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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끝에 가보지 않고 어찌 '가운데'를 말하랴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37] 가운데 중(中)

등록|2013.10.12 10:51 수정|2014.05.07 10:15

가운데 중(中)처럼 간단한 글자이면서 생성에 대한 이설(異說)이 분분한 한자도 드물다. ⓒ 김대오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을 경험한 중국인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槍打出頭鳥, 머리를 내민 새가 총 맞는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위간인(圍看人, wěikànrén, 둘러싸고 보기만 하고 있는 사람), 주변인의 철학을 일찍부터 몸에 장착한 듯하다. 

공자가 일찍이 주장한 중용지도(中庸之道)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양극으로 달리는 사고와 행동의 합일점, 정반합(正反合)의 타협점으로서의 중간 혹은 가운데인 '중(中)'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타당하고, 무한한 설득력을 지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중용'이라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나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험준한 지점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운데 중(中, zhōng)처럼 간단한 글자이면서 생성에 대한 이설(異說)이 분분한 한자도 드물다. 뚫을 곤(丨)은 보통 '긴 장대'의 상형으로 보는 것에 이견이 없지만, '口'에 대한 해석은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해 설치한 표시판에서부터 장대의 그림자를 이용해 해시계로 활용하기 위한 나무틀, 해 '日'의 변형 형태 등 다양한 주장이 난립한다. 마을의 한 가운데 세운 깃발에서 '가운데'와 '중심'의 의미가 추출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많은 나라 중에 '가운데 나라' 라는 '중국(中國)'은 그 가운데에 대한 자부심과 추구가 유난히 강한 나라이다. <시경(詩經)>, <예기(禮記)>에서 중국은 수도, 또는 한족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한족이 세운 나라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중국은 중원을 중심으로 한 자신들만을 문명국가로 여기고 나머지는 황제의 문명혜택을 누리지 못한 미개상태로 간주했는데 이는 바로 뿌리 깊은 중화사상(中華思想)의 시발점이 되었다. 자신들은 중원의 문명국이고 나머지는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으로 부르며 야만국으로 치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의 양끝을 모르면서 어찌 자신을 감히 '가운데'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무지였거나 혹은 지나친 오만으로 빚어진 섣부른 결론일 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무난하고 객관적이라는 생각하는 '중용' 또한 그런 어설픈 주관으로는 다다르기 힘든 곳에 존재한다. 중용은 그렇게 쉽지 않다. 양 끝에 서보지 않고 어떻게 '가운데'를 정확히 알고 그 지점에 설 수 있겠는가? 생각의 좌우를 다 경험하기란 쉽지 않고, 극단적인 양면성의 폭을 다 수용해 내기란 지난한 일이기에 중용을 지향하는 것 또한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명제다. 차라리 편향된 곳에 있는 생각일지라도 그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또한 중용을 향한 소중한 밑거름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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