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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 복직' 목표 변함없다... 잠시 몸 추스를 것"

[인터뷰]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신임 지부장

등록|2013.10.04 17:58 수정|2013.10.04 17:58

▲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신임 지부장 ⓒ 최지용


그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평소 대한문 분향소나 집회현장에서 만났을 때와 완전히 다른 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만난 김득중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신임 지부장은 지난달 30일까지 20일 동안의 단식으로 핼쑥해져 있었다. 평소 제법 큰 키에 체격이 다부진 모습과 차이가 컸다. 그는 현재 구속돼 있는 김정우 전 지부장에 이어 지난 1일부터 새 지부장의 임기를 시작했다.

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에 김 지부장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 간 겁니다"라며 "2009년 파업 때 모습이 이랬는데, 서울에 올라가 투쟁하면서 살이 많이 쪘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공장 앞에서 출근 선전전을 하면 회사로 들어가는 동료들이 몰라보거나 이름을 들어야 알았는데, 이제는 얼굴 보고 알아본다"며 웃었다. 김 지부장은 함께 단식을 진행한 조합원들과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현재 공장 인근 단식원에서 묵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공장 앞 야외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우선 대한문 분향소 상황부터 물었다. 쌍용차지부는 지난 2012년 초부터 서울 덕수궁 앞에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사망한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24명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했다. 계속되는 죽음을 막고 시민들에게 쌍용차 정리해고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설치했던 분향소는 경찰과 중구청에게 강제철거 당했다. 최근까지 진행된 단식도 천막 하나 없이 노상에서 진행됐다.

- 조합원들 대부분이 평택에 내려와 있다. 이제 대한문 분향소는 어떻게 되나? 투쟁 거점을 평택으로 옮기는 건가?
"지부에서 논의를 하고 있는데, 당분간은 유지를 할 생각이다. 매일 저녁 미사를 해주시는 신부님들과도 논의를 해야 한다. 쌍용차 투쟁의 상징이고 거점으로 운영해왔는데, 현재로서는 대한문 분향소를 장기간 운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는 결정을 할 예정이다. 오랜 투쟁으로 조합원들의 피로가 상당히 누적돼 있다. 1년 6개월을 노숙하다시피 지내다 보니 디스크 증상을 호소하는 조합원이 많다. 길고 질긴 싸움을 했으니 몸을 추슬러야 한다."

그러면서도 김 지부장은 대한문 분향소 철수가 투쟁의 후퇴로 비춰지는 것은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대한문 분향소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에 정치권과 시민들을 상대로 우리 문제를 알리겠다는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다"며 "그곳이 연대의 상징이 되고 중요한 거점이지만 그런 전략적 측면은 약화됐다, 이제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야하는 상황이 되면 대한문 분향소는 언제든 다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달라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전술 취해야"

김 지부장은 신임 지부장들에게 으레 던지게 돼 있는 이전 투쟁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다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내 대한문 분향소 설치를 비롯해 그동안 서울과 평택에서 진행된 투쟁의 성과를 자신 있게 제시했다.

- 김정우 지부장에 이어 지부를 이끌게 됐다. 국민적 관심사가 쏠린 투쟁이 장기화 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부장이 된 소감이 어떤가?
"개인적인 부담은 컸지만 지난 4~5년 동안 함께한 동지들 믿고 하게 됐다. 역할과 책임이 주어진다면 피하지 않겠다고 생각해왔다."

- 새 지부장으로, 또 지난 투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여태까지의 쌍용차지부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2009년 파업이 끝나고 구치소에 1년 있었다. 그때는 다들 공장에서 밀려 나오고 정신이 없어 재정비 시간이 필요했다. 2011년에 들어서면서 죽음이 계속됐다. 22번째 죽음으로 대한문으로 나갔다. 서울투쟁이 시작됐다. 대한문에 분향소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천막도 수차례 빼앗겼고 연행도 여러 번 됐었다. 그때부터 분향소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빚을 졌다고 말씀하시는 시민들과 여러 연대 단체들, 정치권에서도 찾아왔다.  

결국 우리의 투쟁으로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 3년 동안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없었다. 회사도, 언론도, 정치인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지난해 김정우 지부장의 40일 단식부터 반응이 있었다. 국회 청문회도 열렸고, 국정감사에서도 핵심적으로 다뤄졌다. 그리고 국정조사까지 말이 나왔고 대선후보들이 약속까지 했다. 그 이후에 철탑농성 170일이 있었고 회사가 미뤄왔던 무급휴직자 480명의 복직이 이뤄졌다. 이런 것들이 지난 4년 투쟁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김 지부장은 2009년 공장 옥쇄파업 당시 지부 조직실장으로 참여했고, 김정우 전 지부장의 4기 지도부에서는 수석부지부장으로 활동했다. 김 전 지부장이 해고자 복직 투쟁을 이끌고 투쟁의 상징적 인물이었다면, 그는 지부 내부를 챙기고 쌍용자동차범국민대책위에 참여한 연대 단위 단체들과 사업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점이 그가 보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지도부로 평가받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주변에서는 김득중 지부장을 이전 지도부보다 온건한 인물로 평가하더라. 그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주변에서는 그렇게 평가하는 게 맞다. 직전까지 맡은 게 수석부지부장이었다. 내부를 다독이고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평가가 나온다. 종교계나 우리와 연대하는 단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일을 2년 동안 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평가가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장점일 때는 살리고 단점일 때는 동지들과 함께 보완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어떤 성향으로 평가 받든 우리의 요구와 목표가 바뀌는 게 아니다. 회사의 정상화와 해고자들의 복직이라는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달라진 상황에 따라 전술을 택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전과 달라진 지점은 우선 정치권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또 연대 지지해주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공장 안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는 것도 우리가 새로운 전술을 택해야 하는 이유다."

"공장 안 분위기 달라지고 있다... 안과 밖이 한목소리 낼 것"

쌍용차 해결 촉구 '집단 단식농성' 돌입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포함한 12명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한 모습. ⓒ 이희훈


최근 쌍용자동차 회사 측은 "정상화 됐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생산량은 이미 지난 2009년 워크아웃 이전 상태를 회복했고, 생산라인에서도 2조 교대제가 일부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우일 사장은 지난 3일 언론인터뷰에서 "뉴 코란도C 판매가 본격화되면 글로벌 판매량을 연간 8만 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쌍용차가 새롭게 탄생하려면 회사 이름과 로고 등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희망퇴직자 복직 TF를 구성해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회사가 정리해고자를 언급하지 않고 '희망퇴직자의 복직'만 이야기했지만 정리해고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 쌍용차 사태의 온전한 해결은 불가능하다. 희망퇴직자를 제외한 쌍용차의 정리해고 인원은 187명으로 현재 생산수준에서 충분히 수용 가능한 인원으로 여겨진다. 쌍용차의 생산량이 늘면서 신규인력 500명가량이 충원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지부장은 앞으로의 투쟁 방향으로 '현장 조직화'를 거론했다. 다시 공장 안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뜻이다.

- 대한문 분향소, 단식, 고공농성… 어찌 보면 할 수 있는 투쟁을 다 했다. 여전히 목표는 해고자들의 복직인데 앞으로 투쟁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쌍용차 문제의 사회화는 어느 정도 진행됐다. 올해 남은 몇 달 동안은 일단 현장 조직화에 주력하고 한다.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 밖에 있는 지부를 조직화해야 한다. 그동안 쌍용차는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지부 사이의 갈등이 부가됐다. 사측이 둘 사이를 갈라 쳤고, 노동자들 사이에는 갈등과 불신이 있었다.

이제는 화해하고 서로 치유해 나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공장이 정상화 되고 생산량이 늘지만 라인에 인력은 이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공장 안의 노동자들도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안과 밖이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안과 밖의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 올해 초 무급휴직자들이 복직하면서 공장 안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건가?
"그 영향이 상당이 크다고 본다. 무급휴직자들이 복직하고 공장이 정상화 되면서 안쪽의 노동자들도 지난 3~4년 동안 억눌려 있던 상황에서 다시 자신감을 찾고 있다. 그동안 경직되고 딱딱했던 현장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이맘때는 아침선전물로 800부가량을 인쇄했다. 지금은 그 양을 두 배로 늘렸어도 부족하다.

우리가 나눠주는 선전물을 거의 다 받아 간다. 또 예전에는 정문 안쪽에 큰 파란색 휴지통이 있어 일부는 선전물을 받자마자 그곳에 버리고 갔다. 지금은 그 휴지통도 없고 버리는 사람도 없다. 예전에는 껄끄러웠지만 지금은 서로 보며 환하게 웃고 포옹으로 인사를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아침마다 힘을 얻고 있다."

- 단식을 중단하며 기업노조와 지부, 사측의 교섭을 제안했다. 아직 반응은 없나?
"지금 이우일 사장이 해외 나가 있고, 바로 답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부는 사측이 대화에 나서겠다고 하면 어떤 조건도 없이 응할 거다. 기업노조에도 공식적으로 방문을 요청할 생각이다. 노동자들이 이제 한목소리를 내야 하고, 사측과도 구체적인 의제들을 설정해 대화해야 한다."

"손해배상청구, 2009년 악몽 떠오르게 만든다"

이날은 김정우 전 지부장의 재판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김 전 지부장은 지난 8월 대한문 분향소 철거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해 연행됐고, 이후 일반교통방해 등의 협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대한문 분향소와 '희망텐트'를 비롯해 수차례 집회 과정에서의 충돌 책임을 김 전 지부장에게 묻고 있다.

김 전 지부장의 구속 재판과 함께 지난 2009년 파업당시 공장 점거를 이유로 회사 측이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도 문제다. 복직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압류하는 경우도 발생해 논란이 됐다. 사측은 2009년 옥쇄파업 때문에 입은 피해라며 117억 원의 손해배상을 노동자들에게 제기했다.

- 김정우 전 지부장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또 손해배상 문제도 사측과 대화에서 풀어야 할 시급한 문제로 보인다.
"김정우 지부장의 경우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평택과 서울에서 있었던 모든 집회가 기소 내용에 들어가 있다. 그걸 다 묶어서 마치 중대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하고 있는데 사실은 벌금 정도 받을 수준이다.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재판부가 상식적인 곳이라면 1심에서 당연히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손해배상과 가압류 문제는 정말로 심각하다. 공장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떠난 희망퇴직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건 너무한 거다. 그것 때문에 2009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분들도 있다. 공장에 복귀한 노동자들의 월급 50%를 압류하겠다는데 그 상실감은 얼마나 크겠나. 경찰이 청구한 손해배상도 마찬가지다. 복직문제와 함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급하게 풀어야 할 문제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정우 전 지부장의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까지 동행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김 전 지부장의 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기다렸지만 김 전 지부장은 다른 통로로 들어갔다. 앞선 재판에 밀려 김 전 지부장은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법정에 나왔다. 피고인석으로 이동하며 김 전 지부장은 방청 온 조합원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김득중 지부장도 손을 들어 인사했다. 투쟁을 책임지고 법정에 선 사람, 앞으로 투쟁을 책임질 사람이 만났지만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다.

끝으로 김 지부장은 인터뷰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 이렇게 웃으면서 투쟁할 수 있는 건 3년 동안 함께 해주신 분들 덕분이다. 함께해준 시민들, 연대 단체들, 민주노총이 없었다면 이렇게 싸우지 못했다. 감사하고 또 부탁드린다. 지금도 정리해고로, 노동탄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 함께해주시길 바란다. 관심 받은 만큼 쌍용차지부도 언제나 함께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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