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골목길 속 인문학이 필요한가
벽화와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냄새 나는 인문학을 위하여
▲ 수원 행궁동 대왕물고기아침저녁 자전거 출퇴근길에 만나는 수원 행궁동 대왕물고기 벽화. 그 크고 깊고 깊은 눈동자로 마치 자신의 몸처럼 긴 골목길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듯하다. 골목길에는 사람과 사람들이 만나서 나누는 소통과 인문학의 근본이 담겨 있어야 한다. 골목길에 자동차 매연보다 사람들의 향기가 넘쳐흘러야 한다. 그래야 이 삭막한 도시가 좀 더 살맛나는 공간이 되지 않겠는가. ⓒ 최형국
떠나버렸다. 모두 떠나버렸다. 이제 골목길에는 더 이상 사람이 없다. 어릴 적 추억 가득한 어린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느린 걸음도 모두 사라져 버린 곳이 오늘날의 골목길이다.
그곳에는 이제 낡디 낡은 회색의 시멘트벽과 검은 옷을 뒤집어 쓴 유령 같은 아스팔트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절대적 편안함을 주는 거대한 철로 만든 자동차가 덩그러니 그곳을 메우고 있다.
▲ 잠자리 가을을 만나다가을을 맞이한 벽화에도 주렁주렁 열매가 맺혔다. 봄에도 여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벽화는 늘 가을일 것이다. 가을을 추억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골목길이 거듭난다. ⓒ 최형국
어릴 적 골목길에는 사람의 냄새가 가득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는 어머니들의 분주함 뒤로 아이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그곳을 달려 나갔다. 그래서 '누구야, 밥 먹어라'라는 옆집 아주머니의 목소리 신호에 따라 저마다 아이들은 가재가 제 구멍 찾아 가듯이 작은 대문 속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다시금 달려 나왔다. 저녁 즈음이면 골목길에 엷게 비치는 가로등 아래서 술래잡기와 말타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사람이 살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냄새가 났다.
▲ 하늘을 꿈꾸는 아이들어릴적 골목길의 주인은 개구쟁이 아이들이었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꿈을 꿨던 아이들이 이제는 학부모가 되었을 것이다. 좁은 의자와 책상에 갇혀 신음하듯 공부하는 학원이 아니라, 다시금 그들에게 소중한 골목길을 돌려줘야 한다. ⓒ 최형국
그 사람냄새가 사라진 골목길에는 이제 주인 잃은 길고양이가 외롭게 제집인양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 사람냄새는 사라지고 짙은 외로움의 향기가 가득하고, 왁자지껄한 소통의 소리는 사라지고 단절의 외마디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그곳에는 더 이상 사람이 없다. 만남과 소통이 없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술래잡기, 말뚝박기... 골목길은 그런 공간이었다. 아주 낯익은 공간이 어느덧 낯선 외계의 공간이 되기 전에 그곳에 사람의 냄새를 기억하게 해야 한다. ⓒ 최형국
골목길과 인문학 어찌 보면 별 상관관계가 없는 다른 주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골목길은 인문학이 말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공간이다. 인문학(人文學), 말 그대로 사람이 만든 무늬 즉 사람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곧 사람의 가치와 짐승과 다른 사람다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파고드는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문학은 너무나 박제화되어 있다. 오직 식자들의 전유물처럼 고매한 정신세계 속에서 인문학은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인문학의 열풍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강좌들이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저편에 깔릴 수 있는 길 위의 인문학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골목길 속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 어디까지 벽화?담장 위 화분들과 짝을 지워 그려진 벽화에도 꽃 향기가 가득하다. 상상해보시라. 그것이 인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최형국
고담준론으로 무장하고 위대한 사상가나 문학가의 삶을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골목길 속 우리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풀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내릴 수 있는 인문학인 것이다. 마치 어린 손주들에게 화롯불 옆에서 군밤을 구워주시며 들려 주셨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 담긴 인문학의 근원정신을 살려야 할 때다. 바로 인문학의 핵심인 스스로 사유하기를 보다 친밀한 공간에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 신화그리스 로마신화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다. 신과 사람이 풀어가는 지극히 인간적인 그들의 신화에 우리의 아이들은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단군을 비롯한 신화는 그저 믿지 못할 옛이야기로 외면 받는 현실이다. 옛 그림과 함께 풀어간다면 우리의 신화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최형국
칙칙한 골목길 시멘트벽에 아기자기 한 벽화를 그리고 무너진 담장에 작은 넝쿨식물을 심어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말해야 한다. 그곳에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되살아난다면 어렵디 어려운 인문학은 그 안에서 좀 더 편안한 모습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쉼터, 그리고 사유골목길 작은 쉼터. 천사처럼 맑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지나간 옛 추억을 천천히 기억해 보는 것도 힐링을 위한 작은 출발일 것이다. 치유의 인문학을 그리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골목길 위에서도 찾을 수 있다. ⓒ 최형국
하필 칙칙한 골목길에 벽화를 그리고 사람냄새를 기억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게다. 그렇게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다시 소통하고, 자신들의 기억을 또 다른 누군가와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변두리 작은 골목길에 그려진 수많은 벽화들은 그렇게 사람다움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작이 될 것이다.
▲ 자연과 인간벽화길 옆 담장을 따라 송이 작은 머루가 익어간다. 그 옆에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의 그림... 모두 다 넝쿨처럼 길고 긴 것이 인생이라 그 안에 참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한적한 벽화가 있는 골목길을 걸으며 그 이야기를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소통이고 교감이다. 오직 사람만이 가능한 사람다움을 찾는 또 하나의 방법. ⓒ 최형국
현재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축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수원에서 한달간 진행되고 있는 생태교통축제다. 말 그대로 축제 공화국을 방불케 하는 요즘 그 의미는 여타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와 사뭇 다르다. 수원 행궁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태교통축제는 다시 골목길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냄새를 만들어 내는 시험의 공간이다. 골목길은 자동차가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오직 '사람만이 희망이다'.
▲ 골목길의 주인은 아이들좁은 골목길에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아이들. 그렇게 벽화와 함께 또 다른 추억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삶을 펼치는 소중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골목길은 자동차가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다. ⓒ 최형국
▲ 진격의 자전거수원 생태교통축제의 상징물인 거대한 자전거를 탄 조형물 속 인간에는 꽃이 가득하다. 이 삭막한 도시에서 꽃 향기는 못 만들 망정, 사람냄새는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도시는 진격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 최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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