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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엄마가 되어줘 감사해요

[공모 - 가족 인터뷰] 아프지 않고 산다는것

등록|2013.09.08 17:50 수정|2013.09.09 09:29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 마트에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와 바나나 우유를 산다. 일주일에 한번씩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기대하며 설레다. 평상시 잘 사주지 않는 과자를 사주니 아이들도 할머니에게 가는 것을 좋아한다.

<7번방의 선물>에 나오는 류승룡이나 <아이앰셈>에서의 숀펜은 비록 장애가 있지만 딸을 지극히 사랑하며 그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눈물샘을 자극한다. 현실에서도 그러한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지만, 나는 매번 현실의 장벽에서 무너진다. 원래 생겨먹은 자체가 그런 사람이다. 잘 몰라서 그렇다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한껏 부풀어 엄마를 만나러 갔다가 실망해서 돌아서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평생 반복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엄마를 만나러 갈 때마다 설레면서도 동시에 가슴 한 구석이 아프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응 기다렸어. 초코파이는 사왔어? 바나나 우유 4개 붙어있는 4팩 사오라니깐 왜 2팩만 사왔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도 나눠먹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할머니를 만나 기뻐 달려가도 엄마는 내 손에 들려있는 먹을 것에 더 신경을 쓴다. 엄마가 선호하는 제품이 따로 있는데 내가 깜박하고 다른 초코파이를 사왔다.

"000 초코파이를 사오라니깐... 두유는 검은콩 호두 들어간 게 맛있는데... 왜 이렇게 조금 사왔어?"

'올 때마다 간식 사와서 고마워'라는 답변을 바라진 않았어도 또 엄마의 반응을 반은 예상했으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울컥 올라온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잘 지내는지 물어보지도 않구. 왜 엄마는 내 엄마가 되어서...'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엄마 대신 답을 건넨다.

'너도 자식 키우고 돈 벌기 힘들텐데 엄마한테 매번 돈도 많이 쓰게 해서 미안해.'

나는 내가 힘들 때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습관이 있다. 어찌보면 평생 달련된 나를 보호하는 방법인 듯하다.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건네면 올라왔던 서운한 감정이 조금은 사그라진 다.

"엄마, 잘 지냈어요? 불편한 건 없어요?"
"응 잘 지내."

이야기 나누기보다는 사 온 과자를 먹으며 이내 행복해 하신다. 과자 하나에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이들과 같다.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 엄마의 모습인 것을. 정말 내가 지쳤을 때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그냥 시킨다. 마치 나에게 얘기하듯이.

"'엄마, 응경아 과자 사와서 고마워. 다음에는 더 많이 사와. 사랑해'라고 나에게 얘기해봐요. 따라서 말해봐요."
"응. 과자 사와서 고마워. 다음에는 더 많이 사와. 사랑해."
"엄마, 과자 적게 사와서 서운했어요? 미안해요. 다음엔 더 많이 사올게요. 사랑해요."

엄마를 꼭 안아주었다. 내 가슴이 따뜻함으로 채워진다. 엄마도 나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한결 밝은 표정이다.

"엄마, 다음에는 내가 여기 사람들 다 나눠먹을 수 있게 초코파이 상자채로 사올게."

초코파이의 행복과자를 좋아하는 엄마 ⓒ 공응경


"엄마 살면서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어, 병원에 묶여 있을 때. 그래도 난 한번 밖에 안 묶여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여러번 묶였어. 병동에서 남의 물건 훔치고..."

엄마의 이야기 뒤편으로 가슴 아픈 일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영화 주인공 하라고 하면 잘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한번은 엄마가 먼저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셨다. 한동안 잘 지내더니 불안하다며 병원으로 가자고 하신다. 엄마와 병원 가는 길에 1차선이라 차를 세울 수도 없는데 갑자기 병원에 안 가겠다면 자동차 문을 연다. 열면 위험하다고 기다리라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다.

자동으로 문이 잠기지 않는 소형차다 보니 난감한 상황에 어쩔수 없이 차를 세웠더니 순간 엄마가 문을 열고 6차선 도로 한복판을 뛰어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엄마를 쫓아 달리기를 하였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주변 차들은 빵빵거리고 간신히 엄마를 붙잡아 다독거리고 순찰차가 보여 경찰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죄송한데요. 저희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가는 중인데 지금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졌어요.
좀 데려다 주시면 안될까요? 힘드시면 제 차 뒤에서 좀 따라와 주시면 안될까요?"
"지금 그럴 시간 없습니다. 알아서 해결하세요."

중량교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청량리 병원에 도착할 수 있을 듯한데 경찰관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어째 어째 간신히 병원에 도착한 기억이 떠오르다. 그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세상은 혼자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란 생각이 컸다.

아무래도 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묶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상처가 되었나 보다. 종종 그때 일을 얘기하신다.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을 묶어 놓을 수 있지 의아할듯 하지만 마구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거나 통제 불가능한 행동을 할 때는 어쩔 수 없다. 또 많은 간호사들의 노고를 알기에 병원에 어떤 항의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이야기는 상처가 되는 듯하다. 엄마가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왜 몹쓸병은 엄마를 계속 괴롭히는가?

엄마의 몹쓸병이 밉지만 병으로 비롯한 많은 일은 나를 성장시키고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운전 중 누가 끼어들면 그냥 양보한다. 그 사람도 나처럼 말 못할 사연이 있을지 모르잖아. 얼마나 급하면 위험하게 끼어들기를 하겠어 라고.

"엄마. 그때 많이 힘들었지. 여기는 그래도 요양원이라 병원보다는 편하지? 더 좋은 데 모실 수 없어서 미안해요."
"아니야. 여기 좋아."
"걷기 연습은 매일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럼, 나 (보조기)안 끌고 혼자서 걸을 수도 있어."
"엄마. 그래도 넘어질 수 있으니깐 보조기 끌고 걸으세요. 살도 많이 쪘네. 간식 많이
먹지 말구요."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 요양원 입소시 검사결과 ⓒ 공응경


"엄마, 꼭 하고 싶은 것은 뭐에요?"
"하고싶은 거 잘 모르겠어. 그냥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에게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나 혼자 "엄마 건강해지면 제주도 여행가요" "엄마 어서 나아서 집으로 같이 가요"라고 말했을 뿐. 어찌보면 매번 실망해서 되돌아 갔던 나는 엄마에게 실망했기보다는 내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부풀어 혼자 실망을 하고 되돌아 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과 1년 전 몸에 욕창이 생길 만큼 움직이지 못하던 엄마가 이렇게 건강히 걷는 것만으로 기적인데 좀 좋아지면 그  감사함을 잊게되니.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망각일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잊게 해주니 말이다.

'엄마! 나의 엄마가 되어 주신 것에 너무나 감사해요' '엄마 덕분에 매일매일이 기적임을 느끼며 살아가게 돼요' 라고 마음 속으로 엄마에게 말을 건네본다. 좀더 따뜻한 눈빛으로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어 행복한 하루다.

걷기연습기적처럼 걷게 된 엄마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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