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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신화' 김응용·선동열은 왜 실패했나

[프로야구] 한화·KIA 동반 4강 탈락... 얇은 선수층이 한계

등록|2013.09.17 08:50 수정|2013.09.17 08:50
'해태 왕조'는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는다.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는 화려한 스타군단과 끈끈한 팀워크를 앞세워 1980~1990년대에만 9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한국야구의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다. 당시 사령탑은 '코끼리' 김응용 감독이었고, 선동열은 1985년부터 1995년까지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무등산 폭격기'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2013년은 해태 신화의 추억을 간직했던 팬들에게는 가장 괴로운 시간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특히 당시 해태 신화에서 빼놓을수없는 '전설'인 김응용과 선동열, 두 명장의 초라한 몰락은 스포츠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진리와 함께 세월의 무상함까지 느끼게 한다.

무너진 해태 신화, 동반 4강 탈락 확정

지난 16일 대전에서는 김응용 감독이 이끄는 한화와 선동열 감독의 KIA가 맞붙었다. 일정 변경으로 인해 경기가 '야구 휴일'인 월요일에 치러진 데다  이미 4강행이 멀어진 두 팀의 대결이라 관중석인 텅 비었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에서 KIA는 4강 탈락을 최종확정짓는 수모까지 겪었다.

KIA는 이날 한화에 6-9로 패하며 최근 3연패이자 한화전 4연패를 기록했다. 이로서 47승 2무 63패(승률 .427)을 기록한 KIA는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4강 진출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됐다. 시즌 초반 5월 중순까지만 해도 1위를 달리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던 KIA가 4개월 만에 7위까지 추락하는 굴욕을 맛본 것.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4강 진출 실패한 것은 2007~2008시즌 이후 6년 만이다. 지난해부터 KIA의 지휘봉을 잡은 선동열 감독도 지도자 인생에 입문한 이래 처음 맞는 수모라 할 수 있다.

더구나 KIA는 8위 NC에게도 불과 1게임 차로 쫓기고 있어서 7위 수성도 아직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KIA가 NC보다 6경기나 더 남겨두고 있어서 유리하지만 이미 4강 탈락 확정으로 동기를 잃은 상황이라 더욱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우승후보로 꼽혔던 KIA가 올해 1군에 갓 데뷔한 신생팀에게도 추월당한다면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명문이라는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애제자의 4강 탈락을 자기 손으로 확정지으며 비수를 꽃은 스승 김응용 감독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 한화는 시즌 개막부터 내내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며 일찌감치 순위경쟁에서 이탈했다. 그나마 만만하게 여겼던 신생팀 NC보다도 무려 10게임 차나 뒤졌을만큼 독보적인 최하위다. 37승 1무 75패(승률 .330)로 패배수가 승수의 두 배가 넘는 유일한 팀이다. 한화는 6년 연속 4강 진출 실패와 함께 최근 5시즌간 네 차례나 꼴찌를 도맡는 암흑기를 이어가고 있다.

'해태 신화'의 몰락... 왜?

▲ 김응용 감독(자료사진) ⓒ 연합뉴스


'해태 신화'의 재림을 기대했던 KIA와 한화의 몰락은 곧 리빌딩의 실패를 의미한다. 두 팀은 나란히 해태 출신 코칭 스태프를 대거 전진배치했다. 친정팀 지휘봉을 잡은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는 설명이 필요없는 해태 왕조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었고, 한화는 특유의 순혈주의를 포기하며 8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한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다. 모두 해태 정신으로 대표되는 강인한 승부근성과 끈끈한 팀워크의 '승리 DNA'를 이식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김응용과 선동열, 두 명장은 나란히 올시즌 지도자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한화의 경우, 이미 김감독이 부임하기 전부터 꼴찌에 그쳤던 팀 전력이 워낙 약하기도 했지만 류현진-박찬호-양훈 등 핵심 선수들의 이탈까지 겹쳤음에도 이들의 공백을 메울 새로운 전력 보강에 실패했다. 몇 년째 한화의 고질병이 돼버린 지역 유망주 부재와 기존 선수들의 더딘 성장도 단시간에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들이었다.

여기에 김응용 감독도 오랜 현장공백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드러내며 방향을 잃었다는 평가다. 개막 초반부터 13연패의 악몽에 빠지며 당초 구상했던 마운드 운용이 완전히 붕괴됐고, 눈앞의 1승을 위한 각종 변칙이 난무하면서 마구잡이 등판과 혹사 논란이 겹쳤다. 결국 성적과 리빌딩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었다는 지적 속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시즌을 접어야 했다. 김응용 감독은 올해 한화에서 감독 통산 1500승을 돌파하는 대업을 이뤘지만 부진한 팀성적으로 인해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 선동열 감독. 사진은 지난 8월 6일 롯데전 당시. 8회 초 기아 공격 때 선동열 감독이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지 생수를 들이키고 있다. ⓒ 연합뉴스


일찌감치 약체로 분류된 한화에 비해 선동열 감독의 KIA가 몰락한 것은 올 시즌 프로야구 판도의 가장 큰 이변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해 비록 4강에 탈락하지만 탄탄한 선발진이 건재한 데다 올해는 FA 최대어 김주찬의 영입과 신종길의 성장으로 타선까지 강해지며 해볼 만하다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올해도 개막부터 이어진 주축 선수들의 부상병동으로 최상의 전력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에이스 윤석민은 WBC 출전 후유증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인 끝에 결국 마무리로 자진 전업했고, 고질적인 불펜 불안과 외국인 선수 불운은 올해도 KIA를 피해가지 않았다.

선동열 감독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김상현-송은범의 대형 트레이드와, 불펜 필승조 육성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주축 선수들의 부상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한 KIA는 얇은 선수층의 한계를 드러내며 또다시 무너졌다. 선 감독 스타일의 스몰볼이 KIA 선수들과 잘 맞지 않았다는 점도 경기력의 잦은 엇박자로 나타난 원인이었다.

전반기를 5위로 마친 KIA는 후반기 42경기에서 11승 31패로 승률 2할6푼2리로 9개팀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자연히 선동열식 야구에 대한 팬들의 여론도 악화되며, 지난 시즌 초기 이종범의 은퇴 논란에서 비롯된 선동열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 부호는 2년 연속 4강 탈락을 통해 거센 비난 여론으로 되돌아왔다.

갈길 먼 한화·KIA, 내년이 더 걱정

문제는 한화와 KIA 모두 앞으로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다. 한화는 올 시즌이 끝난후 투수 안영명·윤규진, 외야수 김회성 등이 복귀하지만, 다른 팀에 비하면 여전히 선수층이 턱없이 얇다. 김태균과 최진행 정도를 제외하면 붙박이가 없고 이대수와 한상훈도 올시즌후 FA가 된다는 게 변수다. 거의 모든 포지션에 전력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다. 올해 쓴맛을 본 FA 시장에서 얼마나 전력보강을 이뤄내느냐가 관건이다.

KIA는 올시즌 이후 주축 선수들의 전력누수가 상당히 크다. 에이스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도전이 유력하고, 톱타자 이용규도 FA로 풀리며 4번타자 나지완은 군에 입대한다. 이들의 공백은 물론이고 마무리와 포수진에도 보강이 필요하다. 이범호·김주찬 등 이미 대어급 FA를 영입했던 KIA가 다시 한 번 대대적인 투자에 나설 의지가 있을지 관건이다.

김응용 감독과 선동열 감독의 계약기간은 모두 내년까지다. 올시즌 지도자 인생에서 전에 없던 쓴 맛을 맛본 두 감독은, 다시한번 해태신화의 영광을 재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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