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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먹는 것이 결국 땅을 먹는 것과 같구나"

[섬진강변 두계마을 이야기] 고구마를 캐면서

등록|2013.10.21 10:24 수정|2013.10.21 10:24
올 봄에 집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 있는 밭에 토란 두 줄, 감자 한 줄, 콩 다섯 줄을 심었다. 사실 내가 심었다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전 이장님이 경운기를 몰고와서 로타리를 치고 퇴비를 들이붓고, 이장댁이 토란씨와 감자씨를 가져와서 이웃 제수네랑 셋이서 같이 엎드려서 심었다. 농사일이라고는 완전 생짜인 나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이 마을 인심 덕에 이렇게 농사 흉내를 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야심차게 종자를 넣었지만, 때맞춰 김도 매야하고 북도 돋아야 하는 일을 제대로 안하니 밭 꼴은 한심하기 그지 없이 되었다. 풀밭인지 토란밭인지, 감자 싹과 콩은 어디 숨었는지 모를지경이 되자 보다못한 탑골댁 할머니께서 원정을 오기까지 했다.

어느 날 아침, 여든 다섯인 탑골댁 할머니가 호미가 든 망태기를 메고 밭에 들어서서 김을 매기 시작하더니 세시간 만에 밭이 말끔하게 되었다. 나라면 사흘 걸려도 못 할 일이었다. 호미로 풀을 캐고 잡아당기는 손 힘이 나보다 세었다.

김을 매고난 후, 얼마동안 밭이 보기 좋다가 시간이 가면 풀은 다시 자란다. 나는 토란과 감자. 콩만으로도 벅차서 어찌할 줄 모르는데 고구마 순 심을 때가 되자 이웃 김씨 아저씨는 고구마 순을 조금 갖다주며 밭 한쪽에 심으라고 성화를 하다 직접 심어주기까지 했다.

하지 무렵에는 여지껏 그저 가게에서 사는 물건인 줄 알았던 감자를 땅에서 직접 캐내어 보고, 가을이 되자 일년에 한번이나 구경할까말까 하던 토란을 내 밭에서 원없이 캐게 되었다. 그리고 풀 속에서 무성하게 덩굴을 이룬 고구마도 캤다.

심어놓고 마냥 내버려두었으니 고구마 농사가 잘 될리는 없다. 그래도 땅 속에 고구마가 들긴 들었다. 참 신기하다. 순만 심었는데 어떻게 고구마가 생겼을까. 그런데 고구마는 감자와는 달리 땅 속에 깊이 박혀있다. 감자 캘 때는 땅 윗부분을 살살 긁으면 계란같은 하얀 감자가 보였는데 고구마는 윗 부분만 호미질해서는 보이질 않는다. 꽤 깊은 데에 그것도 대부분 수직으로 꼿꼿이 박혀있으니 땅을 많이 파야한다.

고구마란 놈은 뭐라할까, 땅과 한몸처럼 꽉 결합이 되어있는 느낌이다. 그런 땅 속의 고구마를 보면서 나는 고구마를 먹는 것이 결국은 땅을 먹는 것과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땅이, 흙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죽은 흙'이니 흙이 살아있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무슨 이야기인가 했는데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화학비료를 넣은 흙과 퇴비를 넣은 흙은 다를 것이다. 퇴비도 어떤 퇴비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미생물이 살아있는 건강한 흙이 우리 몸도 건강하게 살릴 것이다.

어찌 고구마 뿐일까. 모든 곡식과 채소를 먹는 것이 바로 땅을 먹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 땅과 한 몸이 되어있는 고구마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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