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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찐빵집의 비밀, 드디어 알아냈다

[맛집 탐방] 군산 만두 찐빵계의 지존 '옛날 왕만두 찐빵'

등록|2013.10.06 15:04 수정|2013.10.07 12:55

▲ '옛날 왕만두 찐빵' 사장님이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든 만두와 찐빵이 먹음스럽게 쪄진 모습이다. 찐빵의 동그란 모습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 감탄한다. ⓒ 정은균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유월 유두나 칠월 백중 무렵이면 찐빵을 만드셨다. 어머니 표 찐빵 반죽에는 막걸리가 담뿍 들어갔다. 거친 단팥 소가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커다란 동부 콩이 듬성듬성 박힌 모양의 찐빵이었다. 동그랗게 빚은 빵을 가마솥에 넣어 장작불에 찌노라면 시큼하게 익어가는 냄새에 마음이 설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찐빵은 짜장면과 더불어 이른바 '추억의 음식' 목록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한 조리법 덕분에 손쉽게 만들어 먹고, 또 팔기도 해서였을까. 먹을 것이 흔치 않던 시절, 그나마 싼 밀가루로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요리여서 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새겨졌는지도 모르겠다.

유두와 백중 즈음에는 마음이 설레곤 했다. 막걸리와 동부 콩이 들어간 어머니표 찐빵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밀가루 포대를 머리에 이고 오시는 어머니를 맞기 위해 동생과 장마중을 나가 서성거리던 때도 있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며 조바심 속에서 빵이 익기를 기다리던 그때가 어제 일 같다. 그래서 내게는 찐빵이 짜장면보다 더 아련하게 다가온다.

▲ '옛날 왕만두 찐빵' 가게 사장님이 만두를 빚는 모습. 손놀림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날렵하시다. ⓒ 정은균


수년 전부터 찐빵을 파는 집이 유난히 많이 생겼다. 목 좋은 길섶이면 어김없이 들어서 있는 찐빵 집은 참 반가웠다. 찜통에서 김이 풍성하게 피어오르고, 찐빵을 사려는 사람은 찜통 앞에 서서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는 정겨운 풍경은 어디나 비슷했다. 사람들은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각자의 추억 속에 빠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대개 '추억의'나 '옛날'과 같은 수식어가 붙는 찐빵 집 상호는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하지만 '맛'보다는 '추억'만 팔아보려는 상술 탓일까. 길을 오가며 사 먹는 찐빵이며 만두를 파는 집에서 '추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유별난 내 성격 탓이겠지만, 기업화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파는 찐빵이나 만두는 더욱 그렇다. 길거리 빵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지 전만 하더라도 주인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 파는 집이 제법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빵집이 대세다. 골목 상권에 침입한 대기업 빵집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입소문 난 군산 '찐빵'... 방송 안 타는 이유

▲ '옛날 왕만두 찐빵' 가게 전경. 우리 집 '똥개' 세 마리가 가게 앞에서 놀고 있다. 소풍 가는 길이라 모두들 신이 나 있다. ⓒ 정은균


군산 구역전 사거리 근방에는 '옛날 왕만두 찐빵' 집이 있다. 이 집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구역전 시장 근방이라 김밥 같은 일반 분식도 취급한다. 하지만 이 집의 주 요리는 찐빵과 만두다.

광주 사시는 장인 어른께서는 찐빵을 좋아하신다. 장인 어른은 군산에 오시면 꼭 이 집 찜빵을 찾으신다. 그 사실을 잘 아는지라 장인, 장모님께서 군산에 오시면 찐빵과 만두를 한 봉지 사 들고 들어간다. 장인 어른이 찐빵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흡족하다. 입이 짧은 아내조차 이 집 만두와 김밥을 좋아한다. 나는 이 집의 만두, 찐빵, 김밥 모두가 좋다!

아이들과 소풍을 가기로 한 오늘, 오랫동안 벼르던 일을 했다. '옛날 왕만두 찐빵' 집 사장님과 하는 인터뷰가 그것. 원래는 9월 초에 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입 수시 전형 등으로 바쁜 학교 일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오늘 소풍 핑계로 간식거리 살 일도 있고 해서 시간을 낸 것이다.

어렵게 따 낸 인터뷰였다. 사장님 말씀을 들으니 방송과 신문에서 몇 번 섭외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만큼 맛으로 입소문이 나 있는 곳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장님은 방송을 하면서까지 요란하게(?) 장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다.

▲ '옛날 왕만두 찐빵' 사장님이 일하시는 모습. 연세가 63세이신데도 동안이시다. 욕심 내지 않고 편하게 사시는 게 동안 비결 아니냐며 묻자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셨다. 인터뷰 내내 가게에서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노는데도 만두를 챙겨 주시고, 녀석들이 밖으로 나갈 때는 조심하라며 일일이 당부하시는 다정다감한 분이시다. ⓒ 정은균


"나이가 올해 63이에요. 아이들(남매를 두셨다고 한다) 부지런히 키워 눈 떠 보니 어느새 이렇게 돼 버렸네. 그런데 일이 힘들어요. 아침 아홉 시 반에 문을 열어 꼬박 열두 시간을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예전에는 새벽 한 시까지 일할 때도 있었는데···."

방송을 타게 되면 분명 손님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러면 돈도 벌고, 여차하면 가게 규모도 키울 수 있을 테니 좋지 않을까.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별로 그러고 싶어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사장님께서는 나름의 가게 운영 철학을 분명히 갖고 계셨다.

"좋은 음식 만드는 데 신경 쓰고, 손님 많은 것 바라기보다 내 형편껏(사장님과 사모님, 일하시는 아주머니 세 분이서 일하신다) 만들어 파는 게 중요하지. 방송 인터뷰 같은 건 내가 싫어. 그냥 이대로 가게 운영하는 게 좋아. 솔직히 단체 주문도 별로야. 힘이 부치니까. 오래 했고, 이제는 나이도 차서 말이야."

1992년부터 가게를 시작했으니 21년째라고 하신다. 아득한 시간이다. 그 이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 여쭤봤다. 놀랍게도 양복점 일을 하셨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 라사' 식의 이름이 붙은 양복점 집이 정말 많았다. 대형 의류회사에서 만들어내는 기성복이 보편화하기 전이라 나름대로 수지를 맞출 수 있던 시절이었다.

"양복점 일을 한 십여 년 했어. 그런데 하향 길에 접어들었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인이 기술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잖아. 양화점도 그랬고."

정말 그랬다. 옛날에는 양복점, 양화점은 물론이고 전파상이나 천막집, 인테리어 가게 등 전문 기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을 꾸려가는 자영업자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자영 기술자들은 기업체들이 주도하는 규모의 경제에 눌려 또 다른 업종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요식업종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마침 서울 처가가 분식집을 하고 있었어. 만두를 주로 만들어 팔았지. 처음에 처가 도움도 받았지만,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어. 만두에 들어가는 야채와 고기를 조리하는 데 특히 신경을 많이 썼지. 군산에 만두집이 별로 없어서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

▲ '옛날 왕만두 찐빵' 집 사모님 모습. 김밥을 정말 맛있게 만드신다. 분식 집을 한 친정 어른들의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으신 덕분이리라. ⓒ 정은균


사장님께서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드시는 만두와 찐빵 맛은 일품이다. 만두는 풍성하게 들어간 소를 씹는 맛이 좋다. 신선한 야채와 고기, 당면 등이 어우러진 소를 씹으면 적당히 아삭거리는 맛이 풍미를 더한다. 만두 피에 채 썬 당근과 부추를 넣은 것도 사장님만의 특별한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찐빵은 그 부드러움이 말할 수 없이 좋다.

"만두나 찐빵은 간을 잘 하는 게 중요해. 속에 들어가는 것도 재료를 직접 사서 조리해 넣지. 찐빵은 발효 숙성을 잘 해야 하고. 요즘에는 편하게 숙성 기계로 하는 데도 많은데, 우리는 자연 숙성 방법을 써. 더운 여름에는 그냥 실온에서 하고, 겨울에는 난로 위에서 20여 분 간 하지."

나는 찐빵도 발효 숙성을 하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반죽을 발효 숙성시키면 빵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밀가루 반죽에 막걸리를 넣으신 것도 숙성을 위한 것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손님들 중에는 찐빵을 직접 가져가서 쪄서 먹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불이나 온도 조절, 찌는 시간 등을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너무 찌면 오그라들고, 그렇지 않으면 빵이 퍽퍽해지는 문제 등이 생긴다.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나 인상적인 손님에 대해 말씀해 주시라고 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와 찐빵을 사 먹고, 훗날 결혼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옛날 맛을 잊지 못해 왔다고 말하는 이들을 소개해 주셨다. 딱히 누구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 만큼 제법 많다는 어조시다. 그 말을 담담히 전하는 사장님의 목소리에 자부심 같은 것이 묻어났다. 맛집 소개하는 방송을 보면, 사장님들의 '포스'가 바로 이런 데서 느껴지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가게를 언제까지 꾸려가실 생각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꿈이나 계획은 무엇인지 등을 여쭈었다. 사장님께서는 힘 닿는 데까지는 계속 하겠다고 하셨다. 건강히 살고, '먹는 욕심'(재물이나 돈에 대한 욕심을, 사장님께서는 특이하게도 이렇게 표현하셨다) 갖지 않고 소박하게 장사해 나가는 것이 바람이라고도 하셨다. 그런 말씀 중에 하신 한 마디가 내내 귓전에 남았다.

"고생만 안 하면 좋겠다."

'고생'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면 '고생만 안 하면 좋겠다'는 사장님의 바람은 과한 욕심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서민들의 삶에 '고생'이 떠날 날이 없는 세상이다. 가망 없는 욕심 때문에 생기는 '고생'이 아니다. 그것은, 가령 사장님처럼 하루 열두 시간을 부지런히 일하고도 보람을 찾기 힘든 데서 오는 박탈감 같은 것이다. 희망을 갖고 살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지 않은가.

▲ '옛날 만두 찐빵' 집 가게 전경. 구역전 사거리 근방이어서 찾기도 쉽다. ⓒ 정은균


그래도 '옛날 왕만두 찐빵' 사장님은 대단하시다. 만두와 찐빵 하나로 이십여 년을 버텨오신 게 어디 만만한 내공인가. 그 저력으로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진짜 '옛날'의 추억을 많이 전해주기를 진심으로 빈다.

뜨거운 만두와 따끈따끈한 찐빵이 그리운 계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빵집이 있는 군산에 오거든, 군산에서 가장 오래 된 찐빵 만두 집 '옛날 왕만두 찐빵' 집을 찾아보기 바란다. 부드러운 찐빵과 아삭아삭 씹히는 만두 맛에 감탄성이 일 것이다. 힘든 세상, 그 진짜 '추억'의 맛으로 힘을 얻으리라 장담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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