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투사가 아니지 않느냐, 왜 나를 투사로 만드느냐"
[단독인터뷰③] 김한길 민주당 대표
▲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며 22일째 노숙농성중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17일 서울광장 천막 농성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전날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내 임기동안 민주주의 하나는 확실하게 바로 세우겠다는 말을 제일 듣고 싶었는데, 결국 그 한 마디를 끝내 듣지 못하고 회담을 마무리하게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남소연
"민주주의의 퇴행이 매우 심각하다. 우리, 다시 중앙정보부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나. 정말 우리의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면 기꺼이 그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을 인내해야 한다. 대통령과의 담판으로 풀려고 했으나 그 길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으니 다시 또 다른 길을... 추석연휴 때 깊이 고민해서 23일 의총 때 밝히겠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표정이 매우 굳어졌다. 김 대표는 17일 오후 서울광장 민주당 노숙텐트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던 도중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 언급하면서 매우 불쾌해했다. 무엇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과 신뢰라는 것이냐, 현실과 매우 다른 게 아니냐는 비판적 접근이었다.
그는 "전직 국정원장이 선거법으로 기소돼 재판받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공개했고 채동욱 총장 건도 정상인가"라며 "지난 7개월의 임기 내내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진 게 아니라 정상의 비정상화가 일어났다"고 꼬집었다.
"박근혜정부 7개월은 정상의 비정상화였다"
김 대표는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민주당의 최우선 과제는 서민과 중산층의 먹고사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거였고 거기에 총력을 집중하자고 해서 '을 살리기 위원회'를 만들었다"며 "경제민주화에 그치지 말고 인간적 존엄성을 훼손당하는 사람은 사회적 민주주의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가만 보니까 이미 10년전 민주당이 해 놓은 정치적 민주주의 기반이 다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후퇴한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퇴행이 매우 심각하다, 다시 중앙정보부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나, 정말 우리의 갈 길이 멀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 대표는 이번 3자회담 무산과 관련해 "대통령을 만나 담판으로 이 문제(국정원 사건 등 민주주의 관련 문제들)를 풀자고 했던 건 국력소모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고 그래서 설명하면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며 "다만 담판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지 유일한 길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대표는 "우리는 대통령을 만나 대화로 풀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3자회담 결과 그 기대는 무망하다고 판단내리게 됐다"며 "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민주주의 회복의 의지가 없다는 게 확인됐으니 우리 민주당은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대표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면 기꺼이 그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을 인내해야 한다는 상황이 분명해졌다"며 "대통령과의 담판이 이 문제를 풀려고 했던, 소위 국력, 우리 정치의 소모전, 이런 걸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길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으로 민주당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어떤 길을 택하든 지금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까는 추석 연휴 때 깊이 고민해서 23일 의총 때 많은 의원들도 궁금해할 테니 그때 밝히겠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정치권 안에서 이번 3자회동 전 물밑대화로 의제조율에 나섰고 무언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에 김한길 대표가 나선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와대와 물밑으로 의제 네고한 바 없다"
김 대표는 "나는 청와대나 그 누구한테 물밑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그 어떤 접촉도 지시한 적이 없다"며 "민주당이 청와대와 네고(negotiation)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 얘기하고 나한테 뭐라고 전해주기는 했지만 내가 자꾸 만나자, 만나달라, 이렇게 한 적이 없다"며 "이번에 대통령이 국회에 와서 만나주는 게 무슨 하나의 큰 선물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런 만남은 무용하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 대표는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만나준 것 자체를 굉장히 큰 추석 선물로 생각했던 모양인데 내가 박근혜 대통령 알현을 앙망하기 때문에 여기 이 텐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또한 "나는 국민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사안의 엄중함을 열심히 알려야 한다고 해서 텐트로 나온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민주당이 얻고자 했던 것은 민주주의 회복이었는데 그게 안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김 대표는 전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내가 투사가 아니지 않느냐, 왜 나를 투사로 만드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국회 원내외 병행투쟁 전략과 관련해서는 "국회는 의원에게만 허용된 투쟁의 장"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국회를 버리고 장외로 나가 6개월간 사학법 개정투쟁을 했던 걸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까지도 원내외 병행투쟁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일갈했다.
당내 리더십과 관련해 김 대표는 소설가 이청준의 소설을 인용해 설명했다.
"사회는 100만명이란 사람이 타고 있는 배다. 각자 다 노를 갖고 있고 원하는 방향으로 노를 젓는다. 힘의 합성. 각자 다 원하는 방향으로 노를 젓지만 결국 노 젓는 방향이 한쪽으로 모이면 반대 방향으로 젓고 있는 노도 한 방향으로 다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당 안에 많은 목소리가 있다. 혹은 대표가 하는 말과 정반대로 하는 말까지 있다. 127명의 의원들이 있는데, 합성에 의한 최종적 방향이 정해질 거다."
김 대표는 당내 여러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잘 정리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했다.
다만, 김 대표는 "대표가 하는 말이 아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의 목소리도 긍정적으로 기여해주길 바란다"며 "최고위 회의 모두발언도 원래는 지도부가 공유한 생각을 각자 분담해 말하는데 마치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자유발언대처럼 된다면 모두 발언을 없애겠다"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모두발언 폐지는 조경태 최고위원 등이 당내에서 분란을 빚은 데 대한 비판으로도 해석된다.
"3자회담은 2 : 1의 매우 불공평한 만남"
김 대표는 3자회담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역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할 때 그건 이렇다고 말하는 정도였다"고 밝힌 뒤, "이번 회담은 2:1로 만난 굉장히 불공평한 만남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김 대표는 "추석 당일인 19일 서울광장 민주당 천막텐트에서 여러 의원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며 "열댓명의 의원들이 여기에 함께 모여 오전 10시 30분 차례를 지낸다"고 소개했다.
비가 오는 날 노숙텐트에서 잠을 자면 잠자리가 물에 흠뻑 젖을 정도지만 그래도 지금 민주당이 싸우고 있는 가치와 비교하면 아무런 고생이 되지 않는다며, 거리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는 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회복만 될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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