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 뭘 좀 알고 말하세요
나는 왜 밀양송전탑 반대 외부세력이 됐나
▲ 밀양역 캠페인 ⓒ 배성민
밀양 송전탑 문제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작년부터 부산지역 청년들과 밀양송전탑 문제에 대해 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공사 진행 과정을 맘 편히 지켜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 12일 밀양 송전탑 현장으로 동아대 인문학회 카르마와 노동당 청년학생위원회 당원들과 찾아갔다. 그주 주말에 공사를 강행하지 않는다는 말에 참가자들과 함께 밀양역 주변에서 캠페인, 1인 시위를 하고 127번 공사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밀양역 주변은 한산했다. 부산 청년 약 10여 명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니 밀양 주민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박수를 치며 우리들에게 힘을 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지나가는 시민들도 있었다. 송전탑 문제가 8년 동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밀양시민들도 어느 정도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핵발전소 필요 없다. 밀양 송전탑 중단하라!"
"밀양 주민 다 죽이는 밀양 송전탑 건설 멈춰라!"
밀양역에서 구호를 외쳤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가까이에 있는 한국전력공사(한전) 밀양지사로 향했다. 실제로 송전탑 공사를 집행하는 곳은 한전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알리자는 취지였다. 한전으로 이동을 하면서, 밀양 송전탑 반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짧은 캠페인도 진행했다.
함께 온 친구가 약국 정문에 서서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 약사 분이 비타민 음료 2박스를 주시면서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셨다. 사실 부산·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정치적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가게 앞에 서서 캠페인을 하면,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장사에 방해가 되니 다른 곳에 가라며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낸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밀양 주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 후로도 밀양 시민들에게 2-3차례 격려 차원의 음료수를 더 받았다.
"밀양 외부세력이 문제야, 문제!"
경찰이 현장에 다 가서 그런 건지, 밀양이 작은 도시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밀양 송전탑 건설 중단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했지만 경찰이 우리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단지 언제까지 집회를 하고, 언제 캠페인을 끝내고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는지 묻기는 했다.
하지만 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1인 시위와 간단한 규탄 발언을 하자 한전 직원이 경찰보다 더 나서서 캠페인을 막았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여러 명이 나와서 정문을 막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DSLR 고화질 카메라로 캠페인 참가자들의 얼굴을 찍었다.
그리고 한전에 대한 규탄 발언과 피켓팅을 진행하니 어떤 직원이 갑자기 다가와서 자신이 동아대 출신인데 선배 앞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타박을 했다. 그리고 핏대를 세우며 우리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나댄다고 문제 해결될 것 같이 보이냐"라며 비아냥거렸다.
"어디 선배 앞에서...어디서 빨갱이짓만 배워서 나대냐. 당장 그만두고 밀양을 떠나라. 외부세력이 문제야 문제!"
밀양 송전탑 공사가 시작된 후 지난 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밀양시장은 "외부세력은 밀양을 떠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밀양 송전탑 주민들이 공사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은 외부세력이 이념을 주입해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경남지사와 밀양시장은 이념과 사상은 매우 불순한 것일 뿐더러, 그것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다른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2012년 4월 부산에서 '탈핵 희망버스' 라는 이름으로 밀양 송전탑 현장을 찾았다. 사실 밀양 송전탑 문제가 8년이 지났지만 실제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곳을 찾게 된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필자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회단체 활동가 및 시민들 또한 지난해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밀양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이치우 어르신은 밀양 송전탑 문제와 맞서 싸우다가 2012년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밀양 주민이다.
▲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로 주민과 경찰, 한국전력공사 직원 사이에 충돌하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산속 임도에서 농성하다 지쳐 쓰러져 누워 있는 모습. ⓒ 윤성효
아무튼 2012년 4월 밀양 주민들과 처음 127번 공사 현장에서 만났다. 당시 대부분이 70~80세가 넘는 할머니들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연대를 하기 위해 찾은 활동가들이었다. 하지만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 속에서 농성장을 만들고 송전탑 중단 투쟁을 이어갔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활동가들의 열정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느꼈다. 주민들은 너무나 강인했고 생존권 문제와 탈핵의 가치를 몸으로 터득하고 계셨다. 그들이 송전탑을 반대하는 것은 누군가 와서 이들에게 "송전탑은 핵발전소를 증설하는 원흉"이라고 계몽해서 생긴 아우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분들에게 밀양 송전탑 문제는 평생 함께 살아온 이웃들을 지키는 문제이기도 했다.
당시 탈핵 희망버스를 함께 탔던 청년들은 여름에 다시 밀양에 농활을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실제로 2012년 여름 다시 밀양으로 농활을 간 대학생들은 밀양 주민들에게 탈핵과 송전탑의 관계에 대해 많이 배우고 돌아왔다. 과거의 농활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밀양 주민들은 대학생들이 송전탑 문제와 탈핵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대학생들은 탈핵 문제를 언론과 대학 강연을 통해서만 접했을 뿐 송전탑의 위험성과 문제점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었다. 하지만 밀양 농활을 통해 송전탑이 들어섰을 때 생기는 건강권 문제부터 시작해 핵발전소를 증설하기 위해 송전탑을 늘리는 것,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 없이 막가파식 공사를 진행하는 문제들에 대해 주민들의 입과 공사 현장을 통해 알게 됐다.
경남도지사와 밀양시장의 착각
밀양시장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뭘 제대로 알고 이야기해야 한다. 밀양 주민들이 외부 세력에게 이념을 주입 받아 불순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력이 밀양 주민들의 호소에 감동과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밀양시장의 외부세력 운운하는 기사가 나오자 밀양 송전탑 대책위원회 채팅방에서는 "뭐 외부세력이 잘못된 것이냐"라는 말들이 많이 나왔다. 다들 별것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보수언론에서 외부세력 기사가 나간 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외부세력이 개입해 밀양 문제를 폭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수세에 몰리면 '외부세력은 빠져'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약자들은 연대하지 않으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사실은 외부세력이 단지 밀양 주민들을 위해서 공사 현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양을 찾을 이유가 없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에너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밀양송전탑 주민들의 고통이 언젠가는 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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