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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의 단면, 기간제 교사의 돌직구

[서평]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정근>

등록|2013.09.10 11:48 수정|2013.09.10 11:48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으로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다. 그런 그가 쓴 소설이 지난 7월에 출간됐다. 제목은 <비정근>. 이 책은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단편을 묶은 책이다.

주인공 '나'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20대 청년이다. 다른 교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급을 비우게 되면, 그 자리를 몇 개월의 짧은 기간동안 채우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크게 걱정하거나 안절부절 하지는 않는다.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작가를 꿈꾸고 있기에, 안정된 고용상태보다 집필을 위한 시간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꿈 때문일까, 그가 일을 맡아서 방문하게 된 학교마다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전임 선생이 학교에서 추락해 사망하거나, 학급 내에서 지갑 도난사건이 벌어지고, 심지어는 학생 중 한 명이 독극물을 마시고 쓰러지기도 한다. 사건은 보기와는 달리 단순하지 않고, 무언가 이면에 다른 진실을 숨기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의 주특기인 '추리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은 미궁에 빠질 위기에 처한 일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그가 밝혀내는 사건의 진상, 혹은 범인의 모습은 전혀 뜻밖이다. 또한 그로 인해 그려지는 학교와 사회의 풍경은 소설의 매력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

기간제 교사를 통해 던지는 돌직구, 학교와 사회를 풍자

▲ <비정근>의 표지. ⓒ 살림

<비정근>은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여러편의 단편소설을 엮어낸 책이다. 주인공이 정규직 교사가 출산휴가·병가 등의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게 된 학교에서 몇 개월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겪는 일이 주요 내용이다.

그 과정의 묘사는 무덤덤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제도에 대한 비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일하는 동안에는 다음 일자리를 위한 평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단기간이기에 교직이나 학생들에 대한 진지한 고찰 따위를 할 필요없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 마치 언제 해고될지 모를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대한 최대한의 직업정신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듯 하다.

주인공의 성격은 언뜻 책의 제목처럼 비정하게 보이지만, 정작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매번의 사건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태도는 오히려 더욱 인간다운 면이 짙기 때문이다. 자신이 맡은 학급 내의 여학생이 자살을 시도하자, 주인공은 날카로운 분석능력으로 그 이유가 학생들의 비난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그의 말은 냉정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저기, 얘들아. 인간이란 약한 존재야. 그리고 교사도 인간이고. 나도 약해. 너희들도 약해.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어." (본문 117쪽)

여교사 살해사건과 수학여행 중지를 촉구한 자살 협박사건·전 담임교사의 자살사건과 초등학생의 독극물 중독사건. 각각의 사건으로 <비정근>은 왕따문제와 학생들을 줄 세우는 일에 급급한 교육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혼과 이기적이 되어가는 개인으로 파탄난 가정의 모습도 조명한다.

소설 속의 각박해진 현실과 기능을 상실한 교육은 단지 일본 만의 문제라고 말하기 힘들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만큼, 한국의 모습과도 소름끼칠 만큼 닮아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비정근>이 시종일관 통쾌함을 잃지 않는 이유는, 그 주인공이 학생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면서 학교와 사회의 강요를 고스란히 재현하지 않는 어른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현실의 학교에서도 이런 선생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건 너무 큰 욕심일까. 기왕이면 비정규직이라는 불편한 딱지를 떼어내고, 딱딱하고 불편한 압력으로 "이런게 현실"이라며 학생과 젊은 교사에게 강요하지 않는 현실에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씀 |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3.07. |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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