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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사 부도? 그럼 서울시가 책임져야지"

[르포] 용산국제업무지구 지구해제...'7년 족쇄'서 해방된 서부이촌동

등록|2013.09.07 21:03 수정|2013.09.07 21:03

▲ 6일 용산구 서부이촌동. ⓒ 김동환


"우리는 내일 잔치할 거예요. 막걸리 잔치할 테니 기자님도 오슈."(대림아파트 주민 유아무개씨)
"인터뷰고 뭐고 다 끝났어. 말 하기 싫으니 저리 가요."(서부이촌동 주민 박정화(가명)씨)

지난 6일 서울시 용산구 서부이촌동. '단군이래 최대 개발사업'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작은 동네는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얼굴에는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우울함과 기쁨이 교차했다. 당장 개발하지 않아도 되는 아파트 주민들은 안도하는 표정이었지만 개발이 절실한 노후 주택 주민들은 막막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시는 지난 5일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지구지정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코레일이 제출한 사업에 주민동의 없이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킨지 7년 만이다.

이날 만난 이곳 주민들은 지난 7년 동안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시 차원의 적절한 보상책을 거론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금전적인 보상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무조건 환영'...단독주택 주민들은 '우울'

▲ 6일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한 골목. ⓒ 김동환


서부이촌동은 5개의 아파트와 단독주택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주민들이 '지번'이라고 부르는 단독·연립·다세대주택(604가구)는 대체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찬성하는 쪽이었다. 반면 대림아파트와 성원아파트, 중산·시범아파트 주민들은 개발 반대가 다수였다. 개발 자체에도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강제수용 방식으로 이뤄지는 개발은 보상을 제대로 받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구도에 변화가 온 것은 지난해 8월. 주민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약속했던 국제업무지구 사업시행사 드림허브 측이 돌연 보상 확약서 내용을 지킬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부터다. 반대 입장이었던 아파트 주민들은 더욱 강렬한 반대 행동에 나섰고 개발 찬성이었던 지번 주민들 상당수도 반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서울시가 최종적으로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지구지정 해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발이 무산되긴 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주민들의 반응은 온도 차가 분명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하나같이 '무조건 환영'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대림아파트 주민인 이갑진씨는 "이 개발 막으려고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얼마나 힘들게 시위하러 다니고 투쟁하러 다니고 했는지 모른다"며 "정말 힘들었는데 다행히 없던 일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항상 개발 반대 집회를 열었던 시각인 토요일(8일) 오후 7시에 아파트 안에서 막걸리 잔치를 벌일 예정이다.

성원아파트 주민인 이아무개씨는 아파트 외벽에 그려진 대형 개발반대 문구를 가리키며 "시위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주민들이 멀쩡한 아파트에 밖에서 잘 보이라고 이런 걸 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업 진행되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여기서 멈추길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번 주민들은 드림허브의 개발 방식에는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개발이 취소된 것에 상심을 감추지 못했다. 지번 주민 박아무개씨는 "이 동네는 30~40년 된 주택이 대부분이라 개발이 꼭 필요하다"며 "주택 경기도 안 좋은데 이제 이 동네 개발은 물건너 간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부 지번 주민들은 기자라는 말에 손사레부터 쳤다. 한 여성 주민은 "기자들에게 인터뷰 해줘봐야 내가 원하는 말은 안 나가고 개발에 부정적인 기사만 나가더라"라며 "결국 이렇게 됐고 이제 우리는 이런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데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반문했다.

서울시 "시공사도 아닌데 금전적인 보상은 어렵다"

▲ 6일 서울시 용산구 서부이촌동. ⓒ 김동환


개발은 끝났지만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입은 피해들은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 4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함께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하기도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가 통합개발 방침을 정하면서 이곳은 주택 매매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지역이 됐고, 결과적으로 주민들이 경제적인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서부이촌동 전체 2298가구 중 1250가구가 평균 3억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상황이다.

일부 주민들은 이번 개발지구지정 해제 조치가 '행운'에 가까운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시행사가 스스로 접었기에 망정이지 건설경기가 호황이었다면 그대로 개발이 진행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도시개발법을 이용해 주민 56%만의 동의를 얻은 채 통합개발을 진행했던 것은 서울시의 횡포이고 현재의 상황은 서울시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림아파트 주민 김재훈씨는 "우리가 7년 동안 겪은 것은 불도저식 일방통행 행정이었다"며 "그간의 피해에 대해 서울시가 어떤 형태로든 보상 방안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2종 주거지역인 이곳을 준주거지역 정도로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도지역 성격이 2종 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바뀔 경우 용적률이 2배가량 오르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은 더 많은 개발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지번 주민들은 서울시가 한층 더 깊숙히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애초 통합개발을 서울시가 진행했으니 어떻게든 이곳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번 주민 김아무개씨는 이번 서울시 발표에 대해 "어이가 없고 불쾌하다"며 "지구지정 해지를 하더라도 뭔가 대책을 마련해놓고 해지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아무개씨 역시 "오세훈의 서울시만 서울시냐, 서울시는 똑같은 서울시 아니냐"라며 "시행사가 망했다면 통합개발 진행한 서울시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서부이촌동에 대해 금전적인 보상은 불가능하다고 분명히 선을 그은 상태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시행사가 아닌 시 당국에서 보상을 해주기는 어렵다"면서 "일부 주민들이 거론하는 용도지역 변경도 시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도시계획위원회 등 전문가 검토를 통해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이촌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정광희(가명)씨는 "아파트야 아직 재개발과 상관없지만 지번 같은 경우는 재개발이 시급하지만 결국 서울시는 별다른 조치를 못 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원순 시장 자체가 재개발에 비우호적인데 이제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는 게 근거다.

그는 "이 지역은 인구 밀도도 높고 재개발 하기 어려운 지역이라 준주거지역 지정으로도 개발이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선거 때 되면 정치인들 과대공약에 희생되기 딱 좋은 지역인데 그런 일 또 생길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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