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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복원사업 '고종의 길', 미국측 비협조로 '지지부진'

[단독] 미국측 늑장 회신에 근 1년 허비... 연내 완공 계획 차질

등록|2013.10.10 16:51 수정|2013.10.10 21:42

'고종의 길' 복원계획도문화재청이 덕수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 중구 정동 옛 경기여고 터에서 추진중인 '고종의 길'(아관파천길) 복원사업이 미국 대사관측의 비협조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덕수궁 복원사업 목적으로 서울시 중구 정동 옛 경기여고 터에서 추진 중인 '고종의 길'(이른바 아관파천길) 복원사업이 미국 대사관 측 비협조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종의 길'은 을미사변 이후 일본으로부터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년 2월 11일 러시아 대사관으로 몸을 피한 '아관파천' 당시 이용했던 길로, 옛 경기여고터와 미 대사관저 및 미 대사관 직원 숙소 사이에 있던 길을 말한다.

'고종의 길' 복원 사업의 내용은 이 길을 끼고 있는 미국 정부 소유 주한 미국대사관저 및 대사관 직원숙소의 북측 벽 약 130m를 우리 전통 양식대로 지어주는 것이다.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큰 사업이지만, 토목 기술적으로는 매우 간단하기에 문화재청은 지난 2011년 4월 미국과 '경계벽 설치에 관한 합의'를 체결한 이후 당초 올해 안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기홍 민주당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연내 완공은커녕 착공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며, 이는 미국이 경계벽 설계도면의 승인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미루고 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미 측, 단 한 차례 현장 실사도 없이 늑장 회신

미국은 문화재청이 지난해 11월에 제출한 설계도면에 대해 올 4월에야 1차 회신을 해왔다. 이것도 문화재 복원 사업 지연을 우려하는 문화재청장의 독촉을 받은 다음이다. 이어 우리 측은 미국의 요청을 수용한 2차 설계도를 6월 24일에 다시 제출했으나, 미국은 당초 8월 안에 회신하기로 약속한 검토결과를 지난 9월 27일에야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그동안 설계 검토를 맡은 미 국무부 재외공관관리국(Bureau of Overseas Buildings operation)은 단 한 차례의 현장 실사도 없이 오로지 우리 측이 제출한 설계도면만 가지고 검토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제 펜스 설치를 요구하는 미국 측 설계 검토서미국 측은 '고종의길' 복원 사업의 핵심인 전통양식의 돌담길을 철제 펜스로 가리도록 요구하여 한국 측과 갈등을 빚었다. ⓒ 문화재청


미국은 우리 측의 설계 검토 요청에 매번 늑장 회신을 보내는 한편, 그 과정에서 대사관저 보안을 명목으로 전통 돌담 양식의 새 경계벽 일부를 철제 펜스로 가려야 한다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해 문화재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8일 또다시 수정안을 미측에 제시하고 오는 18일까지 미국의 회신을 받은 후 경계벽 공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전망은 밝지 않다. 지난 1년간 미국 정부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약속한 기한 내에 별다른 요구 없이 승인을 낼지 확실치 않고, 동절기에 접어들면 사실상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유기홍 의원은 "덕수궁 복원사업은 2000년대 초 우리의 소중한 사적지 위에 미 대사관을 신축하겠다는 미국의 계획을 국민적 반대운동으로 무산시킨 데서 시작한 것"이라며 "미국은 문화재에 대한 한국민들의 애정과 자부심을 고려하여 덕수궁 복원 사업의 조속한 완공을 위해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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