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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 전태일 때문이다"

[인터뷰] 전태일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소설가 이종하

등록|2013.10.19 16:33 수정|2013.10.20 00:05

▲ 소설가 이종하,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전태일'을 살려내기 위해서다. ⓒ 성낙선


소설가 이종하는 작가치고는 조금 남다른 이력을 가졌다.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과 떨어져 외가가 있는 전북 익산에서 자랐다. 그러다 14살이 되던 해, 외가를 떠나 성남의 한 봉제공장에서 미싱사 보조로 일하면서, 소규모 하청 공장 노동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20살이 될 무렵, 야학에서 만난 대학생들을 통해 노동 현실을 깨닫고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전태일문학상
전태일문학상은 올해 21회째를 맞는다. 전태일문학상은 전태일기념사업회가 1988년에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횃불을 높이 든 전태일을 기념'할 목적으로 제정했다.

21회 전태일문학상에는 소설부문에 이종하가 쓴 <사람의 얼굴>이, 시 부문에 권상진이 쓴 <영하의 날들>이, 생활기록부문에 신정임이 쓴 <아줌마, 백화점에 가다>가 당선됐다. 전태일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수상자 시상식이 있는 11월 16일 무렵에 출간될 예정이다.
그가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30살이 되던 해였다. 소설을 쓰려고 한 이유는 그가 노동 현장에서 배운 '전태일 정신'을, 소설을 통해 되살려내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전태일 정신'을 주제로 한 소설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38살이 되던 해 문단에 등단하기는 했지만, 그 후로도 전태일은 계속 그의 머리와 가슴 속에만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 그가 올해 전태일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돼, 마침내 오랜 세월 뜻한 바를 이뤘다. '전태일을 살려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33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가 쓴 소설은 장편으로, 제목은 <사람의 얼굴>이다. 내용은 작가가 10대와 20대를 노동자로 살면서 겪은 일들이 뼈대가 됐다. 이 소설은 현재 작가가 쓰고 있는 연작소설 중 1권에 해당된다. 작가는 앞으로 이 소설을 모두 5권으로 나눠 쓸 계획이다. 대작의 서막을 연 셈이다.

심사위원들은 <사람의 얼굴>을 당선작으로 뽑으면서 "무엇보다 자칫 식상한 후일담이 될 수 있는 7,80년대의 이야기를 무리없이 끌어낸 서사적 능력을 높이 샀다"며, "비록 문학적인 기량은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나,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진정성과 시대에 대한 진지한 고심의 단면들이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게 했다"고 밝혔다.

노동자 출신 작가로, 앞으로 그의 활동이 기대된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따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오늘 그가 이룬 성과는 순전히 그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것이다. 이종하 작가는 본명이 '이종득'으로, 소설을 쓸 때는 필명인 '이종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가 쓴 소설로는 <바람의 끝은 어디인가> <길, 그 위에 서서> 등이 있다. 다음은 강원도 홍천에서 작가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노동자 이종하, 스무살에 '전태일'을 만나다

▲ 2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종하. ⓒ 성낙선

- 수상을 축하한다. 전태일문학상이 10대에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작가에겐 상당히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전태일문학상은 내겐 상당히 의미가 깊은 상이다. 내가 서른 살에 소설을 쓰겠다고 덤벼든 이유가 사실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른 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서른여덟 살에 문단에 데뷔했는데, 그러는 사이 어느새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개인적으로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겐 그 어떤 문학상보다 가치가 있는 상이다."

- 소설 제목이 <사람의 얼굴>이다. 내용이 작가가 노동자로 일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서전적 소설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인가?

"이 소설은 내가 살아온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시대적 상황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인물의 성격은 서사적 구조상 소설화 작업을 거쳤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적 소설이라는 표현은 일부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은 79년 말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80년 전두환 정권으로 교체되던 시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79년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정치나 사회 문제 같은 것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로지 가방공장에서 기계처럼 일만 하던 20살 청년이 변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때 그 청년이 공장에서 한 대학생을 만나게 되면서 사회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청년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과 사회를 보게 되고,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소설은 이 청년이 사회 운동에 참여해 활동하다, 마지막에는 삼청동에 끌려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청년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소설은 노동자로 살았던 한 청년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여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 어린 나이에 성남의 한 봉제공장에서 미싱사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삶 자체, 남다른 데가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족이 전북 익산에서 서울 연희동에 올라와 살았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내가 두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바람에, 익산에 있는 외가로 내려가 살았다. 서울에 다시 올라온 것은 열네 살 때다. 하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때 성남에 있는 한 봉제공장에서 미싱사 시다 일을 시작했다.

학교 공부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야간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지만 공장 일이 바쁠 때는 그나마 학교를 가지 못할 때도 많았다. 학교에 간 날보다 결석을 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열일곱 살, 열여덟 살 무렵에 조금 방황을 하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태일을 알지 못했다. 서울에서는 가방공장에 나가 일하면서, 저녁에는 야학에서 공부를 하게 됐다."

- 그러고 보면, 작가의 삶이 전태일이 살았던 삶과 흡사한 데가 있다.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은 언제쯤인가?

"그러니까 내가 전태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열여덟 살 때, 서울에서 야학을 하던 대학생 형들을 통해서다. 그때는 전태일이 나한테는 그렇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가 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그를 너무 지나치게 높이 떠받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 전태일을 가슴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이 될 무렵이었다. 대학생들과 토론을 하면서, 내가 처한 현실을 알게 됐다.

전태일이 무엇에 분노했는지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부터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전태일을 알게 되면서,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그 일을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노동운동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노동운동은 내 일이었다. 내 생활이었고... 우리가 처한 노동 현실은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극복해야 하는, 당장 풀어야 할 숙제로 생각했다. 그것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 작가가 노동운동에 참여하게 된 과정이 그대로 소설에 녹아들어가 있는 걸 알 수 있다.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이 무척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이 소설은 200자 원고지 5천매를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의 얼굴>은 1권에 해당한다. 1권은 내가 노동현장에서 전태일을 알게 되는 과정, 그 시대의 상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2권은 지금 <전태일의 후예>라는 제목으로 쓰고 있다. 2권에는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모습을 담을 예정이다.

80년대 중반에 스물세 살 먹은 여성 노동자가 내 눈앞에서 분신을 했다. 내가 알던 동생이다. 그 사람이 며칠 우울한 모습을 보이더니, 어느 날 성남시의 한 3층 건물 옥상에서 분신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2권에서 그려낼 생각이다."

▲ 소설가 이종하. 그는 <사람의 얼굴>을 시작으로 앞으로 5년 안에 5권짜리 연작소설을 써낼 계획이다. ⓒ 성낙선


"그 시절, 전태일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인가? 노동자로 살면서 노동 현실을 바꾸는 일에 전념하다가, 어느 날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88년 올림픽 개회식 날, 스물여덟 살 때 노동 현장을 떠났다. 그동안 최소 7개 회사에서 노조를 설립하는 데 간여했다. 그 당시는 노조 신고필증을 받아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올림픽 개회식 날, 마지막으로 한 회사의 하청노조연합을 만들었다. 그것이 나한테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때 하청회사 사장들에게 납치도 되고 협박도 받았다. 그 하청회사 사장들이 한때는 내가 잘 알던 형들이었다. 그런 일들이 있고 나서, 올림픽 개회식이 있던 날 1년 넘게 고생해서 어렵게 신고필증을 받아낸 것이다. 그때, 노동 현장을 떠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를 계속하고 대학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서른 살 무렵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습작을 하게 됐다. 그때 마음을 먹었던 게, 소설을 통해서 전태일을 살려내자는 것이었다."

- '전태일을 살려내자'라는 말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처음에 전태일을 알았을 때는 이름 외에 아무 것도 몰랐다. 그러고 나서 전태일을 알게 되고, 조금 더 세월이 흘러 노동 현장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나서는 전태일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러면서 전태일 열사가 내가 20대를 보냈던 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적어도 나보다는 잘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 내 주변에서 자기 스스로를 노동운동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전태일을 떠올렸다. 전태일을 앞세워 노동운동을 하는 그 사람들이 과연 아무런 가식 없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태일을 살려내자는 생각은 그런 고민 끝에 나왔다."

- 그동안 소설을 쓰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노동 문제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는 없었다. 노조가 설립된 뒤에도 회사가 임금을 체불하거나, 또 노동 조건을 잘 지키지 않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그런 일들과 관련해서 후배들이 도움을 청하면, 또 그들이 하는 일을 도와야 했다. 그 일을 3년을 더했다. 그러는 동안 소설 쓰는 일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그 후, 93년 들어 한 문학잡지에 응모한 단편소설이 최종심에 올랐다. 응모는 계속 했지만, 등단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생계 문제도 걸림돌이 됐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 때문에 또 중간 중간 소설 쓰는 일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소설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꽤 노력했다. 소설은 누구한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유명 작가들의 소설을 여러 번 필사했다.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 시기에 발표되는 소설이나 평론은 거의 다 읽었다."

- 이전에 써온 소설들과 <사람의 얼굴>은 주제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습작을 할 때는 심리 묘사에 많이 주력했다. 그러다 문단에 등단을 한 시점이 서른여덟 살이다. 문학사상이 내건 신인상 공모에서, 중편소설 <바람의 끝은 어디인가>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 소설은 '진실찾기'를 주제로 했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족사를 다룬 소설이다.

그 소설은 처음에 소설을 쓰려고 했던 시점에, 내가 마음에 품었던 주제를 다룬 소설은 아니다. 그것은 왜 그랬냐 하면,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은 내가 정말로 소설을 잘 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습작하고, 공부하고 그러는 단계에서, 작품을 써서 내 자신한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등단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계속해서 소설 공부를 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마흔 살에 홍천에 내려온 것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나는 소설을 처음 쓰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그 이야기를 주제로 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잊은 적은 없다."

- 10여 전부터 강원도 홍천에 거처를 정해서 살고 있다. 굳이 홍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홍천은 내가 어려서 살던 시골 고향과 비슷하다. 푸근한 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힘들었던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평소 나 자신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곳으로 내가 평소 자주 여행을 다니던 강원도, 그중에서도 서울에서 가까운 홍천이 떠올랐다.

홍천을 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처음 홍천에 내려 왔을 때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마을 사람들하고 어울려 지내는 게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엔 홍천에 눌러앉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홍천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홍천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서 혼자 내려와 사는 내게 먹을 것을 건네며 따듯한 정을 나눠줬다.

<오마이뉴스>에 접속해 가끔씩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 쓴 첫 기사가 내가 살던 산골마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결혼도 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지금은 한 여인과 결혼해 홍천에서 일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 앞으로 원고지 5권에 달하는 연작 소설을 쓰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 외에도 지역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소설을 쓰는 작업을 계속 할 예정이다. 연작소설은 이미 구상이 다 되어 있다. 5년 안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다. 또, 조만간 지금까지 써온 소설들을 한데 모아 소설집을 펴낼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만 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전태일 정신'은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족이 될 수 없다. 전태일 정신은 사람을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려면, 언제 어디서든 사회 참여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홍천은 내 아이들이 태어난 고향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사는 이곳을 내 편과 네 편, 편을 가르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소통이 잘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지역에서 인터넷 신문을 운영하고, 정당에 가입해 정당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들 중에 하나다. 그 일들은 내게, 소설을 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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