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등을 타는 기분, 이런 겁니다
형제봉에서 노랭이봉까지 21.3km 백운산 종주길
▲ 백운산 능선을 걸어가는 길 ⓒ 전용호
광양에는 백운산이 있다. 백운산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흰 구름이 이는 산으로 높은 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백운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이 남도지방을 휘감아 돌다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우뚝 선 산이다.
산 하나에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고 등산객들이 산줄기를 타고 넘을 때 보통 종주를 한다고 한다. 장거리 산행으로 대표적인 종주길이 지리산이다. 이런 장거리 종주길이 아니지만 산 하나에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네 개나 있는 산이라면 종주라는 말을 써도 될 법하다. 보통 백운산 종주라 하면 백운산의 맨 끝 봉우리인 조령마을 형제봉에서 시작해서 동동마을 노랭이봉까지 21.3㎞를 걷는 길이다. 걷는 시간만 10시간 이상 걸린다.
형제봉으로 올라 시작한 종주길
백운산 종주를 하기 위해 서둘렀다. 지난 12일 이름 아침, 아직 어두운 길을 뚫고 광양읍으로 향했다. 읍내에서 오전 7시 10분에 조령마을로 가는 20번 시내버스가 운행한다. 버스는 시간을 조금 지나 도착했다. 버스에는 승객이 세 명이 탔다. 버스는 구불거리며 이 마을 저 마을 들르다가 종점에서 멈춘다.
버스에서 내리니 마을이 참 좋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을 지나고 천변으로 소나무가 구불거리며 늘어서 있다. 생태체험마을로 '달뱅이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도로를 따라 1㎞ 정도 올라가니 성불교가 나오고, 왼쪽으로 100m 정도 더 올라가니 등산로 이정표를 만난다. 형제봉까지 2.6㎞를 올라가라고 알려준다.
산길은 최근에 정비를 한 것 같다. 잘생긴 소나무 숲길을 가파르게 올라간다.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이더니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형제봉은 높이가 861m로 봉우리 두개가 형제처럼 다정하게 서있다. 처음부터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숨이 찬다.
▲ 호남정맥이 흐르는 백운산 능선길. ⓒ 전용호
▲ 형제봉에서 본 호남정맥 ⓒ 전용호
형제봉에 오르니 호남정맥이 꿈틀거리며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용의 등에 타고 있는 기분이다. 첫 봉우리의 감동을 뒤로 하고 도솔봉으로 향한다. 산길은 능선으로 이어져 편안하다. 조금 내려서더니 다시 오르막길이다. 등주리봉을 지나고 도솔봉까지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진다.
도솔봉은 해발 1123.4m로 1000m가 넘어선다. 바로 아래는 성불사가 있다. 그래서 도솔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나 보다. 정상은 헬기장이 있다. 시원한 느낌을 준다. 도솔봉에서 보는 백운산 상봉 능선이 장엄하다.
지리산 능선과 마주하는 산
산길은 가파르게 내려선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는 게 못내 서운하다.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이 맛이 종주를 할 때 느끼는 산 맛이다. 힘들게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고, 또 다음 봉우리로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산행이다.
따리봉은 1127.1m로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따리'는 배를 저을 때 쓰는 도구란다. 따리봉에서는 지리산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우뚝 솟은 천왕봉에서부터 노고단을 지나 종석대까지 1500m 이상 되는 봉우리들이 길게 늘어섰다.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을 보려면 따리봉이 제일이다. 전망대에 앉아서 잠시 쉰다.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해선지 피로가 몰려온다.
▲ 따리봉, 상봉, 억불봉으로 이어지는 백운산 능선 ⓒ 전용호
▲ 전망대가 있는 따리봉. 멀리 바가가 보인다. ⓒ 전용호
따리봉에서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면 한재다. 한재는 광양과 구례를 넘나드는 길이다. 한재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2.6㎞를 가야 한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산길에 발걸음이 무겁다. 무릎이 아프고 골반이 삐걱거린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너무 무리를 했나보다.
나무계단을 올라서서 잠시 쉰다. 그냥 내려갈까 고민도 한다. 큰 마음 먹고 종주를 계획했는데 정상을 올라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다시 힘을 내서 올라서니 산길이 아주 좋다. 평지를 걷는 것 같은 산길에 흙이 다져져서 밟는 촉감도 좋다. 그냥 내려갔으면 후회할 뻔 했다.
그렇게 쉬엄쉬엄 걸으니 우뚝 선 신선대가 나온다. 신선대에서 큰 숨을 한번 쉬고 정상으로 오른다. 바위가 돋아난 거친 산길을 오르면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섰다. 백운산 정상이다. 백운산상봉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높이가 1222.2m라고 알려준다.
▲ 신선대로 오르는 길 ⓒ 전용호
▲ 신선대 가는 바위 능선길 ⓒ 전용호
▲ 지리산 능선과 마주보는 백운산 상봉 ⓒ 전용호
정상은 사람 몇 명이 올라설 정도다. 백두산에서부터 한반도를 타고 내려오는 산줄기는 이곳 백운산에서 끝맺는다. 정상 표지석을 잡고 백운산 정기를 받는다. 사방을 둘러본다. 북으로는 지리산이 병풍처럼 서있고, 동으로는 섬진강이 감싸고, 서로는 호남정맥이 달려온다. 남으로는 바다가 멀리 보인다.
버스종점인 조령마을에서 정상까지 13㎞ 정도 걸었다. 정상에서 억불봉과 노랭이봉을 거쳐 동동마을까지는 9.5㎞를 더 가야 한다. 억불봉으로 향한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은 헬기장을 만난다. 헬기장에서는 백운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고민이다. 종주를 하려면 억불봉으로 가야 하는데….
예사롭지 않은 암자 상백운암
더 산행을 하면 어두워서야 마을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백운암으로 내려서면 해발 1008m인 억불봉을 갈 수 없지만 세 시간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아쉽다. 산행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다음에 또 와야 할 이유를 남긴다.
내려오는 길에 상백운암에 들렀다. 절집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석축으로 쌓은 담장 안에는 집이 두 채가 자리 잡았다. 담장 사이로 난 돌계단을 올라서니 스님이 바리에 물을 한 가득 떠서 건네준다. 내친김에 마시니 물맛이 아주 좋다. 암자 뒤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바위 밑에서 나오는 물이란다.
▲ 숨어 있는 암자 상백운암 ⓒ 전용호
▲ 상백운암에서는 바다가 보인다. ⓒ 전용호
스님에게 절집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니 상백운암의 역사를 구구절절 말해준다. 상백운암은 백운산의 정맥이 삼존불 봉황의 둥지터를 형성했다고 하는 주천하길지(周天下吉地)로 이름난 스님들이 수도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옛날 도선국사가 처음 터를 잡았고,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중창한 이후 1000년이 넘게 지켜오던 절집을 여순사건 때 경찰이 불을 질러 없어져 버렸단다. 절집 보물이던 삼존불감마저도 도난을 당해 현재는 동국대 박물관에 있다는 슬픈 사연도 이야기 해준다. 초라한 절집에 걸린 현판이 너무 멋있다고 하니 5대 종정인 서옹스님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상백운암은 현재 복원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로가 없어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한다. 복원을 하지 않아도 풍겨 나오는 기운은 어느 암자에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해발 1040m에 자리 잡은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어디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억불봉과 노랭이봉을 가지 못해 아쉽다. 백운암에서 내려오면 백운사가 있다. 백운사를 지나 시멘트포장길과 산길을 번갈아가며 내려왔다. 도로로 내려서니 버스시간에 10분 정도 남는다. 오후 5시 25분 쯤 광양읍내로 가는 21번 시내버스가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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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산행은 조령마을-1.2㎞-성불교-2.6㎞-형제봉(861.3m)-3.2㎞-도솔봉(1123.4m)-2.1㎞-따리봉(1127.1m)-1.3㎞-한재-2.6㎞-상봉(1222.2m)-1.0㎞-헬기장-1.2㎞-백운사-2.8㎞-용소(버스정류장)으로 총 18㎞를 걸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