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파독 간호사인 큰어머니가 내년엔 한국인이길...

[칼럼] 국가의 역할에 관하여

등록|2013.09.09 09:33 수정|2013.09.09 09:33
그녀는 자녀 둘을 데리고 매일 서대문 구치소에 갔다. 구치소 철창 사이로 그녀는 열심히 구치소 안을 들여다본다. 가끔 남편이 변호사를 접견하러 가는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대법원의 선고를 일주일 남겨둔 날,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한 한 교도관이 그녀를 아무도 몰래 구치소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 규정에 없는 일이기에 그녀는 남편을 발견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남편을 아는 척하고 말이라도 걸었다간 그 교도관에게 은혜를 앙갚음으로 갚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를 발견하고 어린 딸을 보며 조용히 두 마디를 남긴다. "많이 컸네. 많이 컸네." 그리고 일주일 뒤 남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럴 줄 알았으면 그때 손이라도 잡아볼걸, 아무 말이라도 걸어볼걸. 1분. 마지막 허무한 만남 1분. 

이 이야기는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 이수병과 그의 아내의 짧은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인혁당 재심을 맡아 무죄를 이끌어낸 김형태 변호사의 글을 토대로 박건웅 작가가 '1분'이라는 만화로 그렸는데 그 만화를 보면 이야기의 더 절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수병의 아내가 이수병을 본 마지막 그 1분을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이라고 표현한다. 인혁당 사건은 국가가 저지른 살인사건이다. 독재 권력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무모한 시민을 죽이고 30여 년이 지나서야 국가는 당시의 피해자들이 무죄였다고 말한다. 막스 베버는 국가를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공동체 집단으로 정의한다. 국가의 본질을 '폭력의 독점'으로 이해하면 국가 앞에 개인은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개인의 인권을 맘대로 훼손하고 책임지지 않는 국가란 정말 위험한 존재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했지만 보상받지 못하는 문제도 가슴 아픈 문제다.  

국가의 책임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 달 전에 큰어머니와 만났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개발독재 시절, 큰어머니는 간호사로 서독에 가서 같은 시기 광부로 독일에 간 큰아버지를 만나 지금까지 독일 시민으로 살고 있다. 큰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으로 참전하고 나서 광부로 독일에 간 살아있는 한국 역사의 산 증인이다.

필자가 큰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이었다. 베트남 파병 후유증과 관련해 국가유공자 신청을 위해 독일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귀화한 것이 그 시점이었다. 큰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이 생생하다. 만나자마자 70이 다 되신 어른이 먼저 포옹해주며 등을 두드려주던 모습은 나에겐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필자의 유럽에 대한 동경과 큰아버지의 개방적인 태도 덕분에 세대차이가 느껴지지 않은 즐거운 첫 만남이었다. 

선진국의 시민의식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큰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독일어도 서툰 외국인 노동자조차 멋진 신사로 만들어준 선진국의 멋진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화 중간 중간에는 부모와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슬픔과 국가와 가족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다 몸이 쇠약해진 서러움이 느껴졌다.

독일에는 한국노동자뿐 아니라 터키 노동자들도 많았는데 터키인들이 숫자도 더 많고, 왜소한 한국인들에 비해 몸집도 커서 한국인들은 더 열심히 일해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독일어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 탄광으로 밀어 넣는 바람에 동료들끼리 독일어 사전을 찢어서 나눠 갖고 다니며 연장 이름만 간신히 외우는 시절도 보냈다고 한다. 이방인의 설움, 언어 장벽과 싸우며 간신히 먹고 살만하니 모국에서는 어느덧 이들을 외면하며 잊고 있었다. 목숨 걸고 탄광에서 일한 대가지만 광부들이 받지 못했던 돈을 독일은 한국 정부에 80년대에 보냈는데 정부는 2007년에 와서야 그 돈을 파독광부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논의한다. 지난한 세월이었다.

힘들게 한국에 들어와 연금을 조금 받으며 살지만, 큰아버지는 고향 땅이 반갑다. 인터넷을 통해 독일에 있는 가족들과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내다 얼마 전 큰어머니가 귀국했다. 한 달 전 큰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도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큰아버지에게 듣지 못한 또 다른 독일의 이야기, 이방인의 설움, 동료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분들이 바로 한강의 기적과 라인 강의 기적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어머니는 아직 정년퇴임을 하진 않았다. 가을에 독일로 돌아가 반년 동안 일을 하고 정년퇴임하면 다시 돌아와 남편과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게 큰어머니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가 아주 당혹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너무 어이없었다. 내년에 은퇴 후 한국에 돌아오면 한국인으로 귀화해서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독일 국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황당한 고민이란 말인가? 

젊은 시절 국가가 어려워 국가의 요청으로 그리고 돈 벌기 위해 낯선 땅으로 간 노동자가 고향에 들어온다면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맘 편히 들어올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큰어머니는 독일 사람으로 살면서 독일 연금을 받으며 사는 것과 한국으로 귀화해 독일 연금을 적게 받으며 국가 유공자의 배우자로 살아가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며 뭔가 한국사회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 국가대표뿐 아니라 이들도 대한민국을 대표해 독일의 생활현장에서 뛰었던 소중한 국가대표들 아닌가?

대통령이나 장관들은 필요할 때 서독광부와 간호사들 덕분에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말은 했지만, 실상은 찬밥신세일 뿐이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대가는 너무도 초라했다. 한국인이 한국으로 귀화하고 싶은데 생계 때문에 고민한다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누굴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그들은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동안 한국에서도 이방인이 된 것이다. 고향 땅에 오는 것을 돈 몇 푼으로 계산해야 하는 비참함과 그들을 잊어버린 한국사회. 보편적 복지국가는 고사하고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조차 챙기지 않는 나쁜 사회. 

국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인혁당 사건에서 본 것처럼 권력자의 의사에 따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합리화되는 '물리적 폭력의 독점체'일까? 아니면 경제성장만을 위해 노동자들을 이용하고는 외면하고, 가진 자들 편에 서버리는 '자본가들의 집행위원회'에 불과한 것일까? 전쟁과 같은 국가 위기 시 앞장서 싸우겠다는 한국 청소년의 비율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인혁당 사건이나 파독 광부, 간호사뿐 아니라 국가가 무분별하게 폭력을 사용하거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국가주의 같은 선동으로 개인에게 희생과 충성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월한 지위에 있는 국가가 개인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야 한다. 국가 유공자로 지정해주든 따로 법을 새로 만들든 이대로는 안 된다. 내년 초에 큰어머니는 어떠한 결정을 내리고 나서 한국에 들어올 것이다. 고향에 오고 싶은 그녀는 내년에 한국인일 수 있을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