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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있고 없고... 밀양 송전탑 경찰은 '천양지차'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침해 중단하라"... 경찰 "주민 고립시키지 않았다"

등록|2013.10.11 12:34 수정|2013.10.11 12:34
"밀양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 중단하라."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등으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변호사 등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1일부터 밀양 공사 현장에서 조끼를 입고 활동하고 있다.

이들 활동가들 눈에 비친 밀양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최근 이들이 몇 차례 걸쳐 내놓은 의견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민 일상을 불안 초조로 내모는 게 인권침해"

▲ 8일 밀양에는 비가 내리는 속에 한국전력공사는 송전탑 공사를 계속하고, 주민들은 곳곳에서 농성하면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윤성효


먼저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주민들의 일상을 불안 초조로 내모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 주장했다. 이들은 "농번기 수확철에 다시 시작된 공사를 막기 위해 농민으로서의 일상을 포기하고 다시 산에 오를 수밖에 없고 길바닥에 내몰리고 있다"며 "언제 어떻게 공권력이 투입되고 어디서 기계가 들어올지 모르는 초조한 상황 속에서 주민들은 극심한 불안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은 "주민들은 산 속에서 노숙농성을 하거나 하루 종일 경찰에 둘러싸여 고립과 채증 등의 폭력을 겪고 있다"며 "경찰들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공무집행이라 주장하지만, 정작 지키는 것은 신속한 공사 재개일 뿐"이라고 밝혔다.

일례로 지난 1~2일 사이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89번 철탑 현장 부근인 밀양시 상동면 바드리마을 농성·대치 현장을 감시한 활동가들은 "주민들의 통행과 물품 반입이 제한됐다, 경찰이 주민들을 막무가내로 밀어냈다, 그 중에는 마스크를 쓰고 식별 표식을 가린 경찰도 있었다"고 보고했다.

또 활동가들은 "2일 새벽 경찰 저지선에 가로 막힌 주민들이 추위에 떨며 산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경찰이 근무 교대를 명목으로 들이닥쳤다"며 "어두컴컴한 새벽에 갑작스러운 경찰의 등장에 주민들은 두려움을 느꼈고 항의했다"고 설명했다.

"채증하면서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 유발"

▲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지 엿새째인 7일 낮 12시경 주민들이 밀양시 단장면 단장리 소재 '송전선로 공사장비 적치장' 앞에서 농성하면서 '복면 경찰'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윤성효


밀양시 단장면 단장리 소재 공사장비 적치장 앞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는 헬기로 공사장비를 이곳으로 실어다 날랐는데 이곳에는 지난해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움막 농성장도 있다. 또한 농성장을 철거하려는 밀양시청이 행정대집행을 여러 차례 시도해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인권단체에 따르면, 지난 2일 한 아주머니가 헬기가 계속 뜨고 내리자 항의의 뜻으로 도로 바닥에 드러누웠는데, "갑자기 경찰이 달려들어 시위대와 대치했다, 아주머니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 없이 '이 사람, 구급차로 가야 한다'고 경찰이 말했다, 또 경찰이 시위대를 채증하면서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 상황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인권 활동가들은 경찰이 채증 과정에서 기자를 사칭했다고 주장했다. 활동가들은 "시위대 쪽에 있던 한 여성이 캠코더로 촬영을 해 기자인지 확인을 요청하자 그 여성은 '기자증을 가져 오지 않았다'며 'ㅇㅇ신문 윤ㅇㅇ 기자'라 말했다"며 "그런데 이후 그 여성은 공사장비 적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격됐다, 신문사에 확인해 보니 그런 이름을 가진 기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사복 경찰이 스마트폰으로도 채증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권 활동가들은 "사복경찰이 개인 스마트폰으로 주민들과 시위대를 채증했는데, 별도로 채증 담당 경찰이 있는 상황에서 경찰 장비가 아닌 개인 스마트폰으로 채증했다"며 "감시단에서 문제를 제기해 잠시 중단했지만 다시 반복됐다"고 밝혔다.

"주민 3명 산 속에서 길 잃어 7시간 헤매"

여기에 126번 철탑 현장 아래 농성장 사례도 있었다. 이곳은 주로 상동면 여수·도방·금호마을에서 올라온 주민들이 산 속에서 밤을 새우며 농성하고 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2일 식사와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고, 주민들은 이 날 한 끼 정도 겨우 먹었다, 주민들이 천막을 쳤으나 경찰이 바로 철거해 가버렸다"고 밝혔다. 경찰은 천막을 이틀 뒤인 4일 돌려줬다.

또 경찰이 도로·임도와 등산로를 막고 있어 주민들이 길도 없는 산을 헤쳐 가면서 농성장에 올라 안전이 염려된다고 주장도 나왔다. 인권 활동가들은 "지난 3일 새벽 4시경 여수마을에서 출발한 여성 3명이 산에서 길을 잃어 7시간 이상 헤매다가 겨우 주민들에 의해 구조됐다"며 "주민들은 통행로가 완전히 금지된 상황이어서 길도 없는 산 속으로 가야 했다"고 밝혔다.

인권 활동가들은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언론사 카메라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경찰의 태도가 매우 다르다"며 "카메라가 없으면 '다 연행해' '끝까지 밀어버려' 등 주민들을 강압적으로 대하고, 할머니들이 몸싸움을 하다가 쉴 때면 '수고하셨습니다'는 등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며 약을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행 제한도 문제를 삼았다. 이들은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 막혀서 고령의 주민들이 길도 없는 산을 3시간 정도 걸려 현장과 마을을 오가고 있다"며 "제대로 된 산길도 아니어서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등 매우 위험하며, 통행이 극심하게 제한된 상황에서 휴대전화 배터리 부족으로 외부와 연락마저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활동가들은 "지난 5일 새벽에는 주민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마련한 장작을 탈핵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흉기로 사용할 수 있다며 경찰이 빼앗아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전 시공업체 사장이 주민들에게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핸드폰에서 나오는 전자파보다 적다'는 말을 해 주민들의 반발과 거센 항의를 받았고, 주민들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크게 분노했다"고 밝혔다.

인권 활동가들은 "경찰은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있다며 모든 안전조치를 취한 듯하고 있으나 이것은 안전을 위한 예방조치가 아니라 주민들이 쓰러지면 병원으로 이송을 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위험발생 요인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없이 사후조치만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 3일부터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 장비와 인력이 공사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산 임도에서 철야 농성한 가운데, 4일 오전 다른 주민들이 합류하기 위해 올라가려고 했지만 경찰에 막혀 가지 못하고 있다. ⓒ 윤성효


인권운동사랑방 유성 활동가는 "단식 농성 중이던 50대 여성들이 그냥 산의 맨 흙바닥 위에 깔개를 한 장 놓고 담요만 덮고 누워 있었는데, 조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무장한 경찰이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경찰이 주민들만 있을 때는 먹을 것도 안 들여 보내주더니 국회의원이 오니까 조건을 붙여 넣어준 것이 어르신들께는 상처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경찰 "처음에 얼굴 탄다고 마스크 쓴 것"

이러한 인권단체 지적에 대해 경찰은 입장이 다르다. 먼저 마스크 착용에 대해,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처음에 젊은 사람들이 얼굴이 탄다고 해서 마스크를 쓴 것이지 진압 차원은 아니었다"면서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다"고 밝혔다.

인권 침해 주장에 대해,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조사를 했는데 특별한 인권침해 사례가 없다고 봤다, 주민들을 고립시킨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또 사복 경찰의 스마트폰 채증에 대해서는 "사복 경찰도 아무 장비로도 채증할 수 있고 개인 스마트폰으로 촬영해도 된다"고 밝혔다.

기자 사칭 주장에 대해 경찰은 "정확히 어느 경찰관이 그렇게 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여경이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며 "앞으로 교육을 확실하게 하고, 현장에서는 모두 경찰 신분증을 착용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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