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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과 배꼽티가 손잡는 곳, 터키가 궁금해?

[서평] 이종헌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

등록|2013.10.02 18:10 수정|2013.10.02 18:26

책겉그림〈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 ⓒ 소울메이트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동 시조인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이 있죠. 성경 '창세기'의 무대가 된 곳 말이죠. 문명의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발원한 곳이자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된 곳이죠. 세상 모든 길이 통했던 로마제국의 심장이었던 곳, '터키'가 바로 그곳입니다.

현재 터키에는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투르크족의 후손들이 살고 있지만, 그 전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페르시아, 이집트 문명의 사람들이 교차하며 살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더욱이 로마제국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이슬람 제국의 600년 수도가 있던 곳이자 페르시아 전쟁,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 십자군 전쟁의 중심지였죠.

그렇듯 터키는 충돌의 도화선이었고, 문명의 교착점이기도 했죠. 지금은 국민의 99%가 무슬림이지만 여전히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문화도 융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의 첨탑과 십자가가 한 눈에 들어오고, 무슬림의 머릿수건인 히잡을 쓴 여성과 배꼽티를 입은 여성이 함께 손을 잡고 거리를 다니기도 하죠.

비잔티움 제국은 왜 몰락했을까

이종헌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은 터키의 모든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 책은 터키에 관한 역사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책 하나면 터키의 고대 역사에서부터 현재의 정치·경제사 그리고 미래사까지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1453년 오스만 제국와 비잔티움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에서 54일 동안 치른 전쟁은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사건이었다. 기원전 8세기에 태동해 서로마와 동로마로 이어지며 2천년 넘게 유지된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로마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79쪽)

이는 터키의 관문과도 같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언급하면서 오스만 제국 정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을 무너뜨린 배경을 이 책에선 세 가지로 생각하도록 합니다. 하나는 비잔티움이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에만 의존한 채 병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 둘은 약관 21세였던 술탄의 놀라운 지략, 셋은 당대의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비잔티움을 지원하지 않은 까닭에 있다는 게 그것이죠.

사실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은 신도 허물지 못하는 성벽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말로 견고했다고 합니다. 성벽 앞에는 폭 20m의 인공 하천인 해자가 있고, 그 성벽도 세 겹의 계단식으로 돼 있었습니다. 각 성벽마다 궁수들이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난공불락의 성벽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술탄은 골든혼을 이용해 성벽 안에 있는 비탄티움 병사들을 분산시키는 방책으로 그 성벽을 끝내 점령했다고 하죠.

터키는 그처럼 전쟁과 살육이 난무한 곳이기도 하지만, 또한 기독교의 성지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죠. 그중 하나가 안티키아(Antioch) 즉 성경에서 '안디옥'으로 불리던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곳은 바울이 2000년 전 노예와 가난한 자와 이방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고 했던 곳이고,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 동굴교회를 세웠던 곳입니다. 로마제국의 핍박을 피해 숨어지내며 초대교회를 세웠던 곳이자, 당대의 기독교인들이 최초로 '크리스천'이라 불렸던 곳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곳이 천년 후에는 전쟁과 살육이 들끓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십자군 전쟁의 총 집결지가 된 곳이 그곳이었죠. 물론 또 다른 천년 후에는 그곳이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땅이 되었다지만, 지금도 시리아에서 넘어온 전쟁 피난민과 끊임없는 테러로 신음하는 곳이라고 하죠.

"제국의 종교가 된 기독교는 황제의 비호를 받으며 점점 로마제국을 닮아갔다. 생각이 다른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폭력적 방법으로 박해를 받던 기독교도들은 이제 폭력적 방법으로 이교도들을 제압하려 한 것이다."(292쪽)

왜 그토록 안디옥에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은지를 밝힌 것이죠. 이른바 종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있는 게 그 까닭이라고 설명하죠.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전도를 위해 넘었던 그 험준한 타우로스 산맥도, 1097년 10월에는 수만 명의 십자군 군대가 그 산맥을 넘다가 죽어났다고 하죠. 그들에게 그 죽음은 신을 위한 '순교'의 행렬이었다는 것이죠.

그렇듯 이 책은 터키에 관한 역사 여행을 최고 목적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곳곳에 화려함과 낭만적인 풍경이 즐비하지만 그 속에 숨은 야만의 역사가 깃들어 있음도 눈여겨 봐야 하겠죠. 이 책은 보는 것에만 머물러 있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숨어 있는 역사를 찾도록 돕는 진정한 '역사 기행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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