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크라운베이커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25년만의 폐업, 대리점주·직영직원들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
▲ 안국역 근처에 위치한 크라운베이커리 ⓒ 김지혜
1998년. 3년간의 연구 끝에 100% 순 우유로 만든 프리미엄 생크림케이크가 국내에 첫 출시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식용유지가 들어간 미끌거리고 느끼한 크림케이크뿐이었다. 당시 '순 우유 생크림케이크'는 제과업계와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로 크라운베이커리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크라운베이커리의 빵과 케이크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크라운제과는 5일 "앞으로 빵은 만들지 않고 과자 사업에만 집중하기로 했다"며 "이달 말로 크라운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사업에서도 철수할 것"이라고 밝히며 크라운베이커리의 폐업을 선언을 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과점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대형 업체가 25년 만에 문을 닫는 것이다.
크라운베이커리는 1988년 당시 크라운제과 계열사로 설립됐다. 당시 가맹점 수가 1000여 개일 정도로 업계 최고를 달리며 199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대형 업체들과의 경쟁에 밀리면서 동네마다 보이던 크라운베이커리는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크라운베이커리 측은 가맹점 수가 2010년 252개에서 2011년 160개, 2012년 97개로 감소, 결국 현재는 70개 점포만이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많던 크라운베이커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얼마 남지 않은 크라운베이커리의 흔적을 따라가 봤다.
지난 5월 본사는 사업 철수 부인... 대리점주들은 '정리' 시작
▲ 을지로에 위치한 뚜레주르 베이커리. 대리점주는 "작년 크라운베이커리에서 뚜레주르로 변경해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 김지혜
지난 6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크라운베이커리 가맹점을 찾아갔다. 포털에서 주소를 확인한 뒤 찾아갔지만, 크라운베이커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뚜레쥬르가 들어서 있었다. 1년 전 크라운베이커리에서 바뀐 것이다. 전화번호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을지로 뚜레쥬르 점주 강아무개씨는 "크라운베이커리에 좀 못 미더운 게 있었다"며 "그래서 다른 제과업체의 가맹점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유는 말할 수 없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주변 화장품가게 점주는 "그 집 크라운베이커리 할 때 장사가 안 됐다, 그 집 아저씨가 뚜레쥬르로 바꿀 때 인테리어 하느라 돈 들어 큰일이라고 말했다"고 귀띔했다.
이밖에도 포털에서 전화번호가 검색되는 서대문구 소재 크라운베이커리 대리점 두 곳과 용산에 있는 대리점을 각각 방문했지만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인천의 한 크라운베이커리 대리점도 6개월 전에 카페로 업종을 변경해 운영하고 있었다.
본부에서 폐업하라면... 대리점주는 "네" 할 수밖에
크라운베이커리는 오는 9월 30일까지 베이커리 가맹사업을 철수하겠다며 지난 3일 전국 가맹점주들에게 사업 종료를 알리는 내용 증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리점주들은 이미 폐업을 예견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크라운베이커리 대리점주는 "꽤 오래전부터 회사에서는 폐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며 "근데 차후 계획이나 폐업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지 않으니 대리점들은 초초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회사와 폐업 진행과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우리같은 대리점주는 '적절한 합의'라는 게 없이 그냥 정리해야 하는 것"이라며 "나도 복잡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다른 업종을 해야 하는지 지금 급하게 알아보는 중"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크라운베이커리는 지난 5월 가맹점주 협의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당시 사업 철수를 강하게 부인했었다. 가맹점주들은 크라운제과를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한 바 있다.
당시 가맹점주협의회는 "본사가 가맹점주들에게 주문제도 일방 변경, 반품 거부, 케익 배달서비스 폐쇄, 할인·적립카드 사용 일방 중단 등 도저히 영업을 할 수 없는 조치를 잇따라 취했다"고 밝혔다. 본사가 가맹점주들의 피해에 상응하는 변상·배상을 해야 함에도 가맹점주들이 스스로 폐점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가맹사업 적자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크라운베이커리 측은 '추진하는 일들에 대해 가맹점주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크라운베이커리는 4개월 만에 입장을 바꿔 폐업을 선언했다.
새로 장사 시작해야 하는 대리점주들... "턱 없이 부족한 보상금"
▲ 안국역 근처에 위치한 크라운베이커리. ⓒ 김지혜
그러나 본부의 폐업 결정에 합의하지 않고 있는 가맹점들도 있다. 크라운베이커리 측은 현재 전국 70여 개의 가맹점 가운데 75% 정도와 사업 종료에 합의한 상태라고 밝혔다. 또한 크라운베이커리는 가맹점주들에게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의 보상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부 가맹점주들은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크라운베이커리의 대리점주는 "보상금이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기업이라고 믿고 시작했는데 폐업한다고 통지하더니 보상금도 너무 적다"며 "이 자리에서 빵 장사를 계속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런데 앞으로 회사랑 어떻게 폐업 처분이 진행될지 걱정이다, 지금 제시한 보상금으로는 다시 장사를 시작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직영점 직원들 "어디로 가야 하지..."
크라운베이커리 본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직원들도 폐업 소식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년 간 크라운베이커리에서 일했다는 서울의 한 직영점 직원은 "회사가 서너 번의 회생할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며 "그런데 그 기회를 놓쳤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타 경쟁업체와 비교했을 때 실패했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미 지난해부터 마음의 준비는 했다"며 "지난해부터 회사에서 계속 매출이 떨어져서 '곧 문 닫을 것 같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업 급여를 챙겨준다고 했다"며 "수년간 몸담아 왔던 회사가 문을 닫으니 마음도 안 좋다, 다시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것도 사실 부담"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누리꾼들은 SNS를 통해 '20여 년 전 아파트 지역이나 동네에서 최고였는데 영원한 승자는 없다' '크라운 베이커리 폐업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우유 생크림 케이크는 정말 최고였는데' '빵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빵집이 사라지는 건 너무 너무 아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 자신의 트위터(@consl***)에 "25년 전통 크라운베이커리 폐업 선언, 파리바게뜨·뚜레쥬르에 밀려 사업 철수한다는데… 비즈니스 세계는 정말 냉정하네, 2등 안에 못들면 전통이고 뭐고 얄짤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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