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버스를 타고 다녔다. 조금 불친절 하거나 거칠게 운전을 하는 기사님을 만나면 꿍얼꿍얼 혼자서 욕도 했다. 자가용을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할 때에는 운전하는 남편이 졸까봐 조수석에 앉아서 말을 시키고 목을 주무르며 부산을 떨면서도 장거리 운행하는 버스를 탈 때에는 '운전기사가 졸리겠다'거나 '좀이 쑤시고 허리가 아프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다. 내 머릿속엔 운전기사의 처지나 고단함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없었으므로. 춘천 시외버스 터미널의 진흥고속 운수노동자들의 투쟁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농성77일째, 철탑에 오르다
지난 7월 19일, 무더운 여름에 시작한 춘천 진흥고속 농성이 79일째 계속되고 있다. 세 달이 다 되어가도록 꿈쩍도 않는 회사 측에 맞서 77일째 되는 10월 3일 새벽, 김인철 지회장(49)이 홀로 조명탑에 올랐다. 사전에 발각되어 못 오르게 될까봐 어두운 새벽을 틈타 아슬아슬하게. 올려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 기둥에는 가로로 박힌 앙상한 발걸이만 띄엄띄엄 보인다.
이제는 땅 위의 농성장에서도 서늘한 밤기운에 몸을 떨며 잠이 드는 판에 하늘로 올라간 사람의 딱한 사정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와중에 농성이 장기화 될 것을 우려한 회사 측과 경찰은 밥을 못 올리게 하고 있다.
밥! 밥을 못 올리게 하다니! 함께 살자고 외치는 노동자에게, 일한만큼 나누어 먹겠다는 노동자에게 오리발을 내미는 것도 모자라 몽둥이를 드는 뻔뻔한 작태를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또 있을까. 언제까지 이 땅의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가.
이들의 요구는 '노조활동 보장'과 '사무실 제공'
진흥고속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알고 보면 너무도 소박하고 당연한 것이라 눈물이 날 지경이다. 법에도 보장된 '노조활동 보장'과 그를 위한 '사무실 제공'이 그것이다. 2011년 복수노조가 법적으로 허용된 이후, 진흥고속 노동자들은 강원도 버스업계에서 처음으로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기존 노조가 전체 노동자들의 권익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일부 간부들의 이익만 챙겨왔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위한 진짜 노동자 조직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 측과 싸우면서 2011년에 조합원 28명으로 시작했던 것이 현재 7명으로 줄어들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운전하는 기계가 아니다"
회사 측에서는 하루 평균 운전시간을 12시간으로 보고 그에 맞춰 임금을 지급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하루 12시간은 도로사정이 좋을 때의 얘기이고, 정체로 인해 하루에 운전시간만 17시간 이상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식사는커녕 화장실도 다녀오기 힘들 때도 많다.
게다가 차 정비·수리 시간, 주유하는 시간 등도 회사 측의 계산에는 빠져있다고 한다. 심한 경우 하루에 스무 시간 가까이 차와 씨름을 하고 집에서 자고 나오는 시간은 네댓 시간뿐이니 기계가 아닌 이상 피로와 졸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한 달 20일 기본근무만 해서는 생계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수당을 더 받기 위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한 달에 27~28일까지 무리해서 일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운전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는 운수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는 당연한 것이다.
운전기사가 피곤한 상태로 운전을 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들에게 가게 된다. 대형버스 사고의 대부분이 피로로 인한 졸음운전이라고 하니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민주노조 활동 보장은 노동자의 권익 실현과 고객 안전 보장의 시작"
김인철 지회장은 "회사가 임금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아까워 고용을 늘리지 않고 노동 강도를 높여서 버스를 굴리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적절하게 쉬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노조 사무실이 마련된다고 해서 회사 측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노동자들이 모여 서로의 처지를 공유하고, 개선책을 모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 마련은 매우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노조사무실 제공 자체가 회사에서 민주노조를 인정한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농성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철탑 뒤로 펼쳐진 쩡 하고 깨질 것 같은 쪽빛 하늘이 무시로 떠오른다. 파란 하늘빛만큼 가슴이 시린 풍경이다. 터미널을 이용하는 숱한 시민들이 눈과 귀를 조금만 곤두세워 철탑 위 노동자의 고단한 처지를 보아주고, 농성장의 신음소리를 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힘 있는 자들의 막힌 귀를 뚫을 수 있는 힘은 오직 우리에게 있기에.
▲ "복수노조 인정하고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하라" ⓒ 정주희
▲ 김인철 진흥고속 지회장의 조명탑 고공농성장기간의 천막농성에도 요지부동인 회사측을 상대로 10월 3일 새벽부터 조명탑 고공농성이 시작되었다. ⓒ 김설훈
농성77일째, 철탑에 오르다
지난 7월 19일, 무더운 여름에 시작한 춘천 진흥고속 농성이 79일째 계속되고 있다. 세 달이 다 되어가도록 꿈쩍도 않는 회사 측에 맞서 77일째 되는 10월 3일 새벽, 김인철 지회장(49)이 홀로 조명탑에 올랐다. 사전에 발각되어 못 오르게 될까봐 어두운 새벽을 틈타 아슬아슬하게. 올려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 기둥에는 가로로 박힌 앙상한 발걸이만 띄엄띄엄 보인다.
이제는 땅 위의 농성장에서도 서늘한 밤기운에 몸을 떨며 잠이 드는 판에 하늘로 올라간 사람의 딱한 사정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와중에 농성이 장기화 될 것을 우려한 회사 측과 경찰은 밥을 못 올리게 하고 있다.
밥! 밥을 못 올리게 하다니! 함께 살자고 외치는 노동자에게, 일한만큼 나누어 먹겠다는 노동자에게 오리발을 내미는 것도 모자라 몽둥이를 드는 뻔뻔한 작태를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또 있을까. 언제까지 이 땅의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가.
이들의 요구는 '노조활동 보장'과 '사무실 제공'
진흥고속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알고 보면 너무도 소박하고 당연한 것이라 눈물이 날 지경이다. 법에도 보장된 '노조활동 보장'과 그를 위한 '사무실 제공'이 그것이다. 2011년 복수노조가 법적으로 허용된 이후, 진흥고속 노동자들은 강원도 버스업계에서 처음으로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기존 노조가 전체 노동자들의 권익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일부 간부들의 이익만 챙겨왔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위한 진짜 노동자 조직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 측과 싸우면서 2011년에 조합원 28명으로 시작했던 것이 현재 7명으로 줄어들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운전하는 기계가 아니다"
회사 측에서는 하루 평균 운전시간을 12시간으로 보고 그에 맞춰 임금을 지급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하루 12시간은 도로사정이 좋을 때의 얘기이고, 정체로 인해 하루에 운전시간만 17시간 이상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식사는커녕 화장실도 다녀오기 힘들 때도 많다.
게다가 차 정비·수리 시간, 주유하는 시간 등도 회사 측의 계산에는 빠져있다고 한다. 심한 경우 하루에 스무 시간 가까이 차와 씨름을 하고 집에서 자고 나오는 시간은 네댓 시간뿐이니 기계가 아닌 이상 피로와 졸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한 달 20일 기본근무만 해서는 생계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수당을 더 받기 위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한 달에 27~28일까지 무리해서 일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운전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는 운수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는 당연한 것이다.
운전기사가 피곤한 상태로 운전을 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들에게 가게 된다. 대형버스 사고의 대부분이 피로로 인한 졸음운전이라고 하니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민주노조 활동 보장은 노동자의 권익 실현과 고객 안전 보장의 시작"
김인철 지회장은 "회사가 임금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아까워 고용을 늘리지 않고 노동 강도를 높여서 버스를 굴리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적절하게 쉬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의 활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노조 사무실이 마련된다고 해서 회사 측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노동자들이 모여 서로의 처지를 공유하고, 개선책을 모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 마련은 매우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노조사무실 제공 자체가 회사에서 민주노조를 인정한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농성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철탑 뒤로 펼쳐진 쩡 하고 깨질 것 같은 쪽빛 하늘이 무시로 떠오른다. 파란 하늘빛만큼 가슴이 시린 풍경이다. 터미널을 이용하는 숱한 시민들이 눈과 귀를 조금만 곤두세워 철탑 위 노동자의 고단한 처지를 보아주고, 농성장의 신음소리를 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힘 있는 자들의 막힌 귀를 뚫을 수 있는 힘은 오직 우리에게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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