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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미국... 패권붕괴는 필연적이다

[주장] 부채한도 협상 전망과 미국의 앞날

등록|2013.10.16 16:39 수정|2013.10.16 16:39
미국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미국 정부가 보유한 현금은 10월 17일 이후 거의 바닥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빠른 시일 안에 부채한도가 증액되지 않으면 국가부도에 직면한다. 가능성 높은 날짜는 10월 31일이다. 이날 도래하는 만기채권은 60억 달러로 규모가 큰 편이다.

미국이 실제 국가부도에 처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미국은 달러 발권력을 이용해 부채를 갚을 수 있다. 정치권이 16조7000억 달러로 제한된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만 올리면 당장의 긴박한 문제는 해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과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기관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국 정치권이 부채한도를 시급히 인상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이 보여주는 모습은 정반대다. 재정적자문제를 둘러싼 미국 집권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정치공방은 극한에 달했다. 동시에 미국이 사상 초유의 디폴트(default), 즉 국가부도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람들의 우려도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은 국가부도의 현실화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이 직면한 패권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미국 상원이 2014년 1~2월까지 시한부 연방정부 재가동과 부채한도 증액에 극적으로 합의하더라도,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연방정부 폐쇄사태까지 불러온 미국 재정위기, 그리고 미국 패권의 현주소를 짚어보자.

국제적으로 망신당한 미국

첫째로, 10월 1일 미 연방정부 폐쇄사태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에 치명상을 입혔다. 당면 미국 연방정부의 폐쇄는 이전 사례와는 달리 그 상징적 의미가 크다. 초유의 국가부도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음은 상황에서, 미국 정치권이 정부 폐쇄를 방치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 정치권의 쟁점은 '국가부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른바 '오바마 케어'라는 다소 생뚱맞은 의료보험 예산 문제다. 과연 미국 정치권이 국가부도를 막을 의지가 있느냐는 의문이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이유다.

연방정부 폐쇄사태는 곧바로 미국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여론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10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나타난 양상이다. 회의 참가자들의 관심사는 온통 미 연방정부 폐쇄와 디폴트 위기 등에 대한 해법에 쏠려 있었다. G20은 공동선언문(코뮈니케)을 통해 "미 의회가 재정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이례적으로 촉구했다. 이번 G20회의의 본래 의제였던 ▲ 세계경제 동향과 금융부문의 취약성 ▲ 국제금융체제 개혁 ▲ 장기투자재원 조성 ▲ G20 프로세스 강화 등은 사실상 심도 있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G20, 이른바 '주요 20개국 회의'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이른바 '신흥국'이라 불리는 중국·브라질·인도·남아공·한국 등을 포함시켜 기존의 G8체제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창설됐다. 본래 G6에서부터 시작된 이른바 '주요국 회의'는 자본주의 진영 내 주요 현안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창설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이용돼 온 측면이 강하다. 결국 G20이 창설된 이유도 미국이 경제적으로 새롭게 부상한 국가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명분으로, 자기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이들에게 전가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러나 2013년 마지막 G20회의는 미국을 성토하는 장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주도권을 발휘하기는커녕 굴욕을 맛본 것이다.

세계 최대 미국 채권 보유국 중국은 아예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재편해야 한다고 정면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중국 관영 언론 신화통신이 10월 13일 "한 위선적인 국가에 의해 세계가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논평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한 위선적인 국가'란 미국을 지칭한다.

신화통신은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갈등으로 재정 위기가 장기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 사태가 탈미국화된 세계의 건설을 고려할 만한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화통신은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아래에서 우리는 미국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갈등을 해결하거나 빈곤·오염을 없애고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온 사례를 보지 못했다"며 "새로운 세계 질서가 들어서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탈미국화 개혁'이라는 단어 선택도 놀랍지만, '팍스 아메리카나'를 정면으로 비난한 것도 이례적이다. 한마디로 더 이상 미국의 패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돌이키기 힘든 달러 패권

▲ 16조 7380억 달러를 돌파한 미국 재정적자 ⓒ political calculation2013


둘째로, 달러 패권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왔다. 16조7000억 달러, 대략 1경7000조 원을 넘어버린 미국 재정적자는 그 천문학적인 규모 자체로 미국의 부채 상환 능력을 의심케 하고 있다. 게다가 전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미국의 경기현황도 대외 신인도 추락에 한몫 하고 있다. 미국 경기 현황이 좋지 않다보니 본격적인 '양적 완화' 출구전략의 시행 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있다.

미국 달러를 대체하는 기축통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미국 연방정부 폐쇄사태를 계기로 한층 노골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관영 신화통신 논평을 통해 "탈미국화 개혁의 핵심으로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러 패권은 미국 내부에서도 균열되고 있다. 미 연방 내 13개 주 정부와 의회들이 "계속되는 달러 가치 하락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금과 은을 법정 화폐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이른바 '금본위제'를 채택하는 것이다. <미주한국일보> 2012년 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게리 허버트 유타 주지사가 금과 은을 법정 화폐로 승인하는 '유타 안전 화폐법'에 서명해 통과시킨데 이어 미네소타·테네시·아이오와·사우스캐롤라이나·조지아 등 총 13개 주가 금본위제 추진에 가세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13개주의 '금본위제' 복귀 시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아직 낮다. 금값이 워낙 비싼데다, 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도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연방에 속한 50개 주 가운데 13개 주가 동일하게 달러 체제에서 탈피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다.

공화당 내 극우 정파인 '티파티' 소속 오린 해치(유타) 하원의원은 10월 5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행정부는 상환해야 할 곳과 아닌 곳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실제로 "부분적인 디폴트"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부분적인 디폴트"는 쉽게 말해 '어떤 이에게는 빚을 갚고, 다른 이에게는 빚을 갚지 않겠다'는 것으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빚 갚는 우선순위를 규정할 법적 근거도 없거니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분적인 디폴트'는 사실상 '전면 디폴트'를 염두에 둔 주장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미국 연방 정부가 국가부도를 공식선언한다는 것은, 미국 스스로 달러 패권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하원의원이 국가부도를 선언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협상 전망은?

지금까지의 협상 과정을 보면, 미국의 당면 대응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미국 독점자본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는 민주·공화 양당의 주류 정치인들은 보험업계와 제약업계·의료장비업계 등 일부 세력의 희생을 담보로 국가부도를 막고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미국 주류 정치권은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건강보험개혁을 예정대로 추진하면서 사회 안정에 힘쓰는 한편, 자동 삭감된 예산의 규모를 줄여서 국방예산을 일정하게 증액하는 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타협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방안은 10월 13일(현지시각) <뉴욕타임즈>가 "상원 지도부간 협상의 쟁점은 연방 정부의 대규모 예산 자동 삭감,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 축소 여부"라고 보도한 사실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다.

물론 타협은 쉽지 않다. 희생을 강요당한 세력의 저항이 거세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연방정부가 국가부도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 10월 17일을 이틀만 남겨놓은 시점에서도 '오바마케어 예산'을 삭감하고, '의료장비에 부과되는 세금'을 2년간 유예할 것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적극 반영하고 있는 정치세력은 다름 아닌 공화당 내 극우 '티파티'다. '티파티'는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232명 중 45명을 차지하고 있으며, 석유화학과 정유, 종합상사 등을 망라한 거대 기업 코흐 인더스트리(Koch Industries) 등이 적극 후원하고 있다. 이 기업의 소유주인 코흐 형제는 각각 36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4위 거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숱한 정치·경제·군사적 위기를 겪어왔지만, 현재의 위기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패권의 위기다. 패권국이 스스로 그 지위를 내려놓은 역사는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향후 선택이 주목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패권을 연장하는 것이 그들의 생리에 맞다.

미국 정치권이 타협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재정위기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패권이 담보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군사력을 확대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더 늘리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달러 신뢰 회복을 위해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미국의 선택은 결국 '자해'행위다. 첫 번째의 경우는 재정위기를 심화함으로써 달러 패권에 치명상을 준다. 두 번째 경우는 군사력 약화로 귀결된다. 어떤 경우든 미국의 선택은 패권 붕괴를 초래한다.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 누리집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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