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우리들의 추석과 돌아갈 수 없는 그들의 추석

[현장] 추석 하루전날 서울역 스케치

등록|2013.09.19 12:55 수정|2013.09.19 15:30

▲ 추석전날 서울역 야외 모습. ⓒ 박정훈


"부모님 벌써 뵙고 오는 길입니다. 추석은 저에겐 다른 명절과 큰 차이는 없지만 항상 기분 좋습니다."

부산이 직장이어서 부모님이 계신 강원도에 찾아뵙고 오셨다는 이용훈(39)씨는 부모님이 싸주신 보따리를 가지고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포에서 가족들과 오셨다는 서고운(41)씨는 대구 가는 기차시간이 촉박하다고 하면서 "경기가 않 좋아 맘은 무겁지만, 그래도 고향 가는 길이 기분 좋다"며 가족들과 KTX를 타기위해 밝은 얼굴로 걸음을 총총 옮겼다.

▲ 추석전날 서울역 실내 모습.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롭다. ⓒ 박정훈


민족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서울역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차역인 서울역에서 국내 귀성객들의 모습을 확인해 보았다. 다른 귀성객들의 모습도 위 두 사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두워 보이는 이도 있었지만 고향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대체로 밝고 가벼운 모습으로 고향으로 향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 단위로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모습과 개인별로 가는 모습들이 오버랩 되었다.

▲ 예전 서울역 모습. 현재는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박정훈


예전 IMF직후에는 서울역에 가는 길이 고역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냄새가 진동했다. 지하도는 항상 가득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경제위기로 길거리로 내몰린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물론 병자이거나 알콜중독자인 사람들도 많았다. 씻지도 못하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2013년 현재의 서울역은 최신 건물의 터미널로 변모해 있었다. 기존의 역사 건물이었던 구서울역은 전시장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서울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큰 바람이 확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넓은 광장과 잘 정돈된 역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역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올라가 보았다. 바깥부터 시원시원하더니 내부까지도 확 트이는 공간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이용객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할 것이라 짐작되었다.

물론 오늘도 역시나 정돈되고 깨끗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서울역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그러나 98년보다는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서울역 지하도에는 노숙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특히 서울역을 이용하기 위해 가는 동선에는 특히나 노숙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노숙자들의 숫자가 줄어들기도 하였고, 그들을 을지로 쪽이나 서울역 동선과 겹치지 않도록 외곽지하도로 유도했기 때문이라는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 종이 박스 한 장에 의지해 누워있는 노숙인의 모습. ⓒ 박정훈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족이 없어', '서울에 온지는 20년이 넘었는데…….' 40대 중반의 모자를 푹 눌러쓴 진안에서 올라왔다는 김무송(가명)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박스 한 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그의 축처진 어깨와 허공을 응시하는 눈을 보며 추석은커녕 그의 삶의 무게를 감내하기도 버거워 보였다.

▲ 홀로 쓰러져 있는 노숙인을 바라보는 또다른 노숙인의 모습이 처량해보인다. ⓒ 박정훈


'고향에 가고 싶은데 우리 가족들이 못 오게 하지', '집에서 날 싫어해'라며 50대의 이인수(가명)씨는 자신은 밑바닥 인생이라며 고향도 밝히기를 꺼려하였다.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을 검붉은 얼굴과 뼈만 앙상한 몸이 그의 외로움을 전해주는 듯했다.

▲ 홀로 아픈 몸으로 노숙하는 모습이 처량해보인다. ⓒ 박정훈


"여기 사람들 대부분은 가족에게서 버려진 거지 아니면 가족이 없거나 대부분 가고 싶어도 못가"라며 가끔 노숙하는 친구들을 보려고 나온다는 이 동네에 거주한다는 60대 윤충식(가명)씨가 말했다.

▲ 서울역 광장의 야외 노숙인들의 모습. 그들끼리 의지하며 술로 외로움을 달랜다. ⓒ 박정훈


서울역 노숙자들 대부분은 고향과 추석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서울역 광장의 노숙자들은 더럽고 추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기댈 수도 없고, 그래서 몸이 약하고 마음도 나약해서 흔들리는 사회에서 잊혀져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못내 현실을 인정하기 싫고 현실의 변화의 끈을 잡고 싶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풀어져 정신없이 술 마시며 노숙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과 같은 형편인 친구들이 있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은 아닌지. 그들은 몸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었다.

▲ 노숙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는 남대문경찰서 역전 파출소 박성근 경사. ⓒ 박정훈


"요새는 젊은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보통 추워지면 더 늘어나긴 하는데 보통 200여명 정도가 여기에서 생활한다고 보면 됩니다."

서울역전 파출소 박성근 경사의 말이다. "이 사람들 참 신기한 게 그렇게 싸우고 다치고 해도 막상 파출소 오면 상대방 처벌을 원치않아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참 선한 거 같긴 해요. 저 같은 경우 근무한지 좀 되어서 낯있은 얼굴들도 많아서 노숙인 들을 볼 때마다 때론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합니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주었다.

▲ 통일 광장 기도회에서 주최한 서울역 야외 공연을 많은 시민과 노숙인들이 지켜보고 있다. ⓒ 박정훈


그 즈음 광장에서 우아한 첼로 소리가 들린다. 그 품격 있는 선율이 이 외로운 노숙인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까? 곧이어 밝은 표정의 젊은이들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노숙인들은 광장에 놓여있는 객석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눈으로 무대를 응시한다. 추석의 외로움을 잊기 위함인지 아니면 공연을 보면서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보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순간 그들의 눈빛은 가장 간절하고도 행복해 보인다.

그 옆으로 밝은 표정의 귀성객들이 지나간다. 양손에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줄 선물세트들을 들고서.

노숙인 그들도 한때 우리주변의 친구거나 사랑받는 누군가의 아빠이고 아들이고 엄마이고 딸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언제가 행복한 추석이 오기를 기대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