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우도 주방장의 손, 보통 사람과는 다르네요

우도에서 만난 맛... 삶의 깊은 맛이 납니다

등록|2013.10.08 16:01 수정|2013.10.08 16:01

식당키다리아저씨와 일류 요리사가 함께 운영하는 우도 맛집입니다. 우도봉 오르는 길 옆에 있습니다. ⓒ 황주찬


우도봉 아래 작은 식당에서 주방장을 만났습니다. 그가 반갑게 손을 내밉니다. 얼떨결에 손을 잡았는데 뭉툭한 손바닥만 잡힙니다. 잠시 당황했습니다. 그 주방장은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는 일식을 전문으로 요리했는데 우도에서 아는 동생과 조그만 식당을 차렸다고 했습니다.

그와 손을 잡는 순간 제 몸이 굳어지더군요. 솔직히 낯선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죠. 맞잡은 손이 떨어질 때 그의 손을 힐끗 쳐다봤더니 다섯 손가락이 모두 없었습니다.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손으로 요리를 합니다. 참 대단하고 놀랍습니다.

남들이 열 손가락으로 요리할 때 다섯 손가락과 뭉툭한 손바닥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니 말입니다. 그가 내놓은 음식 맛은 어떨까요? 긴 말 필요 없습니다. 맛있습니다. 때문에 음식에 값싼 동정 따위 비집고 들어설 곳은 없습니다. 맛에 관한 한 그는 누구보다 철저하니까요.

우도 가는 길한라산 백록담에 오른 후에도 아이들은 멀쩡합니다. ⓒ 황주찬


음식에 그의 성격이 담겨 있더군요. 그는 동생과 '키다리 아저씨'라는 예쁜 식당을 운영하는데 음식은 딱 두 가지만 내놓습니다. 이름도 특이한데 '전복 품은 돈가스'와 '백짬뽕'입니다. 지난 9월 20일 오후, 추석 다음날입니다. 한라산 백록담에 오른 후 기진맥진한 몸을 끌고 우도에 스며들었습니다.

몇 달 전 사귄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운데 지인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숙소에 짐 풀고 한달음에 바닷가로 달렸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털털거리는 낡은 트럭 뒤에서 애들과 괴성을 지르며 바닷가를 질주한 거죠.

트럭키다리 아저씨가 몰고 다니는 트럭입니다. 털털거리는 낡은 트럭 뒤에서 애들과 괴성을 지르며 바닷가를 질주했습니다. ⓒ 황주찬


낡은 트럭 뒤에서 바라본 일몰, 색다른 느낌

누군가 봤으면 틀림없이 철딱서니 없는 아빠와 아이들이 소란 피운다며 퉁 놓았겠지요. 하지만 다행히 그곳을 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맘껏 소리치며 우도 일몰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서빈백사' 해변에 닿았습니다. 바닷가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은 숙소로 고이(?) 모셨습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저만의 시간을 보내려고요. 세 아들과 아내를 숙소에 밀어 넣고 파도가 부서지는 시원한 바다로 다시 나왔습니다. 어스름 내린 곳에 방어회를 기막히게 썰어주는 횟집 주인과 한라산을 닮은 비빔밥을 만들어 내는 식당 주인이 통닭 두 마리를 시켜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가족을 위해 낡은 트럭을 몰아준 지인도 함께 모였지요. 그곳에서 밤 깊도록 맛있는 대화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뜨거운(?) 우도의 밤을 보낸 다음날, 조용히 아침이 밝습니다. 창문을 살며시 여니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숙소와 가까운 비양도에서 부지런한 제비들이 돌담 위를 스치듯 날아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우도올레펜션우도올레펜션은 비양도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아침에 부지런 떨면 비양도 구경도 가능합니다. ⓒ 황주찬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퍼뜩 정신이 듭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아침이 너무 늦었거든요. 오늘은 여유 부리며 우도봉에 올라도 되지만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우도봉 주변 올레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단잠에 빠진 가족을 깨워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늦은 아침을 챙겨 먹으러 우도봉을 오르는 길에 있는 '키다리 아저씨'가 운영하는 우도 맛집에 들렀습니다. 낡은 트럭 주인인 키다리 아저씨와 일식 요리사가 동업하고 있는 식당인데 간판이 간단합니다. 별다른 설명은 없고 '키다리 아저씨'라는 글씨만 보입니다. 낡은 트럭 주인의 별명을 상호로 썼습니다.

뿔소라섬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만 사용합니다. 국물 맛이 시원하더군요. ⓒ 황주찬


전복 품은 돈가스돈가스에 섬 특성 살려 전복을 넣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빛납니다. 식감 떨어지는 음식은 내놓지 않습니다. ⓒ 황주찬


보통사람 손과 다른 느낌, 달인의 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키다리 아저씨와 동업하는 주방장을 만났습니다. 손님 맞을 준비로 아침 때를 놓친 주방장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 소개로 주방장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악수를 청하기에 냉큼 손을 잡았는데 조금(?) 긴장되더군요. 보통 사람 손과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애써 긴장한 모습을 감췄지만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방장의 얼굴은 환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보기 좋았습니다. 누구보다 자신 있게 삶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요리사로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전복돈가스 속에 숨은 전복을 찾아 먹는 맛이 색다릅니다. ⓒ 황주찬


백짬뽕싱싱한 해산물이 가득 든 백짬뽕입니다. 국물 맛이 시원합니다. ⓒ 황주찬


키다리 아저씨 말을 들으니, 음식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답니다. 식당 주 메뉴인 '전복 품은 돈가스'는 딱 내놓을 양만 전날에 만든답니다. 섬의 특성을 살려서 만든 '전복을 넣은 돈가스'인데 많이 만들지 않는답니다. 자칫 식당에 든 손님이 적어 돈가스가 남으면 어쩔 수 없이 이틀 지난 음식을 내놓게 되는데 그러면  돈가스 식감이 떨어져 맛이 없답니다.

하여, 그날 내놓을 음식은 꼭 전날에 모든 직원들이 모여 직접 만든답니다. 더 만들자고 졸라도 소용없답니다. '백짬뽕'도 섬에서 갓 잡아 올린 해산물만 쓴답니다. 적당히 재료를 넣어도 되련만 직접 장을 봐 싱싱한 해산물만 음식에 집어 넣는답니다. 그 때문일까요. 국물 맛이 시원하더군요.

우도봉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도봉을 찾았습니다. ⓒ 황주찬


우도와 소우도에서 소 한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 황주찬


말달리자막내가 우도 땅에 발목 잡힌 적토마를 타고 있습니다. ⓒ 황주찬


한라산 엉겅퀴와 식당 주방장의 삶, 많이 닮았네요

음식 한 번 고집스럽게 만드네요. 때문에 동업하는 동생과 가끔 티격태격 다툰답니다. 이왕이면 많이 밀려 올 손님들을 생각해서 돈가스와 백짬뽕 재료를 넉넉히 만들자고 싸우지만 동생이 매번 진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지는 싸움이 싫지 않은 듯합니다.

주방장이 만든 수제 돈가스를 맛보려고 제주도에서 이곳까지 물어물어 사람이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배부른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게지요.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주방장을 만나고 우도봉에 올랐습니다. 바람 부는 우도봉에 섰더니 식당에서 만난 주방장과 한라산 백록담에서 본 가시 질긴 엉겅퀴가 동시에 떠오릅니다.

모진 바람 부는 한라산 꼭대기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아름다운 꽃을 피운 엉겅퀴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멋진 요리사가 되려고 모진 세월을 이겨낸 우도봉 아래 식당 주방장이 많이 닮아 보였습니다. 그날 저는 우도에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멋진 요리사를 만났습니다.

한쪽 손이 저와 다른 요리사가 제게 보이지 않는 말을 건넸습니다. 때로는 지쳐 스러져도 잡초처럼 벌떡 일어나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리라고 말이죠. 그는 자신이 정한 목표를 우도봉 아래에서 소박하게 꽃 피우고 있었습니다.

엉겅퀴한라산 꼭대기에 핀 엉겅퀴입니다. 모진 바람이 불어대는 곳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 황주찬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