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장관과 교학사 대표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학도병 이우근 사진에 대하여
공개 질의서
발신 : 박도
수신 :
1. 대한민국 교육부장관 서남수
2. 교학사 대표이사 양진오
제목 :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 학도병 이우근 사진에 수록 경위 해명 요구
[양진오 교학사 대표에게]
1. 교과서에 수록한 이 사진의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2. 교학사 측에서 이 사진을 학도병 이우근이라고 단정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3. 이 사진을 게재한 자세한 경위(최소한 게재한 이의 성명과 그 이유)를 밝혀 주십시오.
4. 만일 이 사진이 사실과 전혀 엉뚱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의 그에 대한 책임과 그 후속조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서남수 교육부장관에게]
1. 본인의 판단으로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에 대한 학도병 이우근 사진 게재는 심대한 오류로 보입니다. 이는 해당 출판사보다 이를 묵인하거나 모른 채 통과시킨 교과서 검정위원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장관의 견해는?
2. 만일 이러한 의문점들이 출판사의 명명백백한 사실로 판명되면 그에 따른 후속조치와 검정위원들의 직무태만조치는 어떻게 할지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3. 만일 교과서 검정위원들의 직무태만으로 밝혀지면 이들에게 지급한 수당은 국고로 환수 조치하는 게 맞는다고 보는데 장관의 견해는?
4. 앞으로 이와 같은 재발 방지책에 대한 교육부의 복안은?
이의 질문에 대한 진솔하고 성실한 답변을 2013년 9월 23일 이전까지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이 답변을 기다릴 것입니다.
2013년 9월 17일 공개 질의자 박도
학도병 이우근 사진 건에 대해 공개 질의한 이유
나는 2013년 9월 12일(목) 오전 9시 무렵 도종환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도 의원은 나에게 이번 교과서 검정에 통과된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313쪽에 '학도병 이우근'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도 의원이 살펴본 바로는 이 사진은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발간 <한국전쟁 ‧ Ⅱ> 237쪽 사진과 같다. 그 사진을 입수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여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사진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도 의원이 한국사 교과서의 그 부분만이라도 스캔하여 보내주면 이를 확인한 뒤 답변을 드리겠다고 대답했다. 한 시간쯤 지난 뒤 다음의 메일이 도착하였다.
'도종환입니다. 전화로 말씀해 주셨던 교학사 교과서 313쪽에 수록된 '학도병 이우근'에 대한 내용을 보내드립니다. 살펴봐 주십시오. 선생님께 건강과 평안이 늘 깃드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나는 첨부파일로 보낸 학도병 이우근의 사진을 보고 '뭐, 이렇게 사실을 왜곡할 수가! 그것도 한국사 교과서에…'라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책장에 갈무리하고 있는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사진설명을 찾아 해당 부분을 살펴보았다.
이 사진은 나와 재미동포인 박유종(역사학자 백암 박은식 선생 손자) 선생이 2004년 2월 12일 NARA 5층 사진자료실에서 RG(Record Group, 문서군) 186, 192, 195, 201 상자에서 찾아 가려뽑은 뒤 스캔한 것이다. 나는 2004, 2005, 2007년 3차에 걸쳐 연 70여 일 동안 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수집한 바, 그곳에 소장된 수십만 장 가운데 역사적 자료가 될 만한 사진을 박유종 선생과 하나하나 토의 끝에 스캔했기에 그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기록되었거나 기억에 뚜렷이 담겨 있다. 그때를 되새겨 본다.
박유종 : "박 선생님, 이 사진 좀 보세요."
박도 : "네, 선생님."
나는 그 사진을 건네받자 즉각 수집할 사진으로 판단이 되어 캡션 번역을 부탁드렸다. 그러자 박유종 선생은 사진 뒤의 캡션을 영문으로 읽으며 번역을 했고, 다시 그분은 당신 번역의 정확성을 위해 영한 사진을 펼친 뒤 재차 설명했다.
박유종 :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군의 겨울철 전투복차림입니다. 얘네 캡션에는 신발·겉옷·모자는 한국제요, 코트·무기(M1 소총)·탄알은 미제라고 썼군요. 아마도 작은 몸집의 한국군이 큰 총을 메고 큼직한 미제 외투를 입은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찍은 것 같습니다."
박도 : "좋습니다."
나는 박유종 선생의 사진설명을 요약하여 메모지에 기록하고는 스캐너에 올렸다.
나는 2004년 1차 방문 때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 배후 문서를 찾고자 당시 오마이뉴스 1천여 독자들이 걷어 준 4천여만 원의 성금으로 그곳에 갔기에, 영어가 서툰 내가 이 성원에 보답하고자 이 사진들을 오마이뉴스로 송고했다. 이후 이 사진들은 2004년 2월 20일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4)'에 실렸다. 그 뒤로도 이 연재는 30회까지 계속되었다.
그때 이 연재사진들은 폭발적인 인기로 온라인상에 떠돌았는데 그 출처나 사진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검색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마구 퍼날라 심지어 미국 동포 사회에서조차도 내가 수집한 사진들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제2차, 3차 방미는 내 호주머니를 털어갔기에 그런 얘기에 속도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소기의 목적-한국전쟁의 참 모습을 더 많은 사람에 알리고 반전 의식을 드높이려는-을 이룬 듯하여 흐뭇하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나에게 학자나 언론인들이 게재 허락 요청을 해 올 경우, 거의 이를 승낙하면서 정확한 정보 게재만은 꼭 부탁하였다.
그런데 이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에 대한 학도병 이우근 사진 게재 건은 나에게 일체 연락도 없었을뿐더러 교과서를 만든 이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그 첫째로 사진 옆 교과서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이야기 한국사 학도병 이우근
이우근은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학도병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1950년 8월 10일 학도병 71명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받고, 포항여중 앞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1950년 8월 11일까지 11시간 30분 동안 48명이 전사하면서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였다. 전사자 중 한 명인 이우근이 그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는 학도병 이우근과 함께 아래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은 학도병 이우근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근거는 이우근은 한여름인 1950년 8월 11일에 전사하였는데, 이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 중인 이 사진의 뒷면 캡션에는 '5. Jan. 1951'으로 이우근 학도병이 돌아가신 지 5개월 25일이 지난 뒤이기 때문이다.
역사전문가가 아닌 똑똑한 중1학생이라도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이 사진이 이우근 학도병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사실 이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역사학자나 출판인으로서 가장 기본인 확인절차도 밟지 않고, 마구잡이로 교과서에 게재한 직무태만으로 보인다. 이것이 과연 사실이라면 이들을 과연 역사학자라고, 출판편집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도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다 이런 장난을 친다는 것은 해외토픽감이다.
더욱이 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런 교과서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교과서 검정위원들의 직무유기다. 분명 이들은 검정위원의 자질이 없는 이들로, 염불보다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눈뜬장님들로 그들의 건강(시력)과 정신상태가 매우 의심스럽다.
내가 분개하는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진솔한 해명과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2013년 9월 12일 오마이뉴스에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라는 기사에서 "나는 이 사진을 실은 교학사출판사와 편집자, 그리고 이를 감수한 분이 이 사진을 입수한 경위와 이를 '학도병 이우근'으로 단정한 까닭과 이를 교과서에 게재한 경위에 대한 솔직한 해명을 해주기 바란다"고 명확한 답변을 요청했다. 하지만 입때껏 이에 대한 해명은 일언반구도 없다. 사실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다. 진실고백과 참회는 발전의 밑거름이기도 하고 관련 상대의 마음을 살 수도 있다.
진솔한 답변을 기대함
이 기사에 대한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학도병 이우근 님의 조카 곽아무개씨가 나에게 분개한다는 메일을 보낸 적은 있으나 교학사나 저술 관계자의 답변은 전혀 없었다. 나는 일단 그 뜻이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오늘 교학사와 교육부에 등기우편을 발송할 것이며, 아울러 이 사실을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린다. 왜냐하면 이 사진 건은 출발부터 공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은 옛 말이요, 이즈음에는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말을 관계자들에게 들려준다. 상대가 인터넷신문이요, 기자가 강원도에 사는 촌놈이라고 깔보고 말라. 지금 수많은 백성들이 이 사건의 전말을 지켜다 보고 있다. 양자강과 같은 큰 강도 그 원천은 술잔을 띄울 만한 작은 물줄기였고, 동학농민운동의 효시도 한 탐관오리의 학정에서 비롯되어 결국은 나라가 망했다.
아마 교육부장관과 출판사 대표는 이만한 상식을 지닌 이로 나는 이들이 현명한 처신을 할 것으로 믿으며 그 진솔한 답변을 기다려 본다.
발신 : 박도
수신 :
1. 대한민국 교육부장관 서남수
2. 교학사 대표이사 양진오
제목 :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 학도병 이우근 사진에 수록 경위 해명 요구
[양진오 교학사 대표에게]
1. 교과서에 수록한 이 사진의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2. 교학사 측에서 이 사진을 학도병 이우근이라고 단정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3. 이 사진을 게재한 자세한 경위(최소한 게재한 이의 성명과 그 이유)를 밝혀 주십시오.
4. 만일 이 사진이 사실과 전혀 엉뚱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의 그에 대한 책임과 그 후속조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서남수 교육부장관에게]
1. 본인의 판단으로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에 대한 학도병 이우근 사진 게재는 심대한 오류로 보입니다. 이는 해당 출판사보다 이를 묵인하거나 모른 채 통과시킨 교과서 검정위원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장관의 견해는?
2. 만일 이러한 의문점들이 출판사의 명명백백한 사실로 판명되면 그에 따른 후속조치와 검정위원들의 직무태만조치는 어떻게 할지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3. 만일 교과서 검정위원들의 직무태만으로 밝혀지면 이들에게 지급한 수당은 국고로 환수 조치하는 게 맞는다고 보는데 장관의 견해는?
4. 앞으로 이와 같은 재발 방지책에 대한 교육부의 복안은?
이의 질문에 대한 진솔하고 성실한 답변을 2013년 9월 23일 이전까지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이 답변을 기다릴 것입니다.
2013년 9월 17일 공개 질의자 박도
학도병 이우근 사진 건에 대해 공개 질의한 이유
나는 2013년 9월 12일(목) 오전 9시 무렵 도종환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도 의원은 나에게 이번 교과서 검정에 통과된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313쪽에 '학도병 이우근'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도 의원이 살펴본 바로는 이 사진은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발간 <한국전쟁 ‧ Ⅱ> 237쪽 사진과 같다. 그 사진을 입수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여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사진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도 의원이 한국사 교과서의 그 부분만이라도 스캔하여 보내주면 이를 확인한 뒤 답변을 드리겠다고 대답했다. 한 시간쯤 지난 뒤 다음의 메일이 도착하였다.
'도종환입니다. 전화로 말씀해 주셨던 교학사 교과서 313쪽에 수록된 '학도병 이우근'에 대한 내용을 보내드립니다. 살펴봐 주십시오. 선생님께 건강과 평안이 늘 깃드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 '이야기 한국사' ⓒ 도종환 의원
나는 첨부파일로 보낸 학도병 이우근의 사진을 보고 '뭐, 이렇게 사실을 왜곡할 수가! 그것도 한국사 교과서에…'라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책장에 갈무리하고 있는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사진설명을 찾아 해당 부분을 살펴보았다.
이 사진은 나와 재미동포인 박유종(역사학자 백암 박은식 선생 손자) 선생이 2004년 2월 12일 NARA 5층 사진자료실에서 RG(Record Group, 문서군) 186, 192, 195, 201 상자에서 찾아 가려뽑은 뒤 스캔한 것이다. 나는 2004, 2005, 2007년 3차에 걸쳐 연 70여 일 동안 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수집한 바, 그곳에 소장된 수십만 장 가운데 역사적 자료가 될 만한 사진을 박유종 선생과 하나하나 토의 끝에 스캔했기에 그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기록되었거나 기억에 뚜렷이 담겨 있다. 그때를 되새겨 본다.
박유종 : "박 선생님, 이 사진 좀 보세요."
박도 : "네, 선생님."
나는 그 사진을 건네받자 즉각 수집할 사진으로 판단이 되어 캡션 번역을 부탁드렸다. 그러자 박유종 선생은 사진 뒤의 캡션을 영문으로 읽으며 번역을 했고, 다시 그분은 당신 번역의 정확성을 위해 영한 사진을 펼친 뒤 재차 설명했다.
박유종 :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군의 겨울철 전투복차림입니다. 얘네 캡션에는 신발·겉옷·모자는 한국제요, 코트·무기(M1 소총)·탄알은 미제라고 썼군요. 아마도 작은 몸집의 한국군이 큰 총을 메고 큼직한 미제 외투를 입은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찍은 것 같습니다."
박도 : "좋습니다."
나는 박유종 선생의 사진설명을 요약하여 메모지에 기록하고는 스캐너에 올렸다.
▲ 한국전쟁 사진 제1차 수집 캡션 원본 기록 메모지 ⓒ 박도
나는 2004년 1차 방문 때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 배후 문서를 찾고자 당시 오마이뉴스 1천여 독자들이 걷어 준 4천여만 원의 성금으로 그곳에 갔기에, 영어가 서툰 내가 이 성원에 보답하고자 이 사진들을 오마이뉴스로 송고했다. 이후 이 사진들은 2004년 2월 20일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4)'에 실렸다. 그 뒤로도 이 연재는 30회까지 계속되었다.
그때 이 연재사진들은 폭발적인 인기로 온라인상에 떠돌았는데 그 출처나 사진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검색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마구 퍼날라 심지어 미국 동포 사회에서조차도 내가 수집한 사진들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제2차, 3차 방미는 내 호주머니를 털어갔기에 그런 얘기에 속도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소기의 목적-한국전쟁의 참 모습을 더 많은 사람에 알리고 반전 의식을 드높이려는-을 이룬 듯하여 흐뭇하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나에게 학자나 언론인들이 게재 허락 요청을 해 올 경우, 거의 이를 승낙하면서 정확한 정보 게재만은 꼭 부탁하였다.
▲ NARA 5층사진자료실에서 박유종(왼쪽) 선생과 기자가 한국전쟁 사진 한 장을 보며 수집여부를 토의하고 있다(미국 메릴랜드 주, 2004. 2. ) ⓒ 박도
그런데 이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에 대한 학도병 이우근 사진 게재 건은 나에게 일체 연락도 없었을뿐더러 교과서를 만든 이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그 첫째로 사진 옆 교과서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이야기 한국사 학도병 이우근
이우근은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학도병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1950년 8월 10일 학도병 71명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받고, 포항여중 앞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1950년 8월 11일까지 11시간 30분 동안 48명이 전사하면서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였다. 전사자 중 한 명인 이우근이 그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는 학도병 이우근과 함께 아래 사진이 실렸다.
▲ 문제의 사진(이 사진의 촬영일자는 1951. 1. 5. 로 학도병 이우근 님이 전사한지 5개월 25일 뒤다. 이 교과서의 사진 설명대로라면 학도병 이우근은 1951년 1월 5일에 살아있어야 옳다. ⓒ NARA, 눈빛출판사
이 사진은 학도병 이우근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근거는 이우근은 한여름인 1950년 8월 11일에 전사하였는데, 이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 중인 이 사진의 뒷면 캡션에는 '5. Jan. 1951'으로 이우근 학도병이 돌아가신 지 5개월 25일이 지난 뒤이기 때문이다.
역사전문가가 아닌 똑똑한 중1학생이라도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이 사진이 이우근 학도병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사실 이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역사학자나 출판인으로서 가장 기본인 확인절차도 밟지 않고, 마구잡이로 교과서에 게재한 직무태만으로 보인다. 이것이 과연 사실이라면 이들을 과연 역사학자라고, 출판편집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도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다 이런 장난을 친다는 것은 해외토픽감이다.
더욱이 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런 교과서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교과서 검정위원들의 직무유기다. 분명 이들은 검정위원의 자질이 없는 이들로, 염불보다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눈뜬장님들로 그들의 건강(시력)과 정신상태가 매우 의심스럽다.
내가 분개하는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진솔한 해명과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2013년 9월 12일 오마이뉴스에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라는 기사에서 "나는 이 사진을 실은 교학사출판사와 편집자, 그리고 이를 감수한 분이 이 사진을 입수한 경위와 이를 '학도병 이우근'으로 단정한 까닭과 이를 교과서에 게재한 경위에 대한 솔직한 해명을 해주기 바란다"고 명확한 답변을 요청했다. 하지만 입때껏 이에 대한 해명은 일언반구도 없다. 사실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다. 진실고백과 참회는 발전의 밑거름이기도 하고 관련 상대의 마음을 살 수도 있다.
진솔한 답변을 기대함
이 기사에 대한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학도병 이우근 님의 조카 곽아무개씨가 나에게 분개한다는 메일을 보낸 적은 있으나 교학사나 저술 관계자의 답변은 전혀 없었다. 나는 일단 그 뜻이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오늘 교학사와 교육부에 등기우편을 발송할 것이며, 아울러 이 사실을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린다. 왜냐하면 이 사진 건은 출발부터 공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은 옛 말이요, 이즈음에는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말을 관계자들에게 들려준다. 상대가 인터넷신문이요, 기자가 강원도에 사는 촌놈이라고 깔보고 말라. 지금 수많은 백성들이 이 사건의 전말을 지켜다 보고 있다. 양자강과 같은 큰 강도 그 원천은 술잔을 띄울 만한 작은 물줄기였고, 동학농민운동의 효시도 한 탐관오리의 학정에서 비롯되어 결국은 나라가 망했다.
아마 교육부장관과 출판사 대표는 이만한 상식을 지닌 이로 나는 이들이 현명한 처신을 할 것으로 믿으며 그 진솔한 답변을 기다려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공개질의서는 교육부와 교학사에도 정확하고 확실한 전달을 위해 오늘(2013. 9. 17.)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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