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만에 10억달러 팔린 게임, 직접 해봤더니
[오마이뷰] 성인용 비디오게임 GTA5... '미드' 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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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락스타 게임즈의 GTA5 온라인. ⓒ 락스타게임즈
은행강도 출신 상류층 백인, 할렘가에서 성장한 흑인, 중년의 백인 연쇄살인마. 게임이라기 보다는 잘 짜여진 한 시즌 분량의 자극적인 미국 드라마를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남의 자동차를 뺏고 길거리에서 사람을 쏴 죽이는 등 극단적인 폭력 성향은 전작에 비해 더욱 강렬해졌다. 그러나 풍자적이고 개연성 있는 줄거리가 더해진 탓에 천편일률적인 비판은 어려워 보인다.
락스타 게임즈의 신작 비디오게임 GTA(Grand Theft Auto, 차량절도)5가 출시 3일 만에 10억 달러(한화 1조 8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화제다. 영화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던 <아바타>보다도 다섯 배 이상 빠른 속도다.
PC용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에 익숙한 다수의 국내 사용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풍경이다. 무슨 게임이길래 콘솔(플레이스테이션3, XBOX360 등 가정용 게임기) 게임이 이렇게 인기가 좋은 걸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해봤다.
▲ 사용자가 이동할 곳을 고르는 게임 화면. 지도 자체가 매우 넓고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로스 산토스 골프 클럽 같은 부동산은 가격도 함께 표시된다. ⓒ 김동환
폭력성 짙은 '성인용 게임'... 높은 수준 한글화 특징
GTA5의 스토리모드를 시작하면 주무대인 '로스 산토스'와 '블레인 카운티'가 등장한다. 전작인 GTA4에서 미국 뉴욕의 실제 모습을 옮겨놨듯 이번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풍경을 거의 유사하게 옮겨놨다. 게임의 목적은 이 도시와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주인공은 셋이다. 베테랑 은행 강도 출신 상류층 백인인 마이클은 각종 청부업을 통해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LA의 근사한 집에 살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돈을 물쓰듯 하는 아내와 게임 중독인 아들, 연예인을 꿈꾸는 딸은 그를 돈 벌어오는 기계로 여길 뿐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유일한 흑인인 프랭클린은 깡패 출신 자동차 압류원이다. 원래 심성은 착하고 다소 우유부단하지만 슬럼가에 살다 보니 갱으로 자라났고 지금은 큰 돈을 벌 기회를 노리며 고급 자동차 대리점에서 일한다. 특기는 자동차 운전.
후줄근한 모습의 마약 상습범 트레버는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연쇄 살인마다. 쉽게 욱하고 한 번 발작하면 수십 명씩 사람을 쏴 죽이는 통제불능 성격을 지녔다. 트레버는 자유분방한 폭력성이 강조됐던 GTA 이전 시리즈들의 성향을 그대로 잇는 인물이다.
▲ 화가 나서 미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트레버. '난동' 모드를 선택하면 이런 상황을 연출 할 수 있다. ⓒ 김동환
락스타 게임즈는 약 40시간 분량의 스토리모드에 이 세 명이 왜 이런 인물이 되었는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어떤 욕망과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를 복잡한 복선과 함께 엮어놨다. 게임을 하는 사용자들은 3명의 주인공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며 다양한 미션을 수행한다. 1시간쯤 하다 보면 한탕 범죄를 다룬 6개월 분량의 재미있는 미국 드라마를 보는 기분으로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빈민가 출신 흑인인 프랭클린의 에피소드에는 인종차별 등 미국사회의 어두운 면들이 여과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스토리모드를 진행하다 보면 프랭클린이 남의 집 안을 쳐다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집 안에 있는 백인은 그를 보고 "맙소사! 흑인이야!(Oh my god. He's a black.)"라고 비명을 지른다.
게임 속 NPC(주인공이 아닌 게임 속 주변인물)들도 비슷한 세계관 설정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백인인 마이클이 경찰서 안쪽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기웃거리면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지만 프랭클린이 같은 행동을 하면 대번에 경찰관이 수상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설정들은 세밀한 3D 그래픽과 함께 높은 사실감을 선사한다.
국내 사용자에게는 GTA5에서 처음 시도되는 한글 자막도 큰 매력이다. 유머와 미국의 문화적 맥락이 묻어나는 대화들을 거의 손실없이 담아냈으며 특히 캐릭터에 따른 각종 비속어, 욕설 번역의 완성도가 상당한 수준이다. 게임물 등급위원회는 지난 8월 GTA5의 심의를 통과시키며 '과도한 저속어, 비속어 및 욕설, 폭력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매긴바 있다. 철저한 '성인용 게임'이라는 얘기다.
▲ GTA5 한글판의 가장 큰 묘미 중 하나는 질 높은 욕설 번역이다. 성인용 게임인 탓에 범죄자 출신인 주인공들의 '걸쭉한' 대화가 여과없이 전해진다. ⓒ 김동환
은행강도 외에도 부동산 매매, 주식투자 등 다양한 활동 가능
GTA5의 최고 가치는 돈이다. 돈만 있으면 탱크부터 전투기까지 뭐든 살 수 있다. 그런데 세 명의 직업이 이렇다 보니 스토리모드에서 이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살인청부 대행, 살인, 납치, 고문, 절도, 은행강도 등등이다. 권총, 소총은 물론 때로는 헬기 속에서 밧줄을 타고 건물에 침투해 중요 인질을 납치하기도 하며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이런 행동들은 대부분 게임 속 미션의 형태로 사용자에게 주어진다.
GTA 시리즈의 상징 중 하나였던 '차량탈취'는 다른 행동에 비하면 애교에 가까운 수준이다. 주인공이 휘두르는 폭력에 대한 사회의 반응도 한층 능동적으로 변했다. 플레이스테이션용 GTA 시리즈에서는 조종기의 세모(△) 버튼을 누르면 멈춘 차나 자전거 등을 쉽게 뺏을 수 있는데 GTA5부터는 NPC들의 인공지능도 높아져서 괜히 갱 차를 건드렸다가는 권총을 뽑아든 갱에게 되레 죽임을 당할수도 있다.
범죄를 저질렀을 때 쫓아오는 경찰의 추적도 끈질겨졌다. 차마다 운전하는 느낌과 최대 속도도 다르다. 이곳 저곳에 '사고'를 많이 쳐 놓은 사용자는 빠르고 고급차를 타야 경찰의 추격에서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다.
직접 게임을 진행하며 가장 놀랐던 장면은 트레버가 FBI(게임 중에는 FIB로 나온다)의 사주를 받고 납치한 인질을 고문하는 미션이었다. 고문 도구는 몽키스패너, 펜치, 전기충격장치, 물수건 등이다.
사용자가 고문도구를 하나 선택하면 화면 왼쪽 상단에 조종기를 어떻게 조작하라는 안내문구가 나온다. 이 게임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역할은 거의 팔할이 트레버의 몫인데 '난동'이라는 메뉴를 선택하면 주둔해 있는 병사 수십명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 GTA5 스크린샷. 게임 속 주인공인 트레버가 인질에게 전기고문을 하고 있다. ⓒ 김동환
물론 이같은 미션들을 꼭 수행할 필요는 없다. 모든 미션이 폭력적인 것도 아니다. 스토리모드 초반에는 마이클이 아내의 전담 요가강사와 함께 요가를 하는 미션도 있다. 아들과 드라이브를 가기도 한다. 이런 점들은 그저 차를 뺏고 사람을 죽이는 게 대부분이던 이전 GTA 시리즈들에 비해 사용자들에게 다층적인 흥미를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GTA5에는 강도질 이외에도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물리적인 폭력을 최소화하고 싶은 사람은 택시를 한 대 훔쳐서 택시영업으로 돈을 벌 수도 있다. 건물을 사서 임대업을 할 수도 있고 회사를 인수해서 배당금을 받을 수도 있다. 게임 내에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택시 영업으로 번 돈으로 부동산을 사거나 스마트폰으로 주식투자를 할 수도 있다.
이같은 다양한 활동들은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게임의 폭력성을 묽어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자아낸다. 폭력성 짙은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기자도 서너 시간 조작만에 게임의 완성도나 재미에 비해 가격이 상당히 싸다는 인상을 받았다.
▲ GTA5는 옷, 무기, 문신 등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개인 설정이 가능하다. 아래 사진은 요가 미션을 하는 마이클. ⓒ 김동환
콘솔 게임 하향세 중 이례적 신기록...국내서도 '완판'
미국판 GTA5의 가격은 개당 60달러다.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려면 이 게임을 1300만 개 이상 팔아야 한다. 처음으로 정식 발매된 국내에서도 첫날부터 '완판'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콘솔 게임시장이 세계적으로 하향세를 그리는 와중에 출시된 이 게임이 발매 3일 만에 10억 달러 넘게 팔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과감한 투자를 꼽는다.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들어진 높은 질의 게임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었다는 것이다.
제작사인 락스타 게임즈는 GTA5 개발에 2억 6000만 달러(한화 약 2900억 원)을 투입했고 이 투자액들은 보다 사실 같은 게임을 만드는 데 쓰였다. 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그래픽 작업 이외에도 대본 등의 문화적인 콘텐츠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세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 음성 같은 경우에는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범죄 조직원을 고용해 각본을 범죄자들이 사용하는 '찰진' 어투로 바꾸고 녹음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협력플레이를 가능케 해 주는 게임 내 온라인 시스템도 구축해 다음달 1일부터 서비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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