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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화재참사 현장에 울려퍼진 "성산업, 부수자!"

'2013 민들레순례단', 26일 군산 화재참사 현장에서 각오 다져

등록|2013.09.27 14:22 수정|2013.09.27 14:31
성매매방지법 시행 9년을 맞은 2013년 여전히 불법적 성산업 착취구조에 의한 여성들의 죽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 새벽 충북 보은의 한 유흥주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업소에서 일하던 여성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는 20분 만에 진압되었지만, 비좁은 대피로는 잠겨있었고 방염처리 안 된 내장제로 된 내부는 작은 불씨도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성매매여성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피켓 ⓒ 문주현


성매매방지법 제정의 시발점이 됐던 2000년과 2002년 발생한 군산 대명동·개복동 유흥업소 화재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은 강산일 뿐, 성매매 여성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자신의 삶까지 위협받고 있다.

26일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와 성매매여성의 비범죄화를 위한 여성인권행동, 민들레순례단'(이하 2013 민들레순례단)이 군산 대명동과 개복동을 찾았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이한 민들레순례단에는 서울, 대구, 부산, 대전, 광주,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300여 명이 함께했다.

해마다 9월이 되면 화재참사로 목숨을 잃은 18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유골이 안치된 임피 승화원과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화재참사 현장을 방문하는 민들레순례단. 올해는 다른 해와 다르게 참가자들의 다부진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을 찾은 2013민들레순례단 ⓒ 문주현


"여성인권센터로 인권과 평화, 치유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26일 오후 1시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에서 추모제가 진행됐다. 10년 전 화재로 탄 건물은 올해 초 철거됐는데, 그 자리는 수풀이 무성한 빈 터가 되었다. 현재 전북지역 여성단체들은 성산업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이곳에 여성인권센터가 건립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추모제 발언도 이 같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 송경숙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장은 "왜 꼭 이곳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이곳은 반성매매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다, 여전히 심각한 성산업 착취구조가 존재하는 상황이니, 여성들의 치유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희 전북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이 자리에 비석 하나를 세워 정리하려는 군산시와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대해 "'여성 대통령 시대에 여성 인권이 굳이 필요하냐'는 행정관료에겐 절규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면서 "이곳의 화재참사는 군산시와 지역주민들의 침묵 등 모두의 책임"이라고 소리 높혔다.

여성단체들은 올 초 '군산개복동여성인권센터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앞으로 여성인권센터 건립 성사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에서 2013민들레순례단이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문주현


"성매매여성 비범죄화로 성산업 막아야"

이날 추모제에서는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에 대한 목소리도 컸다. 우선 2013 민들레순례단은 26일 성명을 통해 "군산 화재참사로 성매매여성들의 죽음을 보고서야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었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전국을 뒤덮고 있는 성산업은 김밥집 만큼, 커피숍보다는 몇 배 더 많은 업소가 유흥주점을 필두로 성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구조적 피해자로 성매매여성을 인식하고 있는 방지법과 달리 실제로는 많은 성매매여성들이 피의자로 조사 및 처벌받는 사례가 많다"면서 "성매매방지법이 보다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 성매매여성을 처벌하지 않고 성적서비스 구매를 엄격히 금지하는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피력했다.

실제 최근에는 성매수알선업자와 성매수자를 처벌하고 성매매여성을 비범죄화하는 내용이 담긴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이 두 가지 요구와 함께 화재참사로 목숨을 잃은 18명 여성에 대한 추모의 목소리도 있었다.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의 여성활동가들은 "9월, 언니들을 기억하고 우리의 활동에 힘을 다시금 모으기 위해 이 곳 군산에 왔다"면서 "이곳은 희망과 눈물, 고마움과 미안함이 녹아있는 그런 곳이다"고 말했다.

이어 "화재참사 10년이 지나 개복동 건물은 사라졌지만 이곳이 언니들을 기리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언니들과 눈물의 고백이 아닌 웃음의 수다로 만나고 싶다"면서 추모노래를 함께 불렀다.

2013 민들레순례단은 개복동 추모제을 끝내고 대명동 화재참사 현장까지 행진한 뒤 군산시내에서 여성인권센터 건립을 설명하는 선전전을 진행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마쳤다. 

▲ 2013민들레순례단의 행진모습 ⓒ 문주현


대명동, 개복동 화재참사는

한편, 2000년 9월 19일 군산 대명동에서 발생한 화재참사와 2002년 1월 29일 개복동 유흥업소에서 발생한 화재참사는 성산업이 어떻게 여성을 착취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다.

대명동 화재참사는 일명 '쉬파리골목'으로 불리며 불법성매개가 성행했던 곳에 있는 건물에서 발생했다. 인근에는 군산역과 파출소, 전통시장이 위치하고 있어 성매매가 얼마나 일상적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당시 화재는 무허가 3층 건물 중 2층에서 발생했으며 모두 5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건물 내부는 두꺼운 쇠창살로 창문이 막혀있었고, 유일한 출구조차도 잠금 장치가 되어 있었다. 당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맡았던 판사도 현장을 방문하고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 대명동 화재참사 당시 피해 여성들이 빠져나올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 그러나 이곳은 화재 당시 잠겨있었다. ⓒ 문주현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화재사건으로 취급했고, 희생자 유족 13명은 국가와 군산, 포주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약 4년의 기나긴 법정다툼 끝에 대법원에서 최초로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개복동 화재참사는 무선전화기 어댑터의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2층에서 잠을 자던 13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고 2명이 큰 부상을 당한 사건이다.

당시 화재가 난 2층은 업주의 남동생이 사는 방의 문을 통해서만 갈 수 있었고, 화재 당시에는 잠겨 있었다. 그리고 창문 등도 안팎에서 막아놔 사실상 감옥과 같은 구조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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