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거리의 인문학자, 사람들과 소통하다

[서평] 최준영의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등록|2013.09.07 11:36 수정|2013.09.07 11:36

▲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의 표지. ⓒ 이지북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본인의 이름보다 '거지교수'·'거리의 인문학자'로 더 잘 알려진 최준영의 에세이집이다. 그는 영국에서 노숙인 재활을 도울 목적으로 발간·판매되는 잡지 '빅이슈'를 국내에 도입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2005년 시작된 성프란시스 대학(최초의 노숙인 인문학 과정)과 관악인문대학·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등에서 노숙인·미혼모·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주었다.

더 낮은 곳에서 시작한 소통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쩌면 저자 본인이 그 아픔을 직접 느끼며 살아왔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고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대학은 고생끝에 졸업하지 못했으며, '빅이슈코리아'는 빚을 내면서 창간을 시도했지만 자금사정으로 중간에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그의 삶이 길거리를 전전해왔기에 노숙인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또한 저자 최준영씨는 자신의 글에서 해고노동자에 대한 생각과 감회를 적기도 했다. 다음은 그가 쌍용차 해고 노동자 스물두 번째 희생자 추모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느낀 심정을 바탕으로 지은 자작시이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미안한 일이다
밤새 거리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들이 있다는건 미안한 일이다
가족과 떨어진 슬픔에 술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일할 수 있다는건 미안한 일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미취업 청년들이나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의 삶을 살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을 생각해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살려고 올라갔다가 죽어서 내려온
한진중공업 김주익과 용산 남일당 건물에 올랐다가
주검도 없이 죽어 내려온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산다는건, 정말 미안한 일이다
해고자의 삶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끝내 삶을 놓아버린 쌍용차 해고 노동자 스물두 명의 넋을 떠올려 보면
- 최준영, '산다는 건 미안한 일이다' (본문 154쪽)

이렇듯 최준영씨는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곁에 서서 더 많은 글을 썼다. "내가 이런 방법으로 성공했으니 당신들도 이렇게 해봐요"라는 식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소시민의 입장에서 삶과 세상을 바라본 글로 감동을 이끌어낸 셈이다. 이러한 저자의 발걸음을 돌이켜보면, 그에게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이 주어진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대에도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희망을 위하여'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에서 최준영씨는 자신이 겪은 일화를 쓰기도 했다. 인문학 강의를 통해서 다른 삶을 살게된 노숙인이나 교도소 수감자의 이야기가 바로 그 사례이다. 저자는 그들이 삶을 포기하는 주된 이유가 '금전적 결핍'이 아니라 삶에 희망을 잃은 '심리적 결핍'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궁핍한 이 시대에도 인문학이 더욱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독서의 해'를 지정해놓고 인구당 10원의 예산을 책정하는 문화부, OECD 최저 수준의 공공도서관 수, 독서를 방해하고 암기만 강요하는 입시정책. 이런 현실이 우리의 삶을 더욱 결핍이 가득한 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국가나 정치의 실수에는 사람들이 관대하지만, 개인의 실수는 이해하지 못하고 척박한 세상을 지적한다. 정작 사람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은 방관하면서 개인에게만 혹독한 현실인 것이다. 우승열패의 신화는 존재하지만 패자부활의 신화는 없고, 노숙인처럼 개인을 내팽개친 경쟁만능의 사회.

저자 최준영씨는 이런 흐름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를 낳은 배경이라고 설명하면서, 국가의 실수에는 엄정하게 책임을 물으면서 개인의 실수에는 때때로 관대함을 보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개인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물질만능과 성공 만이 최고의 가치로 평가받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과 '개인에게 관대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것을 바탕으로 쌓은 희망과 여유가 우리 삶을 조금 더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결론이다.

'힐링'이 아닌 공감, 그의 글쓰기 비결은 '꾸준함'
연이은 사업실패로 고난을 겪은 최준영씨는 2000년부터 인터넷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책을 읽으며, 하루 2시간씩 꾸준하게 포털사이트에 글을 쓰자 몇개월 뒤부터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SNS시대로 들어선 이후에는 페이스북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420자 칼럼을 쓰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뜨거워진 관심에 출판을 제의받아 책을 내기도 했다.

성공한 삶을 살아온 누군가와 달리, 어렵고 가난한 처지를 겪은 그였기에 더욱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10년간 쉬지 않고 글을 써왔고 책의 제목도 그러하지만, 정작 내용은 글을 쓰는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다 할 학위나 전문분야가 없는 저자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이 글쓰는 기술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역시도 자신의 인생살이와 수 많은 노숙인·노동자를 소재로 글을 쓰면서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꾸준히 서평을 쓰다 라디오에 출연하고, 신문에 칼럼 기고를 해온 '거지교수' 최준영씨. 이제는 전국 초청강연 섭외 1순위가 된 대중강연가로서 그는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글을 쓴다"고 수줍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 솔직담백한 성실한 글쓰기가 삶을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꾸준한 글쓰기를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선의가 순환되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저자의 확신처럼, 우리도 꾸준히 글을 써가다보면 소통이 활발한 따스한 삶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가 말하듯이 한 줄의 좋은 문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삶의 자세'임을 잊지 않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최준영 씀 | 이지북 | 2013.07. | 1만3700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