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밀양 송전탑 공사 보름째... 갈등 더 깊어졌다

한전 공사 8곳 확대... 주민, 경찰 충돌 계속 병원 후송 33명

등록|2013.10.16 18:25 수정|2013.10.16 19:05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가 보름째를 맞았지만, 갈등은 더 깊다. 지난 2일부터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한국전력공사(아래 한전)는 작업 현장을 더 확대하고 있다. 주민 고통도 큰데, 33명이 병원에 후송되었고, 2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었으며, 1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한전, 송전탑 공사 확대

한전은 공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 2일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4공구'의 5곳 철탑 현장에서 공사를 벌였는데, 작업 현장을 추가해 16일 현재 모두 8곳으로 늘어났다.

▲ 16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진입로에서 송전탑 공사 차량의 진출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던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 제압된 뒤 도로 옆 대추나무밭에 모여 있다. 사진은 경찰과 충돌과정에서 손등에 피멍이 든 할머니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 ⓒ 윤성효


한전은 철탑 기둥을 세우기 위한 기초굴착과 지하 원형보 강판 설치, 철근 조립 등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전은 그동안 공사 장비와 자재를 헬기로 이동시켰는데, 16일부터 일부 현장에 대해서는 트럭으로 육로 이동시키고 있다.

한전은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공사 현장 주변에는 대규모 경찰대원들이 배치돼 있다. 주민들이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진입로에 농성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주민들은 도로 옆으로 강제로 밀어냈고, 그 뒤 한전 트럭이 통행하기도 했다.

정부와 한전은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4호기에서 생산된 전력을 경남 창녕에 있는 '북경남변전소'까지 가져가기 위해 울산-기장-양산-청도-밀양-창녕 구간에 총 161기의 송전탑을 세운다. 밀양 4개면(산외·부북·상동·단장)에만 총 52기의 철탑이 세워진다.

한전은 내년 여름철 이전까지 송전탑 공사를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시공업체 직원을 포함해 200명 안팎의 인력을 거의 매일 공사장에 투입시키고 있다.

한전은 송전탑 경과지 주민한테 가구당 400만 원 안팎으로 개별보상할 예정이다.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은 밀양 4개면에 총 30여개인데, 개별보상에 합의한 마을은 일부에 그친다.

주민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주민들은 죽기를 각오하며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섰다. 주민들은 평밭마을, 바드리마을, 평리마을, 여수마을 등 10여 곳에서 농성하고 있다. 주민들은 공사 현장과 진입로 쪽에 움막 10여개를 지어 농성하고 있다.

▲ 16일 오전 밀양시 단장면 평리마을 쪽 진입로에 송전탑 공사 차량의 진출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는 주민들이 비닐을 설치해 놓고, 밖에 "다 죽이고 공사해라"고 써놓았다. ⓒ 윤성효


주민들은 밤샘 노숙하다시피 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60~80세 할머니·할아버지들이다. 주민들은 가을 추수도 제때 하지 못하고 미룬 채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나섰다.

16일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진입로에서 만난 김필귀(80·용회마을) 할머니는 "분하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가만히 있는 그대로, 자연 상태 그대로 살도록 해주면 되는데, 왜 철탑을 세우겠다고 하느냐"며 "추수는 집에서 남편이 하고 있는데 걱정이고, 수확을 하지 못하다 보니 벼가 멸구가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손등에 피멍이 든 김 할머니는 "어제는 몸이 좋지 않아 오지 못하고, 오늘 새벽 5시30분에 왔다"며 "며칠 전 쓰러져 병원에 후송되었다가 몸을 추스르고 다시 공사 막으려 나왔는데, 경찰이 아무리 막는다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끝까지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옥자(62)씨는 "송전탑이 머리 위로 올라가는데 누가 가만히 있을 것이냐. 생명과 재산까지 철탑이 앗아가는데,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김임남(62)씨는 "경찰은 우리를 짐승 다루듯 한다"며 "충돌할 때는 꼬집기도 하고, 한쪽으로 밀어낸 뒤에 동물원 원숭이처럼 에워싸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몸에 쇠사슬을 엮어 농성하기도 한다. 또 주민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며 구덩이(무덤)를 파놓았고, 거기에 목줄과 휘발유통을 매달아 놓았다.

유서를 써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주민들도 많다. 한옥순(66·평밭마을)씨는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다기에 유서를 써서 몸에 지니고 다닌다"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송전탑 공사는 막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2년 1월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했던 고 이치우(당시 74살)씨의 동생인 이상우(74·보라마을)씨도 주민들과 함께 송전탑 반대 활동에 나섰다. 특히 보라마을 주민들은 밀양시 단장면 단장리에 있는 공사장비 적치장 앞 움막을 지키기도 했다.

지난 2일부터 보름 동안 주민 33명이 병원에 후송되었고, 이날 현재 3명이 입원하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농성하다 쓰러지거나 경찰과 충돌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에 후송되었다.

경찰 연행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까지 밀양 주민과 이들을 돕기 위해 달려온 시민까지 총 2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가운데 이상홍 경주환경연합 사무국장은 구속된 상태다.

▲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16일 아침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공사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농성하고 있는 속에, 한 할머니가 지팡이로 차량 통행에 항의하며 막으려 하고 있다. ⓒ 윤성효


밀양 주민들을 돕기 위한 후원금·물품도 이어지고 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후원계좌에 보름 동안 3000만 원 이상이 입금되었고, 이 중에는 이름도 밝히지 않고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도 상당수라고 밝혔다. 주민들을 돕기 위한 방한복과 의료품 등 각종 물품 지원도 많다.

16일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부산마산민주항쟁 34주년 기념식'에서 밀양 주민들에 대해 '민주시민상'을 시상했다. 주민 김정회(42)·박은숙(41)씨 부부는 3일부터 16일까지 서울에서 단식농성 하다 밀양으로 내려왔다. 천주교 조성제 부산교구 신부는 서울에서, 박정규(52) 금호마을 이장은 밀양 상동역 앞에서 지난 3일부터 단식농성하고 있다.

대규모 공권력 투입... 인권침해 논란 이어져

밀양 송전탑 현장에는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됐다. 경찰대원은 3000여명으로, 이들은 곳곳에 배치되어 주민들의 공사장 진입을 막고 있다. 경찰은 창녕 부곡에 있는 리조트와 밀양에 있는 펜션에서 잠을 자기도 하는데, 하루 식사·숙소비용은 8000만 원 정도다.

또 경찰은 대규모 채증반을 투입했다. 특히 경찰은 주민과 충돌과정에서도 복면을 하고 있어, 주민과 인권감시단체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낸 긴급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현장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등 인권단체연석회의는 현장 감시 활동을 통해 "주민들의 인권 침해가 심하다"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인권위원회(Asian Human Rights Commission), 포럼아시아(FORUM-ASIA), 시비쿠스(CIVICUS), 국제인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uman Rights), 프론트 라인 디펜더스(Front Line Defenders) 등 세계인권단체들은 각각 성명을 통해 주민들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우려했다.

▲ 16일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진입로에서 주민과 경찰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여성경찰들이 복면을 하고 있어 인권감시단체 '불법'이라 주장했다. ⓒ 다산인권센터


또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은 한전이 대책위와 주민 25명에 대해 제기한 '공사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고, 지난 14일 결정 고시문을 현장에 부착했다. 그러나 법원은 한전이 제기한 '간접강제금'(각 100만 원)은 기각했다.

외부세력 논란으로 갈등은 더 깊어져

외부 세력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탈핵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밀양 주민들을 돕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주로 각 마을에 가서 농작물 수확을 돕는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엄용수 밀양시장은 각각 보도자료 등을 통해 '외부세력은 밀양에 오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 지사는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외부세력은 당장 추방돼야 한다"고, 엄 시장은 "송전탑 현장은 이념투쟁의 장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홍 지사와 엄 시장에 대해 "공약도 지키지 않고 '공사 강행이라는 벼랑 끝으로 밀려오게 만든 일등공신"이라 비난했다. 대책위는 "홍 지사는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 때 '밀양송전탑 문제 중재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당선 이후 중재노력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단 한 차례도 경과지를 찾아 피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밀양사회봉사단체협의회는 지난 12일 밀양시청 앞에서 '외부 불순세력 척결 총궐기대회'를 열 예정이었는데, 송전탑 경과지 주민 100여명이 항의하면서 무산되었다. 대신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외부 세력은 당장 밀양을 떠나라"고 주장했다.

국민 여론조사도 상반됐다. 한전은 여론조사(리얼미터, 1000명 대상 3~4일 설문조사)에서 국민 59.6%가 송전탑 공사에 찬성하고 22.5%가 반대했으며, 밀양 주민은 50.7%가 찬성하고 30.9%가 반대했다고 밝혔다.

환경연합은 여론조사(리서치뷰, 1000명 대상, 8일 조사)에서 국민 63.1%가 '돈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지중화해야 한다'고, 66.1%가 '밀양 주민들의 재산과 건강 피해를 우려한 공사 반대가 일 리 있다'고 밝혔다.

지난 8~9월 사이 정홍원 국무총리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밀양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송전탑 갈등은 여전하다. 주민들은 정 총리와 윤 장관이 한전의 주장만 대변했다는 입장이다. 8년째 이어지고 있는 밀양 송전탑 갈등은 더 깊어진 상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