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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도의 별, 가슴엔 또 하나의 별이 떴다

[전라도 여행4]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

등록|2013.09.09 16:02 수정|2013.09.09 16:02

▲ 장산도 낚시터 ⓒ 이명화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의 시 '저녁에'

고향에서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고향을 멀리 떠나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가슴 속엔 고향이라는 별 하나가 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에 쫓겨 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별, 고향이라는 별이다.

전라도 장산섬이 고향인 우리 신랑(남편이나 옆지기란 말보다 신랑이란 말을 즐겨 쓴다). 고향에 대해선 가끔 이야기로만 들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라'고 정지용 시인은 노래하였지만 어떻게 변했을까, 어떤 섬일까 설레는 맘으로 당도하였다.

아주버님과 아가씨, 신랑, 내가 섬에 도착하자마자 큰집 식구들과 이웃사람들이 반겨 주었다. 어릴 때 보다가 머리가 하얗게 샌 신랑을 본 마을 사람들은 함께 늙어간다며 웃었고 그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착하고 반듯하고 공부 잘하고 성실했다면서 극구 칭찬하였고 내 마음도 괜히 좋았다.

▲ 장산도 낚시터에서... 별이 빛나는 밤 ⓒ 이명화


큰 집 작은 형(신랑이 부르는 대로)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장산도를 구경시켜 준다며 장산투어를 나섰고 섬 한 바퀴를 돌면서 보았던 낚시터라는 곳은 마치 영화 촬영장인가 싶었다. 맑은 옥빛 바다 먼 데까지 나무로 만든 높고 긴 다리가 놓여 있었고 다리 끝에는 넓고 둥글게 만들어 놓아 두런두런 모여 앉아 놀기도 좋았다. 낚시 하는 사람들이 여기서 주로 물고기를 낚는 모양이었다.

낮에 갔던 낚시터에 저녁에도 다시 갔다. 벌초도 끝냈고 그 황홀하도록 맛난 무화과도 맛보았다. 저녁은 야외 낚시터에서 먹기로 하였다. 집 밖을 나서자 캄캄한 어둠이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마을은 깊은 어둠 속에 잠기고 밤하늘엔 수많은 별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장산섬의 밤은 깊고 검었다. 하지만 별빛은 밝고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보았던 수많은 별들보다 더 많은 별들이 하늘 가득 차 있었다. 어쩌자고 밤하늘의 별들이 저렇게도 많고 많은 것일까. 어쩌자고 저렇게 밝은 것일까. 어쩌자고 저토록 빛나는 걸까. 어쩌자고 저렇게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걸까.

낮에는 에머랄드빛 바다와 높고 푸른 하늘을 펼쳐 보이더니 어둠 깔린 밤에는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별, 별, 별들이 어두운 밤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별바다를 나만, 아니 우리만 본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보고 또 보고 자꾸만 밤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고운님 곁에 있어도 별을 가득 담아 편지 한 장이라도 쓰고 싶은 밤.

옛적부터 시인과 소설가 가수들이 별을 노래하고 또 노래한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겠다. 사진으로도 동영상으로도 담기지 않는 별을 나는 가슴 속에 가득 쓸어 담았다.

▲ 40여년 만에 만난 친구와 두 손을 맞잡고... ⓒ 이명화


불빛 없는 낚시터에서 랜턴을 켜놓고 둥글게 모여앉아 고기를 구워서 저녁을 먹는 시간. 오랜 만에 고향 온 것이 반가워서 아주버님의 어릴 적 동무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고 동그라미는 더 커졌다. 그들의 이야기꽃은 어둠 속에서 무르익어갔다. 초등학교 때 이후 사십여 년 만에 만났다는 친구와 아주버님은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옆에 앉아 두 손을 굳게 잡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난 세월을 띄엄띄엄 몇 마디 말과 미소로 서로 나누었다.

우리 옆에선 다른 팀들이 텐트를 치고 바다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마을은 어둠에 깊이 묻혀 있고 바다 저만치 섬섬마다 사람 사는 불빛이 어둠 속에서 아련했다. 우리는 밤하늘의 별바다를 기적인양 바라보며 밤이 늦도록 낚시터에 앉아 있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고향에 와서 만난 선후배와 친척과 친구들이 더 모여들었고 이야기는 무르익어 갔다.

나는 살며시 빠져나와 난간에 기대서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참 후에 신랑은 내 옆에 와 섰다. 내일이면 떠나는 장산섬의 밤하늘과 밤바다를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별이 빛나는 밤. 섬을 떠나가면... 또 하나의 그리운 별이 가슴에 떠오르겠다.

"가슴 속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윤동주 시, '별 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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