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민비' 정부 금지용어, 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다
'중공' 표현, 외교문제 비화할 수도... 역사단체들 "부분 수정 아닌 검정 취소 마땅"
▲ '중공군'이라고 적어 놓은 교학사 교과서 311쪽. ⓒ 윤근혁
정부가 교과서와 정부 문서 등에 공식 사용을 사실상 금지한 용어들이 검정에 최종 합격한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교학사 교과서를 살펴본 결과, 이 교과서에 '중공', '민비', '대구 폭동'이란 용어가 그대로 기술되어 있었다. 이 같은 용어는 교육부 지침인 <교과서 편수자료>, 정부 발표,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심의위원회의 수정권고 내용을 종합한 결과, '학생 교육용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공? 중국학자가 '우리를 공비 취급하냐'고 화냈다"
교학사는 '6·25 전쟁' 내용(311쪽)에서 "북한이 패배 위기에 처하자 펑더화이를 중공군 사령관으로 하고…"라고 적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당시에 쓰던 '북괴'라는 용어 대신 '북한'이라고 썼지만 중국은 당시에 쓰던 '중공'이란 용어를 그대로 쓴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중국과 정식 수교하기 4년 전인 지난 1988년 7월 기존에 사용하던 '중공'이란 명칭 대신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을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해 이후 '중공'이란 교과서 표현은 거의 사라졌다.
실제로 교과서를 쓸 때 따라야 할 지침인 <교과서 편수자료>에도 '중국 공산당'이란 용어는 쓰도록 했지만, '중공'이란 표현은 적어놓지 않았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교과서에 '중공'이라고 실린 사실을 중국학자가 듣고 '중국을 공비 취급했다'며 대단히 화를 냈다"면서 "이 문제는 중국 정부의 항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공군을 역사적으로 정확히 표현하면 중국인민지원군이 맞다"고 덧붙였다.
교학사는 또 검정심의위의 수정권고 내용에서 지적된 '민비'라는 용어를 합격 교과서에도 여전히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과서 편수자료>는 공식 용어로 '명성황후'라고 쓰도록 하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 가담범인 고바야카와 히데오의 글을 실어 논란이 된 '사료탐구-을미사변'(190쪽) 내용에 인용된 회고록의 원본 제목은 <민후조락사건>. 하지만 이 교과서는 회고록의 제목을 "<민비 조락 사건>"이라고 소개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도종환 의원(민주당)이 발견한 내용이다.
도 의원은 "교학사는 시해에 앞장 선 낭인의 글을 싣는 것도 모자라 이 낭인조차도 '민후'(민 황후)라고 표현한 제목을 '민비'라고 고쳐 놨다"고 비판했다.
▲ 교학사 교과서 표지. ⓒ 윤근혁
교학사는 검정심의위가 수정을 권고한 '대구 폭동'이란 표현도 여전히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검정심의위는 교과서 305쪽에 사용한 '대구 폭동'이란 용어를 '대구 10·1 사건'이라고 고칠 것을 권고했고, 교학사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같은 교과서의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대구 폭동'이란 용어를 고집한 것으로 확인됐다. 312쪽 '더 알아보기'에서 "이들은 대구 폭동을 일으키고…"라고 서술해 놓은 것이다. 똑같은 용어인데도 수정권고를 받은 페이지만 고친 것이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다른 곳에 '대구 폭동'이란 말이 나와 있는 것을 몰랐거나, 고치기 싫은 것을 억지로 고치다 보니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10일과 11일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인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와 이명희 교수(공주대)에게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바쁘다"는 이야기만을 들어야했다.
역사단체들 "사실 오류 등 298건 발견했다"
▲ 지난 10일 오후 역사 4단체 소속 학자들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오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윤근혁
한편, 민주당 친일독재미화·왜곡 대책위원회와 한국역사연구회·역사문제연구소·민족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는 각각 지난 10일 오후 3시와 5시에 설명회를 열고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역사연구회 등 4개 역사단체는 "사실과 다른 실수, 잘못된 서술, 편향된 내용 등을 3일간 분석해보니 500∼600개의 문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이 가운데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에도 있을 수 있는 자잘한 오류들을 뺀 298개 항의 분석 내용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사람 이름을 잘못 적는 등 사실 관계 오류는 124건이었다.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이라면서 "이런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사실도 이해할 수 없으며, 교육부는 부분 수정이 아니라 검정 취소를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비슷한 기사를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