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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전후 한일 두 나라 운명을 손아귀에 쥐다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 특집] 맥아더기념관의 사진들①

등록|2013.10.10 14:57 수정|2013.10.10 14:57
현재 내가 연재하고 있는 장편소설 <어떤 약속> 애독자 가운데 몇 분이 소설 못지않게 컷으로 들어간 한국전쟁 관련 사진에 관심이 많다고 찬사를 보내주셨다. 그분들은 이 소설에 컷으로 실린 사진은 대부분 이전에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소설과는 별도로 더 많은 사진을 보고 싶다고 이를 따로 모아 보도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마침 금주 초부터 연재소설에 맥아더기념관이 배경으로 나온다. 나는 이에 맞춰 연재소설과는 별도로 맥아더기념관에 소장된 한국관련 사진 가운데 사료가 될 만한 것을 골라 특집 '맥아더기념관의 사진들'이라는 제목으로 4~5차례 나눠 공개하고자 한다. 

맥아더기념관은 미국 버지니아 주 남쪽 항구도시 노퍽(Norfolk)에 있다. 나는 이곳을 2004년 2월 25일과 2007년 3월 6일 두 차례 탐방하여 한국전쟁 관련 사진 중심으로 수집해 왔다. 1차 방문 때에는 재미사학자 고 이도영 박사가 안내해주셨고, 2차 방문 때에는 박유종(임정 박은식 대통령 손자) 선생이 안내해주셨다. 지난해에 돌아가신 제주 출신 고 이도영 박사의 명복을 삼가 이 자리를 빌려 빈다.  - 기자의 말

▲ 파이프를 물고 망중한을 즐기는 맥아더 미 극동사령관(일본, 1945.8. 30).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1945년 당시 맥아더는 일본 주둔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그때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화려했던 전성기였다. 1945년 9월 2일, 도쿄만 미조리 호 함상에서 일본대표의 항복문서를 받은 뒤 군국주의자 제거, 일본군 해산, 자유헌법 기초 등의 사회개혁과 일본 히로히토의 왕권 계승 등 주도하였는가 하면, 신생 대한민국 건국에도 막후조정자 역할을 담당했다.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서 귀국할 때 도쿄에 일주일간 머무르면서 맥아더의 극히 이례적인 환대를 받았다. 1945년 10월 16일, 맥아더는 자기 전용기를 태워 이승만을 귀국시켰다. 그 장면을 목격한 권력 추종자들은 일시에 이승만에게로 쏠렸다. 2차세계대전 후 이 시기 맥아더는 한일 두 나라의 운명을 그의 손아귀에 넣고 있을 만큼 막강했다.

▲ 미 미조리 함상에서 일본대표로 시게미스 마모루 외무대신에 이어 우메스 미치로 육군참모총장이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 광경을 맥아더 미 극동사령관이 지켜보고 있다(도쿄, 1945. 9. 2.).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 미 미조리 함상에서 일본의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맥아더 미 극동사령관(도쿄, 1945. 9. 2.).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 맥아더를 찾아온 일왕 히로히토의 부동 자세(도쿄, 1945. 10.).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장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가운데, 오른쪽 이승만 대통령, 왼쪽 하지 주한 미 사령관. 1948. 8. 15.)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장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1948. 8. 15.).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장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1948. 8. 15.).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여 양국 국기에 경례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1950. 2. 16.).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 도쿄 하네다 공항 출발에 앞서 양국 국기에 경례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1950. 2. 18.).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곧장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날아왔다. 맥아더 장군이 그를 맞이하고 있다(1950. 6. 27.). ⓒ 맥아더기념관,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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