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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사원서 만난 아저씨... "아내 분이 섹시하우?"

[어느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15] 야릇한 마을 카주라호

등록|2013.10.17 11:34 수정|2013.10.17 19:58
지난해, 9개월 동안 남편(미국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1838년 네 명의 장성이 이끄는 가마를 탄 영국의 육군 대위가 인도의 한 외진 지역에 도착한다. 대추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정글 숲. 숲 속을 들어서자 뜻밖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추나무 사이에 숨어 아름답게 빛나는 수십 개의 사원. 그리고 그 사원 하나하나를 감싸고 있는, 좀 심하다 싶게 정교한,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수백 개의 조각상.

힌디어로 '대추'라는 뜻의 작은 마을인 카주라호는 달의 신 찬드라(Chandra)의 아들이라 불렸던 찬델라(Chandela) 왕조에 의해 지어진 곳이다. 서기 10세기 초에 왕권을 잡은 찬델라 왕조는 카주라호를 수도 중 하나로 정하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서기 950년에서 1050년 사이, 100여 년 동안 85개의 사원을 세운다.

지금도 에로틱한 사원들 말고는 특별할 게 없는 외진 지역에 있는 카주라호는 그 고립 덕분에 '우상'을 숭배하는 사원을 모조리 파괴했던 무슬림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원들은 13세기 이후 찬델라 왕조가 쇠퇴하고 기도를 올리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점점 사라지게 되면서 빽빽한 대추나무 숲 사이로 숨어들게 된다.

힌디어로 '대추'라는 뜻의 작은 마을인 카주라호

▲ 카주라호의 힌두 사원 ⓒ Dustin Burnett


지금은 스물두 개만 남아있는 사원에는 남녀 합일의 온갖 만상을 새겨져 있다. 그 열정, 혹은 집념과 오기가 엿보이는 진하고 적나라한 19금 조각상들이 옥수수알처럼 알알이 붙어있다.

남녀가 다정히 키스하는 모습부터 시작해 거꾸로 매달려 하는 모습, 여러 명이 하는 모습 등 다양하다. 그중에 제일은 말과 하는 모습이다. 그 옆에서 그것을 보는 여인이 부끄러워 눈을 가리고, 그 옆에 자위하는 남자가 있는 모습까지 참 디테일하다. 야동이 만연하는 온라인 세상에서도 보기 어려운 온갖 기괴한 모습들이, 이곳 카주라호에서 3D 영상으로 펼쳐진다.

평화주의자인 마하트마 간디조차도 "모두 불태워버리고 싶다"고 했을 만큼 적나라하고 야한 조각상들. 울창한 숲 속에 도착해 이 어이없는, 쓸데없이 디테일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사원들을 발견한 영국 육군 대위는 얼마나 어안이 벙벙했을지. 사전에 가이드북의 소개와 사진 정보를 충분히 보고 찾아온 우리였지만, 카주라호의 사원들을 실제 눈앞에 두고 보는 우리의 마음 또한 벙벙하고 얼얼하다.

도대체 누가 무슨 심산으로 이런 짓(?)을 해 놓은 걸까. 이렇듯 모두가 궁금해할 만한 역사의 흥미로운 구석에 자료가 충분히 남아있을 리 없다. 카주라호의 사원이 왜 지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일부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합이야말로 신에 가까운 성스러운 완성을 의미하므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성행위를 묘사한 조각들을 새긴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학자는 카마수트라(남녀 모두 성적 만족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는 4세기에 쓰인 교본)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성적 묘사를 보고서도 욕망이 분출되지 않는 금욕 수행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일종의 잘 짜여진 사기극이라면 어떨까. '100년 동안 엄청나게 야하고 디테일한 아름다운 조각상을 세운 사원을 만드는 거야. 대신 기록 같은 걸 남겨선 안 돼. 천 년 후에 사람들이 발견하고서는, 외계인이 와서 세웠다느니 신에 대한 묘사라느니 하는 뚱딴지같은 소릴 늘어놓을 거야. 재미있지 않겠어?'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왕의 장난이라면 재밌겠는데.

▲ 카주라호 힌두 사원의 에로틱한 조각상들 ⓒ Dustin Burnett


가장 마음에 드는 설은 유네스코가 설명하는 있는 탄트라(Tantra)와 연관된 설명이다. 탄트라는 '성력(性力)'을 교의의 중심으로 하는 인도의 전통사상으로 여성, 성적인 상징, 비밀스러운 비의(秘儀)를 강조한다. 이들은 힌두교에서 터부시하는 다섯 가지 M인 술(madya), 고기(māmsa), 물고기(matsya), 수인(mudrā), 성교(maithuna)를 허용한다. 서로 간의 협력과 공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탄트라의 철학이다.

찬델라 왕조는 이 탄트리즘(Tantric school)에 큰 영향을 받아 사원을 건축하고 교리를 전파했다. 탄트리즘의 영향을 받은 당시 사회에서는 성을 포함한 삶의 모든 양상을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다루고 대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카주라호 사원의 조각들도 삶의 모든 양상과 그들 사이의 협력과 공존을 표현한 것일 테다.

허세와 시기심과 부끄러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느라 삶의 진면목과 마주하지 못하는 지금은 1000년 전 사람들이 가졌던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하다. 이미 내 안에 가득 쌓인 거짓을 벗겨 내는 일에만 수년은 걸릴 듯한 나 자신을 사원 앞에 세워놓으니, 부끄러운 건 야한 조각상이 아닌 내 스스로가 아닌가 싶다.

삶의 모든 양상이 새겨진 카주라호의 조각들

▲ 카주라호 풍경 ⓒ Dustin Burnett


숙소에서 한숨 자고 마을로 나오자,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나를 본 마을 청년이 하나둘 다가온다.

"언니, 안녕? 한국 음식 찾아요? 우리 집 진짜 맛있어요. 김치 볶음밥, 닭도리탕, 신라면 다 있어요. 여기 사원들 보고, 꼭 오세요!"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더스틴 옆에 조그마한 아시아 여자인 내가 붙어 있든 말든, 백인인 더스틴에게만 초점을 맞추던 인도 사람들인데. 인구도 몇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놀랍도록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인도 청년이 더스틴이 아닌 나를 표적으로 삼아 다가온다. 이건 뭔가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에는 온통 '닭백숙,' '신라면' '김치 볶음밥' 등 한국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들뿐이다.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사원 덕분에 다른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인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카주라호에는 유난히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성을 부끄러워하는 한국의 유교 문화 때문일까. 성을 비롯한 삶의 다양한 양상을 인정하지 않고,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문화 때문일까. 내 존재의 원인인 성에 대해, 내 존재의 근원과 세상의 원리에 대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카주라호의 조각상들이기에 한국인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카주라호의 힌두 사원 ⓒ Dustin Burnett


에로틱한 조각상들이 가장 잘 보존된 서부사원군을 지나 마을 깊숙이 들어가자,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우리는 버려진 숲 속의 사원을 처음 발견한 영국대위라도 된양, 아무도 없고 먼지만 날리는 길을 타박타박 걸어 동부사원군 쪽으로 길을 향했다.

주요 관광 코스에서 나와 이곳으로 오니, 동네 큰형 권역인 서부사원군 주변을 벗어난 동네 꼬마 아이들이 우리 주위를 감싼다. 걔 중에서는 나이가 제일 많은, 중학생뻘 될 만한 남자아이 하나가 형 행세를 하고 싶었는지 우리에게 다가왔다.

"에…. 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걸어오던 청년은 몸을 비틀며 우리에게 알 수 없는 소리를 전달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우리는 '미안하다'고 하고 청년을 뒤로했다.

"십 루피 있어요?"

말을 못 하는 척 몸을 비비 꼬던 청년은 우리가 그냥 가려고 하자 금세 자세를 고쳐 세우고 또렷한 발음으로 물었다. 괘씸한 녀석. 어디서 못된 걸 배워가지고. 장애가 동정받을 일인가. 화가 난 나는 "노!" 하고 내질렀다. 마침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동네 꼬마 6명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두유 해브 텐 루피? 기브미 텐 루피. 두유 해브 스쿨팬?(10루피 있어요? 10루피 주세요. 연필 있어요?)"

아무리 "노!"를 외치며 발걸음을 빨리 옮겨도 아이들은 실실거리며 웃기만 할 뿐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헐크로 변신해 가슴을 뜯으며 이 꼬마 녀석들을 회오리 바람에 모두 물리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꼬마들을 한 줄로 불러세워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줄 수도 없고. 우리는 삼십여 분간 아이들의 끈질긴 집단 괴롭힘을 견딘 후에야 겨우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 카주라호의 동네 꼬마들 ⓒ Dustin Burnett


그쪽 와이프는 어떠우? 우리 와이프는 아주 아주 섹시해! 

비록 서부사원군의 선정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동부사원군에도 기가 막힌 조각들이 보란 듯이 뜨거운 햇볕에 몸을 부비고 있었다. 야릇한 조각상을 눈에 담은 끈적한 눈빛을 한, 배가 잔뜩 나온 인도 아저씨 한 명이 다가왔다.

"나는 저기 저쪽 사원을 지키는 관리인이오."

묻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당당하게 한 아저씨는 자랑스럽다는 듯 흰 이를 씨익 드러내고 웃어 보였다.

"이 사원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있지. 내 안내해 주리다."

친절은 고맙지만, 이미 아이들에게 시달린 우리는 정말이지 제발 혼자이고 싶었다.

"괜찮아요, 우리끼리 볼 수 있어요."

제안을 거절하고 사원 밖으로 돌아 나가려고 하는데, 아저씨는 우리 말은 듣지도 않고 자연스레 손전등을 들이밀며 말했다.

"자 이리로 들어와요, 내 엄청난 걸 보여주지."

이대로 돌아서 나가야 한다. 아저씨를 말을 듣고 따라가다간 이상한 헛소리만 듣다 가이드비 명목으로 돈이나 뜯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신전 내부의 어두운 굴 속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속이 궁금해 온몸이 간지럽다. 결국 우리는 손전등을 환히 내비치는 아저씨를 따라 사원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곳은 원래 자인교 사원이었소. 자, 이 안에 내가 비추고 있는 조각상이 보이시오? 딱 봐도 자인교 성상이지. 찬들라 시대에는 카주라호 동쪽 마을에 자인교들이 많이 살았거든. 그래서 동쪽에는 자인교 사원들이 많지."

▲ 사원 깊은 곳 숨겨진 자인교 성상 ⓒ Dustin Burnett


아저씨가 불빛을 비춘 어두운 굴 안에는 반듯하게 차려자세를 한 모습으로 서 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이 아저씨, 헛소리만 하는 사기꾼은 아닌 모양이다. 아저씨는 다시 동굴 밖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사원 입구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남녀 합일을 묘사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여기 이 조각을 자세히 봐요. 어때, 멋지지 않아요? 잘 기억해 두었다가, 오늘 밤 부부끼리 써먹으시구려. 히히."

아저씨는 세계 최고의 농담이라도 던졌다는 듯 얼굴의 온 근육을 들어 올려 웃었다. 그러더니 능글맞은 얼굴을 우리에게 더 가까이 들이밀고 물었다.

"둘이 어떠우, 아내 분이 섹시하우? 키키"

아내 분이라면 나? 아니 이 아저씨가 우릴 언제 봤다고 이런 소릴. 불쾌해진 우리는 싸늘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답했다.

"아뇨. 그런 소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히히. 우리 와이프는 아주 아주 섹시해! 하하하하!"

뜻밖의 농담에 어찌할 바를 몰라 경직된 우리를 앞에 두고,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지 아저씨는 더 크게 웃는다. 신이 난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도 덩달아 허허허 너털웃음이 났다. 어느샌가 우리 셋은 뭣 때문에 웃고 있는가도 잊은 채, 야한 조각상을 볼륨있게 쓸어내리는 햇살을 바라보며 허허허 하하하 하고 웃어댔다.

삶의 모든 면을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다루고 대면하라더니, 이 뚱뚱한 인도 아저씨의 변태스러움과 뻔뻔스러움이 바로 그 유명한 탄트라의 가르침인 건가. 아직 내 사생활을 공개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뻔뻔스럽고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라는 변태적인 아저씨의 가르침과 솔선수범을 감사하는 마음에 가이드비 100루피를 선뜻 내주었다.

▲ 카주라호 동부사원군 ⓒ Dustin Burnett


저 멀리 잡초 하나 없이 흙 날리는 길바닥에 멧돼지 한 마리가 지나간다. 조금 전 우리를 괴롭히던 꼬마 녀석들은 달리 할 것도 없다는 듯 아직도 사원 중간쯤에 걸터앉아 낄낄대며 서로 무언가 조잘대고 있다. 말 못하는 시늉을 하던 녀석이 아직도 동네 한구석을 어슬렁댄다.

우리에게 100루피를 받아든 가이드 아저씨는 섹시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에로틱한 사원의 조각상들은 벌건 대낮에 사랑을 나누는 우리가 부끄러운 것이 아닌 사랑을 부끄러워하는 너희라고 말하는 듯 석양이 지는 하늘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오늘의 풍경들이 점점 붉게 타올라 사그라지는 태양과 함께 녹아들어간다. 황량하고 부끄럽고 어줍은 오늘의 삶이, 여러 가지 무늬를 자아내며 내 안 어딘가로 새겨든다.

▲ 카주라호 힌두사원의 조각상 ⓒ Dustin Burnett


덧붙이는 글 *관련 내용은 세계미술용어사전, 유네스코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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