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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모가지를 싹둑싹둑... '엽기' 벌레가 나타났다

텃밭의 무서운 존재, 흰벌레

등록|2013.09.12 17:27 수정|2013.09.12 17:27
김장 배추와 가을 상추 등을 심은 후 요즘 매일 아침 해뜨기 직전에 텃밭에 나가 채소와 인사를 나누며 일과를 시작합니다. 벽촌에 살면서부터 언제부터인가 식물들과 나는 대화를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작물을 돌보다 보면 훨씬 지루하지 않게 더 정성껏 작물을 돌보게 됩니다.

"배추야, 잘 잤니?"
"어젯밤에 별 일 없었어?"
"와, 밤 사이에 이렇게 컸구나! 고마워."
"저런 벌레가 너를 아주 힘들게 하고 있구나."

어떤 배추는 아주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는 반면, 어떤 배추는 벌레들에게 여기저기 뜯어 먹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약을 일절 뿌리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벌레를 잡아 주고 물을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 해뜨기 직전, 그리고 오후에 해진 직후에 보이는 대로 벌레를 잡아 주곤 합니다.

건강한 배추는 벌레가 없는데, 약한 배추에는 벌레가 끓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건강하지 못하면 면역이 떨어져서 병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재미로 상추 자르는 범인을 찾았다"

▲ 목이 싹둑 잘려 버린 상추 ⓒ 최오균


▲ 목이 잘려진 채 그대로 꽂혀 있는 상추 ⓒ 최오균


그런데 생채 상추에는 매우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텃밭에 50여 포기를 심은 상추가 아침마다 텃밭에 가보면 몇 포기씩 시들시들해서 들어보니 뿌리와 잎의 줄기 사이에 상추 목이 가위로 자른듯 싹둑 잘라져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잎을 먹은 것도 아닙니다.

어떤 벌레의 소행일까? 아무리 열심히 찾아보아도 보이질 않고 매일 3~5포기씩 잘라져 있습니다. 배추 벌레는 더러는 눈에 띄어 잡아 주곤 하는데 상추를 자르는 범인은 통 구경을 할 수조차 없습니다.

▲ 세포기 상추 땅밑에서 잡아낸 벌레 ⓒ 최오균


이 글을 쓰다가 오늘 아침도 나가 보니 세 포기나 잘려져 있었습니다. 이제 생채 상추는 50포기에서 20포기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이러다간 한 포기도 건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제 농업기술센터에 전화를 해보니 거세 벌레 종류나 아니면 땅강아지의 소행일 것이라며 해가 뜨기 직전이나 해가 진 후 직접 그 벌레에게 농약을 살포해야만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만 벌레들이 나와서 야채를 자르고 다시 땅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린다고 합니다.

나는 농약을 전혀 뿌리지 않고 야채를 키우고 있으므로 농약을 뿌릴 수는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가 '땅 속에 벌레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잘린 생채 밑을 호미로 파보았습니다.

▲ 상추 목을 자른 후 땅속에 숨어 있는 범인 흰벌레 ⓒ 최오균


아, 그랬더니 사진처럼 이렇게 큰 흰벌레가 나오질 않겠습니까? 세 포기 다 땅을 파보니 같은 벌레가 튀어나왔습니다. 갈고리 같은 노란색 발이 나 있고, 머리는 연분홍색이며 몸뚱이는 약간 투명하며, 검은 입을 가진  벌레는 둥그런 원을 그린 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죽은 시늉을 하며 위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추나 겨자 상추 등 다른 채소에는 없는 것 같은데, 유독 이 생채 상추에만 발견되고 있습니다. 꼭 굼벵이 모습을 닮았지만 발이 굼벵이 보다는 길고 몸에 털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굼벵이는 아닌 것 같군요.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 곤충 도감을 뒤져보아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벌레들이 옮겨 다니며 생채를 자르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상추 잎이나 뿌리를 먹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잘린 상추를 호미로 파서 뿌리를 보니 그대로 있고, 잎도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야, 그럼 넌 재미로 상추를 자르니? 이건 아닌데. 네가 상추를 이렇게 재미로 제거를 한다면 할 수 없이 나도 너를 제거를 할 수밖에 없구나."

보통 배추 벌레를 잡으면 멀리 다른 곳에 옮겨 주고 말지만, 재미로 상추를 싹둑 잘라 버리는 이 녀석은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핀셋으로 녀석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주둥이에 날카로운 톱니 같은 두 이빨을 드러내며 마구 자르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 입에 날카로운 톱니처럼 생긴 이빨 두개로 상추 목을 자른다. ⓒ 최오균


▲ 날카로운 이빨로 풀잎을 물어 뜯는 흰 벌레 ⓒ 최오균


녀석의 입에 풀잎을 물렸더니 한순간에 잘라 버리는군요. 보통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대단히 엽기적인 녀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거나 입에 대면 마구 잘라버립니다. 그래서 이 녀석을 그대로 방생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고이 제사를 지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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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벌레닥치는 대로 물어 뜯는 엽기적인 흰벌레 ⓒ 최오균


그리고 혹시 아직 잘려 나가지 않는 상추에도 이 벌레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샘플로 10포기 정도를 호미로 파서 뿌리와 잎줄기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직 잘려 나가지 않은 상추는 벌레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이 옮겨 다니며 잘라 먹거나, 아니면 다른 데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기어 나와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군요.

우리 집 텃밭 뿐 아니라 해땅물 자연농장에도 생채 상추가 많이 잘려져 나가고 있습니다. 해땅물 자연농장에서도 그 어떤 농약도 살포하지 않으므로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할 수 없지요. 벌레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너무 많은  생채가 잘려 나가고 있어 수수방관 할 수만 없는 것 같은데…. 홍 선생님은 벌레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홍 선생님은 건강한 채소는 벌레들이 덜 접근을 하므로 건강한 종자에 건장한 모종을 키워 야채를 아주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이 벌레나 병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흰 벌레는 건강한 상추나 약한 상추나 무작위로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것 같습니다. 글쎄… 어찌해야 할까요? 농약을 뿌리지 않고 이 엽기적인 벌레를 퇴치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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