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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역사왜곡 논란, '교감의 고백'이 주는 교훈

[게릴라칼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의 역사적 연원

등록|2013.09.25 13:44 수정|2013.09.2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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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쓰기 위하여 역사 관련 서적 몇 가지를 들춰봤다. 직업이 선생인지라 교과서나 관련 서적 들춰보는 버릇은 없어지지 않는다. 역사를 공부할 때 필독서인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이제는 과목명조차 사라진 7차 교육과정의 <국사>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까지 들춰봤다.

부실하고 편협한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 파동은 뉴라이트 계열인 유영익 한동대 석좌 교수가 국사편찬위원장에 내정됨으로써 정점에 치닫고 있다. 진보 진영 중 일부에서는 패배주의적 생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사태의 결말은 겉으로는 보수 세력의 승리로 귀결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그간 행태로 보건대, 국사편찬위원장 임명은 강행될 것이고,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도 일부 내용을 보완하여 그대로 출간될 것이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두고 벌이는 격전

역사 교과서 파동은 시사적 이슈이지만 아주 거대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다. 역사 교과서가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고 있고, 그것이 누적이 되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그러기에 한낱(?)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두고 진보와 보수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 한국사회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대혈투

▲ 새 국사편찬위원장에 내정된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가운데). 지난 2006년 11월30일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육정보관에서 열린 '교과서포럼 제 6차 심포지엄-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이렇게 고쳐 만듭니다'에서 포럼 도중 4.19혁명동지회, 4.19유족회 등 5개 관련단체 회원들이 들어와 포럼 참가자인 유영익 당시 연세대 석좌교수를 둘러싸고 있다. ⓒ 연합뉴스


아주 장기적 연원을 따지자면 일제 강점기 그리고 더 멀리는 조선 개항기까지 가겠지만, 이번 사태의 중기적 기원은 노무현 정부의 출범이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 보수 세력에게 준 충격은 꽤 어마어마했다. 보수 세력의 입장에서는 잘 나가고 있던 대한민국의 역사가 급격한 좌회전을 하면서 좌초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다. 이런 위기의식의 발로가 2004년 뉴라이트의 출범을 가져왔다.

뉴라이트는 새로운 우익이라는 의미에서 '뉴'를 내세웠지만, 사실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통해 한국 근대화의 씨앗이 뿌려졌고,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박정희의 경제 개발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뤘다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에 일제시대-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이 완성된 것이다.

뉴라이트는 내용이 새로워진 것이 아니라 서술 방식이 세련되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공 궐기대회 대신에 실증주의라는 학술적 무기를 들고 나왔고, '김일성은 가짜'라는 무식한 주장보다는 식민지 근대화라는 학술 용어로 일제 강점기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들고 나왔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해프닝이 뉴라이트 계열의 한승조 교수가 일본의 보수 잡지에 '일제시대는 축복'이라고 평가한 글이었다. 이것은 2005년 3월에 있었던 일이다. 사회적 파문이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말과 상통하는 이야기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의 다음 발언이다.

"저는 일제강점기에 철도 자체가 부설이 되고 그 부설한 목적에는 일본의 침략의도가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들은 일제침략정책 부분에서 충분히 다루었다. 제가 '공간관념의 확대'라고 한 것은 일제의 침략 속에 있지만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살았고, 그 일제의 악재라고 하는 제한 속에서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삶을 어떻게 향상시켜왔는가를 배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중)

그들의 실증주의 역사관에서 살펴보자면 전혀 얼토당토않은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적으로 보자면 '철도'가 건설된 것이 조선 민중에서 새로운 근대적 공간 인식을 심어준 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철도가 생기기 이전과 이후에 사람들의 공간적 인식이 분명 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뉴라이트 결과물인 '교학사 역사 교과서'

그러나 역사는 사실로서만 기술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해석이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고, 사실의 취사선택의 과정에 역사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하 식민지 정책에 대한 긍정적 의미에 대한 서술에서 친일적 역사관을 읽어내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식민지 시대의 근대화로 오늘날 일본이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거도 바로 '근대화'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E. H 카의 명언대로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뉴라이트는 2004년 이래 민족을 주체로 둔 역사 인식에서 실증주의에 따른 새로운 역사적 대화를 시작했다. 그것의 공식적 결과물이 바로 교학사 역사 교과서인 셈이다.

▲ 대안교과서(교과서포럼, 기파랑, 2008) ⓒ 기파랑

그 이전에도 역사 인식의 파문은 되풀이 되어 왔다. 대안 교과서를 만든다고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출간하고서 파문이 일었던 것이 2008년의 일이다. 뉴라이트가 만든 대안 교과서는 이번에 파문이 일은 교학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와 독재 정권에 대한 긍정적 묘사로 문제가 되었다. 일관성으로만 따진다면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은 꾸준하다.

그와 함께 금성사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고 정부가 저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수정 명령을 내리고, 각급 학교에 행정력을 동원하여 금성사 교과서를 다른 출판사 교과서로 바꾸라고 일선 교사들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 2008년의 일이었다.

2008년 당시에 나는 학교에서 금성사판 교과서를 바꾸려는 정권의 시도에 맞서 정말 가열차게 투쟁했다. 그러나 나의 투쟁 대상은 역사 서술의 방식을 정권 입맛에 맞게 힘으로 바꾸려는 극히 반학문적인 작태에 대한 투쟁이었지만, 예기치 않게 투쟁의 강도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현실적 투쟁 대상은 교과서를 바꾸려는 교장, 교감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을 해결하고자 당시 교장, 교감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만약 나의 투쟁으로 금성사판 교과서를 바꾸지 못해서 당하는 불이익이 매우 큰 것이라면 다른 교과서로 바꾸는 것을 용인하겠다. 나야 옳다고 투쟁하지만 이로 인해 평생의 교직 인생에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인간적으로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불이익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당시 교감 선생님은 나에게 구체적 불이익의 내용을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결국 내가 있던 학교에서는 금성사판 교과서가 교체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고 사회적 파문이 가라앉을 즈음에 서로 학교를 달리하고 나서 어느 술자리에서 후일담처럼 당시 상황을 교감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그 때 어떤 압력이 있었냐고 말이다.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부교육감이 직접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각 학교 관리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금성사판 교과서를 바꾸지 않으면 승진이나 예산 지원 등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직접적인 압력을 가했다는 설명이었다.

함량미달의 역사 교과서를 내놓은 이유

요즘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경구가 생각이 난다.

학술적인 논쟁을 해야 할 교과서의 역사관을 가지고 여론 몰이를 하고 일부 극렬 누리꾼들이 교학사에 전화로 위협을 하고 댓글로 욕설을 한다는 것이다. 점잖게 학술 논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보수 신문의 논조이다.

한편으로 맞는 말인 듯도 싶지만, 학술적으로 논쟁할 이야기를 두고 정권의 힘을 빌려서 역사학계와 역사 교육계를 좌편향으로 몬 것이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역사를 정권의 힘으로 좌지우지 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학문에 대한 폭거이자 역사 유린이다. 누가 역사를 가지고 정권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홍보물 돌리는 '친일·독재미화' 논란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교수(오른쪽)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김충환 전 의원과 함께 "올바른 역사교육이 정립되기 위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에 관심을 가져다 달라"며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객들에게 홍보물을 건네주고 있다. ⓒ 유성호


이명희 교수는 지난 11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는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 교실' 초청 강연에서  "현재 학계·교육·언론·문화 등 이념 관련 분야는 좌파가 이미 절대적 다수를 형성하며 미래는 자기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여기서 역사학적 분석 방법으로 평가를 배제하고 사실만을 추출한다면 이명희 교수는 역사학계와 역사 교육계가 진보적인 목소리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뉴라이트가 교과서 문제를 처음 제기할 때, 공격을 당한 교과서는 또 있다. 근·현대사 교과서 말고도 경제 교과서도 엄청난 공격의 화살을 받았다. 오늘날 경제 교과서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은 보수 세력의 시각으로 봐도 애초에 경제 교과서가 별로 좌편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교과서를 바꾸는 것에는 그리 큰 무리가 따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경제학계나 경제교육학계나 모두 비슷한 경제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독 근·현대사 교과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보수 세력이 역사학계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술적으로 장악이 되지 않으니 온갖 무리수가 나오다가 결국에 함량 미달의 역사 교과서가 출간된 것이다. 뉴라이트에서 핵심적인 학술 역량을 가진 학자들 중에 역사학자가 별로 없고 사회과학자들이 많은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뉴라이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정권의 힘으로 마치 역사 서술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처럼 이야기해 왔지만, 이명희 교수의 말대로 역사 교과서가 보수 세력의 시각에서 좌편향으로 된 것은 민주 정부가 정권의 힘으로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이같은 역사 인식에 합의를 도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을 뒤집어엎고 싶다면 정권의 힘, 메이저 보수 언론의 힘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역사 투쟁을 시작하면 될 일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 서울대 교수로 있던 국사학계의 원로 이태진 교수는 정년퇴임을 하면서 "1980년대에 좌편향 역사관을 지닌 제자들을 내보낸 데 회한이 많다"는 말을 보수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리고 이태진 교수는 현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검증하는 총책임을 맡았던 국사편찬위원위원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명예로운 자리에 올라가는데 이 발언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태진 교수가 제자들을 팔아 자리를 얻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태진 교수는 국사학계에서 꽤 존경받는 원로였기에 이명박 정부가 그를 국사편찬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유영익 교수를 임명한 것은 정권의 힘으로 역사를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교훈을 얻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

기본적인 사실 관계의 오류가 가득한 교과서로 민주화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좌편향으로 몰고, 민족 통일의 노력을 반자유민주적 행위로 몰고 가고 싶어도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역사의 경구로 '교훈을 얻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경구를 박근혜 정부에게 들려주고 싶다. 현 국사편찬위원장인 이태진 교수가 회한을 밝혔던 1980년대의 역사 교육은 어떠했는가? 일방적으로 독재 정권을 미화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역사 교육을 시켰다. 그 시대가 바로 보수 세력이 말하는 좌편향된 역사 인식을 가진 역사학자와 교사들을 가장 많이 배출된 시대다.

기사의 서두에서 '이번 사태의 결말은 겉으로는 보수 세력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승리는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없다. 민주적인 정당성과 과정을 거치지 않은 승리는 종국에는 패배로 가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1980년대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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