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끝난 지 일 주일... 수원 행궁동엔 차가 빼곡하다
2013 수원 생태교통축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 축제는 미래를 위한 배려생태교통 축제를 상징하는 자전거 상징물에도 꽃이 가득 피었다. 저 꽃이 피었다가 다시지면 씨앗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세상에 뿌려질 것이다. 미래에 대한 배려가 담긴 것이 진정한 축제다. ⓒ 최형국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축제의 계절이다. 축제(祝祭), 말 그대로 축하하며 기원을 담아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시공간이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풍요로움을 신과 함께 공유하고 풀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그런 풍요로움과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염원이 담겨 있다.
2013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수많은 명패를 달고 축제가 펼쳐진다. 먹을거리는 기본이고 수많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축제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 축제들이 끝나면 휴지처럼 버려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서로 비슷비슷한 성격이나 주제의 축제가 범람하면서 오늘의 축제는 규격화됐다. 낮에는 연예인들이 무대를 장악하고, 밤에는 아무 관계 없는 야시장이 불야성을 이룬다. 미래는 내팽개쳐 두고, 오직 오늘 하루에 모든 것을 걸어 축제의 흥행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 9월 한 달간 경기도 수원 행궁동 일원에서 진행된 세계 최초의 차 없는 삶 체험, 2013 생태교통페스티벌이 새로운 형태의 축제로 시도되었다. 오직 미래를 위해 오늘의 불편을 감수해 보는 조금은 '바보' 같은 축제였다. 그러나 그 바보스러움 안에는 미래를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 그 축제에는 미래를 위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2013 생태교통페스티벌, 새로운 희망의 씨앗
▲ 화성의 서장대를 향하는 자전거꽃을 피운 자전거는 수원 화성의 핵심 방어시설인 서장대를 향한다. 18세기 정조시대 화성을 축성했던 정조임금님의 백성에 대한 배려가 가득 담긴 곳이 바로 이곳 수원 화성이다. 그러하기에 수원 화성 성곽 안에서 펼쳐진 2013 생태교통축제는 더욱 의미가 깊다. ⓒ 최형국
이번 축제 화두는 자동차 없는 지속 가능한 생활 영위 정도로 보면 좋을 듯하다. ICLEI(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 오토 짐머만 도시의제 의장도 "한 달간 생태교통 생활 체험을 한 수원시와 행궁동 주민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며 "현재 세계의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한번쯤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라고 하며 새로운 시도에 의미를 부여했다.
생태교통축제의 핵심은 '지속 가능'이었다. 바로 그 안에 미래를 위한 배려가 담겨 있다. 한 달간의 자전거 세상에서 단 일주일 만에 자동차가 무단 점거한 이곳에서 지속 가능을 말하기에는 참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하다.
막 내린 지 일 주일... 다시 그 거리에는 차가 빼곡하다
▲ 생태교통마을의 입구생태교통축제의 입구를 알리는 조형물에는 ‘마을’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바로 마을공동체가 함께 풀어가야 진정한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래는 그렇게 개인의 힘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고 모두 함께 짊어지고 나아가야 한다. ⓒ 최형국
석유 없이 지속 가능한 생활이 현재 우리가 살고 이 땅에서 가능할까? 이미 자동차의 노예 아닌 노예가 되어 버린 우리의 모습 속에서 석유를 비롯한 지하 에너지원은 삶의 존폐와도 직결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멀리 와 버린 것인가. 오직 하나, 불편을 감수하고 불편을 즐겨야만 그 지속 가능한 생활이 가능하다.
지속 가능은 단순히 교통수단에서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식량, 지속 가능한 인구, 지속 가능한 환경, 지속 가능한 거주.
지금 우리가 영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미래 아이들의 관점을 보면 거대한 소비 덩어리로 보여질 것이다. 내 삶 속의 작은 부분에서 그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하나씩 풀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을공동체라는 조직적인 틀과 연계된다면 또 다른 작은 축제들이 매일 그곳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펼쳐질 것이다.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한 구간을 영구히 차량통제를 가하거나 일정 구역을 과감히 허물어 도심형 논밭으로 바꾸고 텃밭의 수준을 자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한 수준까지 확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공존해야만 풀어갈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우리 삶의 방식과 공존할 수 있는 틀 거리를 만들고 매일매일 시험해야 한다.
손길과 숨길의 접촉에서 키보드를 통한 접속으로
▲ 차 없는 거리에서 차만 있는 거리로생태교통축제 이후 일주일, 자전거가 자유롭게 다니던 거리는 다시 자동차가 점령했다.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 최형국
인류가 직립보행이라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얻은 두 손의 자유로움은 바로 그런 멈추지 않는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두 손의 자유로움을 통해 '호모 파베르'라 하는 도구의 인간이 비로소 역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후 도구를 통한 능률의 향상은 여유시간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게 된다. 이것이 '호모 루덴스', 유희적 인간의 배경이다. 늘 맹수에게 쫓기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급급했던 하루라는 시간이 나와 다는 사람과 생존이 아닌 다른 의미로 교감하는 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의 인간은 그들이 만든 도구인 자동차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갇혀 거꾸로 된 하루를 보낸다. 사람의 숨결과 손길을 느끼는 접촉적 인간에서 핸들과 키보드를 통해 만나는 접속적 인간으로 변화해 갔다. 도구의 과도한 발달이 오히려 인류를 퇴보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언제나 마지막 희망은 사람이다. 그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는 것 또한 사람이다. 지금 시도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엉켜버린 절망의 실타래를 풀지 못해 괴로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 하늘을 나는 자전거축제 거리의 한 면을 채우고 있는 벽화.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ET의 한 장면. 그렇게 자유로운 공간을 꿈꾸게 해준 축제가 이제 막을 내렸다. 외계생명체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시도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 ⓒ 최형국
덧붙이는 글
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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