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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토끼같이 살아온 사람들이여"

섬진강변 두계마을 이야기

등록|2013.10.14 10:21 수정|2013.10.14 10:21
"이리 좀 와보소."

마을 초입에 들어서는데, 물가상 어르신이 부른다.

▲ 마을 초입 섬진강변을 지키는 두 어르신. 이곳이 나에게는 마을 이야기를 듣는 곳이기도 하다. ⓒ 김영희


"거, 뭔 소리가 들리든디 어째 그렁가 ?"
"아 그거요..."

약 25가구 정도 되는 우리 마을에 외지에서 들어온 집이 세집이다. 그 중 두 집이 경계가 맞닿아 이웃해 있는데 우리 집이 그 중 한 집이다. 우리가 내려와서 얼마 안될 무렵 두 집 사이에 오해가 생길 뻔 했다.  배수관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양쪽 집 경계에 있는 바윗돌을 빼내자거니, 그대로 두자거니 하다가 그리 된 것이었다. 공사 편의를 위해서는 바윗돌을 빼내는 것이 좋겠지만 나는 그 큰 자연석이 아까워서 최대한 손대지 말고 공사를 했으면 한 것이다. 이 동네 풀 하나, 나무 하나, 돌멩이 하나까지도 아깝고 소중하게 여겨진 까닭이었다. 종내는 서로 잘 양해가 되었는데 그 일이 동네분들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  

"내 말 좀 들어봐. 우리 마을에서는 아무도 너므 땅 안볿고는 댕기들 못해. 왜 그런줄 앙가. 첨에 동네 질 낼 때 말이여. 다 논이고 밭인디 서로 조금씩 질로 양보헌 것이여."
"그래요?"
"아문. 전에는 사람만 댕기는 아조 좁은 길이었단 마시. 근디 마을사업함서 길을 넓혔제. 그때 다들 양보를 해서 넓힌 것이라."
"보상도 안 해주고요?"
"보상이 뭣이당가, 우리 동네 질이고 우리가 댕길 것인디. "
"그래요 잉."
"긍게  이 촌에서는 도시맹키로 내 땅이다 니 땅이다 칼같이 금긋으먼  못살아.  너므 땅 안볿으먼 동네 들어가들 못헌디. 우리는 참말로 토끼겉이 살아온 사람들이이여. "
"예.."
"행여 도시 사람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서 찌트락 자트락 허먼 그 꼴 못보네 우리는."
"에..."

나는 큰 가르침 하나 얻은 기분이었다.  마을로 들어오면서 그동안 무심코 다닌 길이 새삼스러워졌다.

'내가 밟고 다니는 길이 몇 십년 전 누군가의 논이고 밭이었구나.  금싸라기 같은 문전옥답을 내놓아서 길이 되었구나.'

그냥 나 있는 길인 줄 예사로이 다니지만 이 동네 길은 하나하나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 아 그랬구나.. 이 동네 길들이 그렇게 생겨났구나.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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