의 일대기가 그러하고, 역대 조사들께서 남기신 가르침이 그러하니 말로만 중노릇 하려 들지 말고 제대로 살라는 것을 덧붙여 강조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집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부 스님들이 벌이는 감투싸움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인천의 스승입네 하며 중생들 구제하려고 들지 말고 중생들에게 피로감이나 주지 않는 수행생활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스님께서도 이를 지적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잘못 된 사회에 목소리 내 바로 하는 게 '하화중생'

자본주의는 좋은 제도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 법을 생활화하고 사회화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 최소한 수단과 목적 정도는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단과 목적이 완전히 뒤엉켜 있다. 좋은 직장 가고 돈벌이 하는 것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이지, 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 육조 스님 시대에도 그런 현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 생활화는 물론 사홍서원을 세워 사회화도 강조하셨다. 부처님께서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말씀하셨다. 상구보리가 생황화고, 하화중생이 사회화다. -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 164쪽

고우 스님께서는 사회화도 말씀하십니다. 말로만 하는 하화중생이 아니라 비뚤어진 사회적 가치를 곧게 세우는 데 앞장서는 것이야 말로 육조 혜능 대사께서 설하신 네 가지 원, 사홍서원에 부합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경전에서나 읽을 수 있는 용어들, 보고 있어도 무슨 뜻인지를 선뜻 새길 수 없는 용어들이 즐비한 설명이라면 어려워 접하기 힘들겠지만 이렇듯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을 적시하며 설명하니 읽어 가는 즉시 이해됩니다. 

고우 스님의 강설은 그동안 해설되었던 육조단경에서 모호하거나 난해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콕콕 짚어가며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만약 밖으로 모양相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리접지 않으면 본래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한다.

이 말에는 모순이 있는 것 같아 덕이본을 보니, 거기에는 '만약 밖으로 모양이 있으면 안으로 곧 어지럽고, 밖으로 모양을 여의면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아니하다'는 두 구절이 있다. 이것이 훨씬 분명하다. -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 140쪽

성철 스님은 무생성을 '나는 성품이 없다'라고 해석했는데,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꽃과 종자는 땅을 인연해 있다. 또 물로 인하여 파도가 일어난다. 그러니 "비록 땅을 인연하여 꽃과 종자가 나오지만, 그 꽃과 종자가 남이 없는 성품이라서 땅에도 또한 남이 없다"고 해석한다. 파도에 물이 있는데 그 물이 없던 것이 생긴 건 아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반야심경에 나오듯이 그렇게 해석하면 좋겠다. -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 428쪽

<육조단경>은 '돈황본'과 '덕이본'등 여러 본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고우 스님께서는 성철 스님께서 원문을 번역해 놓은 <돈황본 육조단경>을 저본으로 해 33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강설하고 계시지만 애매한 부분은 <덕이본>에서 확인해 분명하게 정리하고, 성철 스님의 번역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다시 해석해 놓는 적극성도 과감하게 보이셨습니다.

한국 불교계에서 성철 스님이 차지하는 무게감이 있으니 확신이 서지 않거나 확실하지 않으면 감히 이론(異論)을 제시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고우 스님의 강설은 먼저 출판되었던 육조단경들을 아우를 만큼 섬세하면서도 깊습니다.   

▲ 중국 소주에 있는 한산사 법당에 모셔진 불상 ⓒ 임윤수


내가 떠난 뒤에 세상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며, 상복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며 나의 제자가 아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 우리 다비문화는 고칠 것이 많다. 육조 스님은 아주 간소하게 돈과 비단도 받지 말고 상복도 입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너무 화려하다. 육조 스님도 내가 세상에 있을 때와 같이 간소하게 하라 당부한다. 죽었다고 해서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니까.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 458쪽

육조 혜능대사께서 마지막으로 설하신 가르침 중 일부 입니다. 육조께서는 아주 검소한 사후처리를 당부하셨습니다. 이를 어기면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까지 강조하고 계십니다. 고우 스님께서는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빌려 한국 승가에서 호화스럽게 치러지는 다비문화의 병폐를 일갈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조단경>을 애독하는 이유는?

책 읽는 것을 만류하셨던 성철 스님께서도 공부할 것을 권하고, 스님들께서 법문을 하실 때 빈번하게 인용하는 구절들이 담겨 있는 <육조단경>은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도 가까이 두고서 애독했던 책이라고 합니다.

선승들과 사회적 지도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육조단경>을 가까이 두고 애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와 가치, 꿀처럼 달콤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색 열쇠나 어두컴컴한 세상을 건너게 하는 비결의 징검다리 같은 뭔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 <육조단경>을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이 시대의 대강백 고우 스님께서 다시 강설해 내놓으시니,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을 일독하는 기회야 말로 영원한 행복 지침서를 챙기는 행운이며 선사상이 뭔가를 알아차리는 돈오의 순간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덧붙이는 글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지은이 고우 스님┃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2013.09.07┃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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