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산속에서 만난 배웅견... 한번 더 그곳에 가고 싶다

강원도 화천 파로호 한뼘길을 걸었다

등록|2013.09.29 18:38 수정|2013.10.03 21:42

▲ 화천 파로호변, 그곳에 길이 있다. ⓒ 신광태


"우리 부서에서 조성한 한뼘길에 대해 설명해 볼 사람?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으면서 관광객들에게 무슨 홍보를 하겠나!"  

일주일전 김세훈 화천군청 관광정책과장은 직원들에게 파로호 한뼘길 답사를 말했다. 지난 9월27일 20여명의 관광과 직원들을 1박2일 일정으로 한뼘길 답사를 떠났다.

파로호 주변엔 과거 화전민들이 이용했던 오솔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그곳 사람들은 50여리길 읍내까지 걸어 나가 쌀이나 생활용품을 사오곤 했다. 산속에서 1박을 해야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산골사람들은 읍내로 나가려면 비닐뭉치는 필수였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그들은 산속에서 비닐을 덮고 잤다.

▲ 파로호 주변 옛집, 주인이 누굴까. 말끔히 정돈을 해 놓은 것이 인상에 남았다. ⓒ 신광태


70년대, 정부의 녹화정책에 따라 산골마을을 떠난 화전민들이 살던 곳엔 오솔길만 남았다. 민물고기를 잡아 근근이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산골을 떠나는)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 길은 드문드문 남겨진 어민들이 이웃으로 마실가는 통로로 또는 약초꾼들이 이용하는 길이었다.

옛날 이곳 사람들은 파로호 강변에 길을 만들었다. 큰 산을 굽이도는 것보다 동선이 짧기 때문이었겠다.

호수를 내려다보며 걷는 길. 가을 풍경을 담은 한 폭의 수채화를 닮았다. 이곳에 트래킹 코스를 만들자. 오솔길에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 풀들을 그대로 살렸다. 폭을 최대한 좁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비껴가기에는 턱없이 버거울 정도다. 엄지를 한쪽에 고정시키고 손바닥을 쭉 펴면 딱 한 뼘 넓이다. 그래서 이 길 이름을 한뼘길이라 지었다.

산속의 폐교,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 수동분교, 이곳에 캠핑촌이 만들어졌다. 한뼘길 시작점에서 비수구미까지 딱 중간 쯤에 위치한다 ⓒ 신광태




한뼘길 시작 시점에서 파로호를 내려다보며 4km 정도를 걷다보면 조그만 학교를 하나 만난다. 이 깊은 오지에 어떻게 학교가 있었을까. 화전민들이 살던 강변엔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어린 아이들을 50여리길 읍내에 위치한 초등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조금 산다는 집은 읍내로 유학을 보냈다. 다수의 가정에선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6학년까지 규정과정은 아니어도 초등학교 3학년 또는 4학년까지의 과정은 이곳 분교에서 가르쳤다. 교실 한 개에 손바닥 만한 운동장. 아이들은 파로호에 발을 담그고 하루 종일 놀았다. 다람쥐와 산토끼들도 이 아이들의 친구였다. 가재도 잡고, 산딸기도 따고, 넓은 운동장을 필요치 않았다.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체육활동의 일부였다.

아이들이 화전을 일구는 부모를 따라 떠난 자리. 학교도 쓸쓸함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만 갔다. 좁은 운동장엔 달맞이꽃이 만발해 떠나간 아이들을 그렸다. 밤새 고라니와 멧돼지, 산토끼들도 다녀가곤 했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 과거 학생들이 이용하던 우물도 복원했다. ⓒ 신광태



화천군에서는 이곳에 캠핑장을 만들었다. 우물도 복원하고 연못도 되살렸다. 도시사람들에게 이곳의 풍경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곳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인근 산들은 봄이 되면 산나물을 내어주고 가을이면 머루와 다래, 밤, 버섯 등을 선물했다.

산나물에 된장을 넣어 끓인 찌개의 맛에 푹 빠진 도시 사람들이 단골처럼 그곳을 찾기 시작했다. 초가을, 한뼘길을 걷다가 얻은 개금버섯과 노루궁뎅이 버섯은 된장과 궁합이 잘 맞는다. 그 맛을 본 사람들은 힐링이란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산속에서 만난 커다란 개, 배웅견이란 이름을 붙였다

▲ 산속에서 만난 늑대를 닮은 개. 이 녀석은 우리 일행을 500여 미터나 안내했다. ⓒ 신광태




아침 8시. 수동분교에서 1박을 한 우리 일행은 비수구미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4km를 걸어가면 4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수구미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산채 비빔밥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아침식사를 걸렀다. 시장함이 더할수록 산채 비빔밥의 감칠맛이 더할 거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밤새 맑은 공기로 배를 채웠기 때문인지 아침식사를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구간의 비포장 도로는 겨우 차량이 한 대 정도 지나갈 정도다. 한뼘길에 비하면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드문드문 위치한 민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겹다. 마른 나뭇가지를 이용해 누군가를 위해 아침밥을 짓는 모양이다.

▲ 파로호변 배터. 육로가 없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자가용 소형 배가 필수이다. ⓒ 신광태


산길에 널브러진 밤도 줍고 호도 모양으로 생긴 '가래'도 주웠다.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딱 한 움큼만 줍는다. 다람쥐 등 청설모의 먹이를 생각해서 일겠다.

"어머 얘는 누구야?"

깜짝 놀라 내 등 뒤에 숨는 사람은 우리부서 막내 이진희씨다. 산속에 커다란 개가 출몰했다. 늑대인줄 알았다. 큰 덩치와 털 색깔은 영락없이 늑대를 닮았다. 눈을 보니 한없이 선량해 보인다. 인근의 어느 민가에서 기르는 개 인듯했다. 손짓을 하니 달려와 반갑다는 시늉을 한다. 녀석을 자세히 보니 순해빠져 동료를 잃은 늑대를 닮았다. 아마도 산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다보니 건강한 털과 피부를 지녀서 인 듯하다.

500여 미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를 안내하던 그 늑대를 닮은 개는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아쉬운 듯 우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왔던 길을 돌아서 간다.

▲ 아쉬운 듯 우리 일행을 보내는 배웅견. 이 녀석 때문에 이 길을 다시 찾고 싶었다. ⓒ 신광태


"저 개 이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음...산속의 배웅견 어때요?"

신선한 생각이다. 가끔 어떤 상황에 대한 주제가 생각나질 않을 땐, 우리 막내직원인 진희씨의 협조를 구한다. 오마이뉴스 기사 중 '붕어섬 변태 이야기'가 그랬고 '말레이시아에서 겨울을 팔았다'라는 제목이 그랬다.

"먹을 걸  줄걸... 아까 우리를 배웅했던 그 아이(개) 한테 자꾸 미안해지네."

그럴걸 그랬나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것에 대한 보답을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에 올 땐 녀석이 좋아할 만한 육포라도 사 와야겠다. 그런데 '내가 이런 것 바라고 안내 했냐'는 눈빛을 보내면 어쩌나. 녀석의 의향을 물어서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해야할 일이다.

실제 노루궁뎅이가 저렇게 생겼을 것 같다

▲ 노루궁뎅이 버섯. ⓒ 신광태




봄날엔 고사리가 지천이었겠다. 누런 빛깔의 줄기와 잎을 펼쳐 보이고 있는 고사리 밭도 지나고 빽빽히 늘어선 두릅나무 숲길도 지났다. 이미 해가 중천인데 달맞이꽃은 그대로 피어 있다. 파로호의 신선함을 머금어서일까. 구철초 향기가 진했다.

"저건 뭘까?"

참나무 고목에 매달린 흰 물체. 노루궁뎅이 버섯이다. 옛날 시골사람들은 식물이나 동물 등의 이름을 생긴 모양대로 불렀다. 흐물흐물하게 보인다고 '흐르레기'라는 버섯 이름을 붙였고, 9월에 피는 꽃이라 하여 '구절초' 라고도 붙였다.

난 한 번도 노루궁뎅이를 본적이 없다. 그런데 그 버섯만 보고 있으면 노루궁뎅이가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이 간다.

"나 여기 부모님 모시고 한 번 더 올 거예요." 
"왜? 남친하고 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막내 이진희씨 ⓒ 신광태


늦은 나이에 공무원을 시작한 진희씨는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아쉽다는 표현을 그렇게 했다. 늦깎이로 시작한 직장생활. 그러다 시집이라도 가게 되면 부모님께 해 드린 게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는 거다. 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녀석은 나를 가끔 울컥하게 만든다.

'이명애표' 산채 비빔밥, 그 맛에 매료되었다

▲ 이게 바로 이명애씨표 산채 비빕밥이란다. ⓒ 신광태




비수구미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김상준 동촌2리 이장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렀다. 병풍취, 곰취, 취나물, 삽주싹, 혼잎나물 등 20여 가지의 산채 반찬을 준비했다. 어떻게 62세나 된 이장님이 우리 막내직원인 진희씨보다 피부가 곱냐는 말에 사모님을 가리키며 '이명애씨표 반찬 때문이다'란다. 산채향이 듬뿍 담긴 비빔밥이 맛있다. 그 맛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먹는 데만 열중한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 송이주와 김상준(62세) 동촌2리 이장 ⓒ 신광태


"와, 저거 백만불 짜리인데,,,"

그냥 감탄만 했을 뿐인데, 이장님은 병 뚜껑을 개봉했다.

"작년에 송이를 따서 담근 술인데, 돈 안 받을 테니 그냥 들 마셔!" 

송이를 어렵게 구해서 담근 술이기에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비싸게 받을 수도 있을 텐데, 눈치 없는 내 멍청한 감탄에 또 한 번 신세를 졌다.

"이런 산골에선 욕심 부리며 살면 안 돼. 산이 내주면 내 주는 것으로 풍족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만 살 수 있는 곳이 산골이여."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기온이 크게 내려갈 것 같다. 경쟁이나 하듯 단풍들은 앞 다투어 알록달록 단장을 할 거다. 단풍들이 파로호를 거울삼아 투명한 호수에 얼굴을 담글 무렵, 좋은 사람들과 이 곳을 한 번 더 와야겠다.

파로호 한뼘길 걷기
① 선박 이용시 : 화천 구만리 뱃터-카페리 이용(토,일요일 일일2회 운항)-한뼘길 시작점-수동분교 캠핑촌(1박)-비수구미-카페리 이용 복귀

② 차량 이용시 : 평화의 댐 인근 싸리골에 차량 주차-(도보로 수동분교 경유)한뼘길 시작점-(돌아나와)수동분교 캠핑촌(1박)-비수구미-싸리골에서 복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