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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극장에서 시체 해부... 허준이 봤다면?

[세계문명기행 V : 로마문명이야기⑥] 콜로세움 이야기(1)

등록|2013.09.10 15:59 수정|2013.09.11 22:20
지난 한 해 스웨덴 룬드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연구소 근처 대학 중앙도서관을 자주 방문했다. 이 도서관은 19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건물이다. 나는 이 도서관에 갈 때마다 3층 서가에 꽂혀 있는 로마 문명 관련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봄가드너의 <로마 원형경기장 이야기>(The Story of the Roman Amphitheater)라는 책을 발견했다. 뒤에 알고 보니 이 책은 로마 원형경기장에 관한 최고의 전문서적이었다.

봄가드너는 지중해 연안에 산재한 로마제국의 원형경기장을 발로 찾아다니며 개개 극장의 건축시기를 밝히고 그것을 토대로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소상히 밝혔다. 거기에다 주요 원형극장의 구조와 건축방법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바로 로마 원형경기장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로마 원형경기장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원형경기장 혹은 원형극장의 영어 명칭은 'amphitheater'인데, 이는 '양쪽에서(on both sides)'라는 뜻인 'amphi'와 '극장'이라는 뜻의 'theater'의 합성어다. 즉, 어떤 공연이나 경기를 관중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시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극장의 시조는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그리스의 원형극장은 원형(타원 포함)이 아니라 반원형이었다. 이것은 통상 도시에 있는 언덕 한켠의 경사지를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공연을 하는 시설(무대)과 그것을 조망할 수 있는 원형의 다층 계단식 관람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형극장 모양의 해부학 강의실  

주제에서 좀 빗나가지만 이 원형극장의 의미를 부연하고 싶다. 나는 이 원형극장이 그리스자연철학에서 비롯된 서구의 과학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형극장은 모든 사람이 특정 대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이라는 말을 그대로 실현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게 되면 사물에 대한 판단이 정확해질 수밖에 없다. 소수의 독단은 용납이 안 되기 때문이다. 원형극장은 정확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과 연결되며, 과학에서 비롯된 건축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을 보자. 이 사진은 내가 얼마 전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 갔을 때 그곳 박물관(구스타비아눔)에서 찍은 사진이다.

▲ 웁살라 대학 박물관에 있는 해부학 강의실.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도바 대학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원형극장식 해부학 강의실(anatomical amphitheater)이다. 중앙의 탁자 위에서 시체 해부가 이루어지고 학생들은 그것을 둘러싼 계단식 관람석에서 해부장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 박찬운


17세기 이 대학의 해부학 강의실의 모습이다. 가운데 탁자 위에서 시체 해부가 이루어지면 학생들은 원형극장 모양의 자리에서 그것을 동시에 보게 된다. 이 시설에서 교수는 여러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해부 실연을 보여 주면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시설이 서구에서는 언제부터 만들어져 사용되었을까. 서양에서 이런 해부학 강의실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594년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이다. 우리가 왜군의 침략으로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을 때 저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이런 과학적 시설을 만들어 해부학이 강의되었던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산 조선의 의성 허준 선생이 이것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분명한 사실은 서양이 르네상스 이후 한 세기 만에 과학주의가 궁극적인 지점까지 도달했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금기의 대상이었던 사람의 신체까지 과학의 대상이 되었다. 바로 그것이 그 후 서양이 세계를 지배한 중요한 원인이기도 했다. 이 사진 한 장에서 우리는 서양과 동양의 과학이 이 시기에 얼마나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작고 자연친화적인 그리스 극장 - 크고 인위적인 로마 극장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자. 지금도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근처에 가면 두 개의 원형극장을 볼 수 있는데 하나가 디오니소스 극장이고, 다른 하나가 헤로데스 극장이다.

▲ 디오니소스 극장은 헤로데스 극장에서 수백 미터를 걸어가면 있는데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졌다. 이 극장은 1만7000명을 수용하는 대형 야외 극장이었다. 지금은 그 규모가 매우 작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화려했던 과거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그리스의 비극들이 공연되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최고의 작품으로 보는 이들의 눈에서 제법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 박찬운


▲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근처의 헤로데스 극장. 이것은 기원후 2세기 로마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 보존 상태가 훌륭하다. 지금도 여름철이면 공연이 가능하다. 아크로폴리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극장의 객석이 한 눈에 들어 온다. ⓒ 박찬운


이 두 개의 극장은 모두 아크로폴리스의 언덕 경사면을 이용하여 객석을 만들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리스의 전통적인 원형극장인 반면, 헤로데스 극장은 기원후 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로마제국 시대의 것이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헤로데스 극장은 로마제국의 위용이 넘친다. 그리스 극장이 작고 자연친화적이라면 로마극장은 크고 인위적이다.

헤로데스 극장에서 보듯 로마제국 시절에도 그리스식의 원형극장(Roman-Greco amphitheater)이 제국 곳곳에 만들어졌다. 즉, 도시의 언덕을 이용하여 반원형 극장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의 용도는 구조상 연극과 같은 공연이나 대중집회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 터키 파묵칼레 극장. 이곳은 로마시대 유명한 온천 도시였다. 여기에 1만 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갈 수 있는 원형 극장이 있다. 보존상태가 좋아 지금도 각종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 박찬운


▲ 터키 에페소소 극장. 신약 성경에서 바울이 전도여행을 했던 소아시아 최대 도시 중의 하나인 에페소스에 있는 이 극장은 2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극장이었다. 사도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는 도중 에페소스에 들렀는데 그의 설교로 인해 생업에 위협을 받던 사람들이 극장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바람에 죽음에 직면했다.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19장 23절 이하에 나온다. <위키피디아> 공개 사진. ⓒ Norman Herr normherr


내가 가본 터키 파묵칼레 극장이나 에페소스 극장도 모두 로마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그리스식 극장이었다.

로마에 로마 특유의 원형극장이 나타난 것은 기원전 공화정 시절인데,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의 제정 시절에는 이것들이 로마제국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이 원형극장은 그리스식과는 달리 도심 한가운데 평지에 만들어졌는데, 모양은 중앙무대를 원형의 계단식 객석이 둘러싼 모양이었다. 크게는 5만여 명의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극장부터 작게는 1만~2만 명의 관객이 들어가는 소형극장이 제국 곳곳에 도시의 크기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로마인들은 연극 공연을 보는 대신 검투사들이 벌이는 살인 경기와 사람과 맹수가 싸우는 투기 경기를 열광적으로 관람했다. 그러니 이때부터는 단순히 원형극장이라기보다는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원형경기장이 바로 로마가 만들어낸 로마식 원형극장(Roman amphitheater)이다. 우리가 보게 될 콜로세움이 그 대표적 예이다.

잠실 스타디움을 보면 로마 원형경기장이 보인다

▲ 이탈리아 베로나 극장. 이 원형극장은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매우 큰 규모의 극장으로 기원후 3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용도는 콜로세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팍스 로마나 시기 이런 원형극장이 로마제국 곳곳에 세워졌다. 보존상태가 좋아 현재도 여름철에는 베로나 가극 축제가 이곳에서 개최된다. ⓒ 박찬운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로마제국의 멸망과 기독교 시대의 도래와 함께 대부분 폐허화되었다. 제국 곳곳에 위용을 자랑하던 원형경기장 중 극히 일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았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베로나 원형경기장에선 여름마다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비록 이곳저곳 허물어져 로마시대의 늠름함은 사라졌지만 그 본래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들 원형경기장은 지난 2천 년간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한때는 도시의 요새로 사용되기도 하고, 교회 시설로도 사용되었다. 혹은 채석장 역할도 했다. 도시의 건축 수요에 따라 돌이 필요할 때 이 거대한 원형경기장은 최고의 채석광산이 되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공공 건축물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경기장인 서울 잠실올림픽 주 경기장을 보라. 이 스타디움은 바로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현대식으로 변용한 것이다.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만든 콜로세움이 시대를 바꿔가면서 살아남아 우리 앞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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